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 읽기] 결혼과 가족

영화 ‘싱글즈’의 주인공 동미(엄정화 분)는 자유 연애주의자이다. 어쩌다가 친구와 사고를 쳤고 덜컥 임신을 하게 된다. 남자가 아직 결혼을 하지 않은 총각이기 때문에, 동미가 고려할 수 있는 가능성은 크게 세 가지이다. 하나는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아이의 아버지와 결혼하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남자와 상의하거나 아니면 독자적인 판단으로 낙태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남자에게 알리지 않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놀랍게도 동미는 세 번째의 가능성을 선택한다. 싱글맘(single mom), 결혼을 하지 않은 채로 엄마가 되어 모자(母子)관계에 근거해서 가족을 구성하는 쪽으로 마음을 먹는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결혼제도와 관련된 공포가 아닐까. 동미의 선택에는 결혼은 개인의 자율성과 정체성이 상실되는 공포스러운 경험이라는 무의식이 작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녀는 결혼을 거치지 않고 멀리 우회해서 가족을 만들고자 한다. 치기 어린 선택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과연 결혼은 사회구성원 모두가 거쳐야 하는 통과의례인가라는 문제를 제기하는 장면이었다. 그래서 였을까. 극장을 나오면서, 우리시대의 자유는 결혼 제도 바깥에 놓여져 있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사회학자 울리히 벡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196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가족ㆍ결혼ㆍ직장은 인생을 설계하는 데 있어서 단단한 초석으로 여겨졌다고 한다. 학업을 마친 뒤에 취직을 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해서 단란한 가정을 꾸린다는 삶의 플롯이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은 이 모든 것들이 과거처럼 자명하지 않다. 현대인들은 결혼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혼식과 혼인신고 둘 다 하고 살 것인지, 결혼 전에 동거를 해 볼 것인지 등등에 대해서 생각할 것을 강요 받는다. 사회적으로 공인된 라이프 스타일의 정당성 자체가 근저에서부터 요동치고 있기 때문에, 가족과 결혼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문화적 불확실성 속에서 개인은 삶의 올바른 방식을 스스로 찾아내지 않으면 안 된다.

결혼과 관련된 모든 것이 선택의 문제가 되어버린 시대인 것이다. 울리히 벡은 “이러한 시대적 흐름이 현재 진행형이며 멈춰 세울 방법이 전혀 없다”고 진단한다.

그렇다면 그토록 자연스러운 것으로 보이던 가족과 결혼이 불명료한 상태에 빠져든 이유는 무엇일까. 사회생물학과 문화인류학에 근거한 여러 저서들은,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결혼제도란 실패할 수밖에 없는 기획이라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동물은 일부다처제이며, 포유류의 4%만이 양육을 위해 일시적으로 일부일처제를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류학적 보고에 의하면 원시부족의 75%가 중혼(重婚)에 기반한 사회였으며, 인류의 25%만이 일부일처제를 따르고 있다고 한다. 일부일처제는 행복을 보장하는 정상적인 삶의 방식이 아니며, 오히려 일부일처제 아래에서 모순을 경험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한다. 일부일처제에 근거한 커플과 가족의 탄생은 산업사회의 발명품이며, 인간에게는 맞지 않는 옷이라는 것이다.

반면에 사회학자들은 관점을 달리한다. 평등과 자유라는 민주적 원리가 사회적인 차원에서 요구되고 적용되는 단계를 넘어서, 개인이나 가족과 같은 사적인 공간의 근원적인 구성원리로서 자리잡았다는 사실에서 결혼과 관련된 문화적 불투명성의 근거를 찾는다. 전통적인 성 역할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남녀평등이 가정의 규율로 자리잡는 것 등은 우리의 일상이 민주적인 가치에 의해서 재구성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따라서 평등하고 자유롭기를 원하는 두 개인이 만나서 함께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낭만성과 민주적인 원리의 공존이 가능할 때 행복한 결혼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의 일상이 낭만과 민주의 조화로만 가득할 수 있을까. 이 지점에서 젊은 세대들은 결혼과 가족의 다른 가능성을 실험한다. 하지만 성공 여부는 여전히 불투명하다.

과연 결혼과 가족은 침몰하는 배와 같은 것일까. 여기에 대한 대답은 ‘예스’이기도 하고 ‘노’이기도 하다. 결혼과 가족을 둘러싼 문화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결혼의 합리성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서 존중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혼과 가족에 대한 전통적인 관념만이 유일한 모범 답안일 수 없다는 사실만큼은 어느 정도 분명해 보인다. 흥미로우면서도 공포스러운 혼돈이라고나 할까. 가족의 형태에 대해서 단정적인 방식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회, 결혼에 대한 선택이 개인마다 다양하게 변할 수밖에 없는 사회를 우리는 살아간다.

김동식 문화평론가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