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나미의 홀인원] 플레이 속도와 리듬

“많이 배우고 오겠다”던 자신의 말을 뒤엎고 전통과 권위의 브리티시 오픈에서 초반 선두 질주에 나선 허석호 프로골퍼. 세계 골프계의 관심은 단숨에 한국의 무명 ‘HO’에게로 모아졌다.

허석호 프로가 스윙하는 모습을 보면 톱 프로 선수치고는 너무나 심심하다. 그의 스윙은 타이거 우즈처럼 폭발적이지도, 어니 엘스처럼 부드럽지도, 닉 팔도처럼 리드 미컬하지도 않다. 화려한 구석이 없이 그저 평범하기만 하다.

“적어도 선두를 달릴 정도면 뭔가 특별한 것이 있지 않을까”하고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세심하게 살펴봐도 특이한 걸 찾을 수 없다. 눈에 띄는 것은 플레이가 빠르다는 것뿐.

허석호 프로는 주니어 시절부터(국가 대표 합숙) 말과 행동이 간단 명료하기로 유명했다. 군더더기가 없었다. 퍼팅을 하더라도 시간을 끌며 재거나 바람의 방향을 알기 위해 풀잎을 날려보내는 동작도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그가 브리티시 오픈 첫째 날과 둘째 날 선두를 달릴 때 플레이 모습을 본 사람은 뭔가 모르게 다른 점을 느꼈을 것이다. ‘어!’하는 순간에 바로 스윙이 끝나는, 경기를 하는 속도다. 그는 플레이가 무척 빠르다. 오죽하면 대표 합숙 라운딩을 할 때도 ‘티를 꼽는 동시에 바로 스윙하는 선수’로 정평이 나 있었을까? 그만큼 어드레스 시에 클럽이 땅에 붙어 있는 시간이 별로 없다. 드라이버에서 어프로치, 퍼팅에 이르기까지 허석호 프로에게 ‘어드레스’란 단어가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허석호 프로도 원래 스윙이 빠른 선수가 아니었다. 이런 습관은 거듭된 훈련 과정에서 나온 결과다. 그의 아버지는 골프계에 오래도록 몸담고 계신 분으로 예전부터 “세계적인 선수는 플레이가 빨라야 한다”고 강조해 왔다.

일반적으로 국내 선수들은 주니어 시절만 해도 프로 경기에서처럼 플레이 속도에 대한 개념이 없다. 주니어 시절을 거친 선수들이 프로에 입문 하면서 가장 힘들어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늦장 플레이’다. 이번 US오픈에서 ‘여성 타이거 우즈’로 불린 미셸 위도 플레이가 느리다는 지적을 받았다.

한번 경기 템포가 늦어지면 한없이 늦어지는 게 골프다. 안되면 안 될수록 생각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또한 부정적인 생각이 머리 속에 자꾸 그려져 플레이가 느려진다.

허석호 프로의 경기 속도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보다 간결하고 정확했다. 스윙과 퍼팅의 기술적인 면도 중요하지만 골프에서 경기의 속도와 리듬을 타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함께 경기하는 선수들의 플레이 속도만 맞아도 그 팀의 점수는 다른 팀보다도 훨씬 좋아진다. 분명히 같은 팀내에서 끌려 다니는 선수가 있고 팀을 이끌어가는 선수가 있다. 그래서 잘 치는 사람하고 함께 라운딩하면 점수가 잘 나온다는 말이 나온다. 허석호 프로가 잘 쳤던 이유 중 하나는 톱 프로들 사이에서 끌려 다니는 선수가 아니라 이끌어가는 ‘리더’였기 때문이다.

예전에 일본의 유명 골프 코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세계적인 선수가 될 재목은 골프의 기술적인 면보다 그 외의 모습을 보고 안다.” 예를 들어 걸음걸이 속도나 플레이 하지 않을 때의 모습, 중요한 퍼팅에 실패한 후의 행동들을 그는 지적했다. 허석호 프로의 경기 모습은 평범했지만 다른 모습은 모두 톱 프로나 다름없었다.

앞으로 허석호 프로에게 중요한 것은 체력 안배와 경기 속도다. 전체적인 플레이 속도만 끌고 나갈 수 있다면 문제가 된 들쑥날쑥한 플레이는 없어질 것이다.

이는 아마 골퍼들도 마찬가지다. 퍼팅을 끝내고 멤버들이 함께 걸어갈 때 혼자 안 들어간 퍼팅을 머리 속에 남겨 놓는 경우가 많다. 그런 잡념은 버리지 않으면 다음 홀도 끌려가는 홀이 된다. 안 들어가더라도 주눅 들지 말자. 그러면 어느새 발걸음도 가벼워지고 퍼팅도 살아날 것이다. 그러면 팀원들과 분위기도 맞출 수 있고, 잘 하면 팀을 이끌 수 있다. 경기 속도에도 신경을 써도 골프는 더욱 쉬워 진다.

박나미


박나미 nami8621@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