[어제와 오늘] 한국전쟁의 수수께끼

1953년 7월27일 상오 10시에 시작된 정전회담. 공산측을 대표한 북한의 남일과 유엔군측의 윌리엄 해리슨 미 육군 소장이 정전 협정에 서명함으로써 포화는 일단 멎었다. 1950년 6월25일 38선 전 전선에서 남침한 북한인민군은 그 해 10월 인민지원군으로 지원한 중국인민군의 도움과 스탈린의 지휘ㆍ지시 아래 3년여를 유엔군과 싸웠다.

정전 50주년을 맞기 사흘전인 24일 러시아 로슈코프 외무차관은 “미국은 중국 베이징에서 중국 관리들이 참석한 가운데 회담을 가졌다. 그 다음날 러시아와 일본, 한국이 참여하는 6자 회담을 제안했다”고 TV 인터뷰에서 밝혔다.

휴전한지 50년이 지난 지금, 한국전쟁의 명백한 주동자요 주모자인 러시아가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6자 회담’의 끝자리를 겨우 차지한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라고나 할까. ‘수수께끼’라고나 할까.

모스크바 국제관계대학 동양학과 교수인 아나톨리 토르쿠노프 박사는 2000년 출간한 ‘수수께끼의 전쟁, 한국전쟁’에서 이 전쟁을 ‘수수께끼’라고 불렀다. 그러나 이 전쟁엔 ‘진실’이 있었다.

그 진실은 1953년 3월5일 휴전 3개월여를 앞두고 스탈린이 죽기까지 그가 모든 전쟁지휘를 했다는 게 첫째다. 두번째는 1950년 10월 압록강으로 쫓기는 북한군을 도와 중국 인민군을 파견한 마오쩌둥(毛澤東)이 참전 직후부터 휴전 때까지 작전의 직접 지휘자였다는 점. 김일성은 전쟁을 일으키겠다고 스탈린에 매달리고, 또 전쟁을 빨리 끝내 달라고 조른 이 전쟁의 보조자였다.

트루크노프 박사는 스탈린, 마오쩌둥, 김일성이 주고 받은 기밀문서를 통해 담담히 이를 추측해 냈다. 그의 책에는 3 사람에 대한 비판이나 야유, 역사학자의 도덕적 안목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스탈린은 1949년 2월 북한정부의 수반으로 모스크바를 첫 방문한 37세의 전 소련군 대위 김일성에게 말했다. “남침해서는 안 된다. 첫째 북한군이 압도적으로 우세하지 못하고 둘째 미군이 아직도 남한에 남아 있어 미국의 개입이 확실하며, 셋째 38선에 관한 미ㆍ소 협정이 아직도 유효해 이 협정이 파기되면 미군이 개입한다.”

김일성은 그러나 49년 8월 소련이 원폭 실험에 성공하고 그해 10월에 중국에 공산당 정부가 들어서자 남진에 박차를 가했다. 남한의 이승만 정부는 5ㆍ30 총선에서 대패했고 빨치산 활동도 다시 활발해졌다.

김일성은 스탈린의 허가와 마오쩌둥의 지지를 얻기 위해 50년 4월 비밀리에 스탈린을 찾아간다. 그 해 1월 17일께는 중국 무역대표단의 평양 환영만찬회장에서 소련 대사 시티코프에게 스탈린에 관해 아첨했다. “나는 스탈린 동지에게 충실한 공산주의자이며, 나에게 스탈린은 바로 법이기 때문에 단독으로 전쟁을 일으킬 수 없다.” 마오쩌둥에 관해서는 “나의 친구라 했고 중국전쟁이 끝나면 나를 돕겠다고 약속했다” 고 말했다.

투르크노프 박사는 스탈린과 김일성이 모스크바에서 50년 3월30일~ 4월25일 세차례 만났으나 대화나 서신, 회담 기록은 없다고 적었다. 대신 스탈린이 마오쩌둥에게 보낸 전보(1950년 5월14일 암호전문)에서 이렇게 회담 내용을 전했다. “북한 동지들과의 회담에서 동지 스탈린과 그 측근들은 ‘국제정세의 역학관계’가 변했으므로 북한이 통일작업에 착수하겠다는 제안에 동의했다.

이에 관해 추가적으로 부수되는 문제는 최종적으로 중국과 북한의 동지들의 공동으로 결정해야 한다. 중국 동지가 이 같은 결정에 동의하지 않을 경우 새로운 시기가 있을 때까지 결정(남진)은 연기 되어야 한다.”

김일성은 5월 15일 베이징에서 남침에 관해 중국측과 협의했다. 김일성과 마오쩌둥은 스탈린이 우려한 미국의 개입 가능성에 대해 “미국은 극동에서 싸울 준비도 하고 있지 않다. 미국은 싸우지도 않고 중국에서 물러 났으며 한반도 사태에 대해서도 신중해졌다”고 분석했다. 이 회담후 김일성은 모스크바에 “모택동 동지가 모스크바에서 스탈린 동지와 북한간의 해방 계획을 전적으로 수용했다”고 보고했다.

그러나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진 51년 6월 마오쩌둥은 미국과 정전에 나설 것을 권고했다. 스탈린은 이때 김일성에게 명확히 밝혔다. “휴전회담 나갈 당신을 지휘하는 사람은 마오쩌둥 주석이다”고. 그러나 마오쩌둥은 일이 있을 때 마다 스탈린의 지휘를 기다리는 전문을 보냈다. 그래서 51년 9~12월 “전쟁을 끝내기 보다는 계속 하는 게 중국과 북한측에 낫다”는 스탈린의 의견에 마오쩌둥은 승복했다.

“북한에는 식량이 없어 송환포로의 수보다 더 많은 인명이 죽어 가고 있다. 정전은 미국에게 유리하고 우리에겐 전쟁의 지속이 더 유리하다”고 스탈린의 편을 들기도 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속에 묻힌 진실에는 스탈린에 가려진 마오쩌둥과 김일성의 진면목이 있다. 앞으로 전개될 북핵 문제에 관심이 있는 이들에게 투르쿠노프 박사의 ‘한국전쟁의 진실과 수수께끼’(2003년 6월. 구종서 옮김)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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