빅4 온라인 시장 진입 초읽기, 업계 혈투 예고

보험업계 새 강자 '온라인'

빅4 온라인 시장 진입 초읽기, 업계 혈투 예고

상품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비교가 쉽지 않다. 상품 가격도 비슷하다.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기준은 단 한가지다. 회사 인지도 내지는 브랜드 파워. 자동차보험 시장은 그렇게 삼성을 필두로 현대, 동부, LG 등 이른바 ‘빅4’가 시장을 완전 장악했다. 이들 4사의 시장 점유율은 70% 안팎. 규모와 인지도에서 밀리는 중소형 손해보험사들은 비집고 들어갈 틈조차 없었다.

동양, 신동아, 대한, 그린, 쌍용, 제일 등 하위 6개사가 그나마 20%대의 시장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도 보험 업계 특유의 ‘인맥 장사’ 의 힘이었다.

좀처럼 무너질 것 같지 않던 시장 판도에 대대적인 변화가 예고된 것은 2001년 10월. 생명보험업계 ‘빅3’ 중 하나인 교보생명이 손보업계에 진출, 교보자동차보험을 설립한 것이다. ‘온라인 자동차보험’을 표방한 교보자보의 등장은 업계에 적지 않은 충격을 몰고 왔다.

대리점이나 보험설계사를 두지 않고 인터넷이나 전화로 보험을 모집하는 대신 평균 15% 가량 보험료를 할인해 줬기 때문. 삼성을 비롯한 ‘빅4’는 “보험은 가격만으로 영업하는 것이 아니다”며 겉으로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면서도 내심 전전긍긍했다.

당시 대형 손보사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속내를 털어 놓았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온라인 보험이 대세로 자리잡은 지 오래다. 머지 않아 우리나라에서도 온라인 전환이 급속히 이뤄질 것이다. 그런 점에서 시장을 먼저 선점하게 될 교보는 자못 위력적이다.” 그리고 온라인 자동차 보험의 위력은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했다.


돌풍의 진원지, 교보자동차보험

6월말 현재 교보자보의 누적 가입 건수는 46만2,000여건. 출범 21개월 동안의 기록이니 월 평균 2만2,000명이 가입한 꼴이다. 업계가 주목하고 있는 부분은 월 별 증가세가 심상치 않다는 점. 출범 초기 월 가입 건수가 1만건에도 못 미쳤지만 1년 만인 지난해 10월 3만건을 돌파하더니 올 6월에는 4만1,844건에 달했다.

이 추세대로라면 2003 회계연도가 끝나는 내년 3월에는 목표치(60만건)를 훨씬 넘어 80만건에 육박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만만치 않은 탓에 2002 회계연도(2002년4월~2003년3월)에 90억원 가까운 적자를 냈지만, 올 2월 첫 흑자(6억4,000만원)를 기록하는 등 투자금 회수 속도도 상당히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추세다.

교보자보가 급속히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은 단연 가격이다. ‘15% 더 싸다’는 초기 광고 카피에서 볼 수 있듯 거품을 걷어낸 보험 가격은 소비자들에게 상당히 신선한 충격이었다. 유사한 가격대와 비슷한 구성의 상품들 사이에서 회사 인지도만을 바탕으로 상품을 선택하도록 강요 받았던 소비자들이 본격적으로 가격 비교를 통해 상품을 고를 수 있는 기회를 얻은 셈이었다.

물론 여기에는 ‘교보’라는 브랜드가 갖는 안정성도 큰 몫을 했다. 대형 생보사 관계자는 “만약 이름도 생소한 회사에서 온라인 상품을 처음 내놓았다면 고객들을 쉽게 끌어들이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가격 메리트에 회사 인지도가 상승 작용을 해 일찌감치 정착할 수 있었던 것 같다”고 분석했다.

교보자보의 성공적인 자리매김은 고객의 신뢰도를 파악할 수 있는 계약 갱신율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2 회계연도 기준 교보자보의 계약 갱신율은 75.5%. 업계 평균(69.5%)을 크게 웃도는 수치다. 1년마다 계약이 갱신되는 자동차보험의 특성상 갱신율이 높다는 것은 소비자들이 가격 뿐 아니라 서비스에서도 충분히 만족했다는 의미.

출범 초기 가장 우려됐던 보상 조직에서도 교보자보는 보상인력 1인당 관리 차량이 1,259대로 삼성(2,178대) 동부(1,809대) LG(1,648대)에 우위를 보였다. 물론 보상 인력의 절대 인원(270명)이 대형 손보사의 15~20% 수준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취약한 것은 營? 보상의 경우 숙련된 노하우가 필요할 뿐더러 일단 절대적인 인원이 많아야 신속한 서비스가 이뤄질 수 있는 탓이다.

그렇지만 이 정도 불편은 가격이 충분히 보완하고 있다는 것이 회사측의 자평. 교보자보 마케팅팀 권미진씨는 “현재까지 보상 문제에 대해 고객의 불만이 별로 노출되지 않았다”며 “앞으로는 제휴 서비스 등을 강화해 가격 외에 다른 서비스를 확충하는 쪽에 주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온라인 보험에 기대 거는 중소형사

가장 발 빠르게 대응한 것은 중소형 손보사들이었다. “이대로 가다간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는 절박함에 빠져있던 이들 보험사에게 교보가 개척한 온라인 자동차 보험이라는 새로운 시장 영역은 상당히 매력적일 수밖에 없었다.

교보자보 출범 7개월만인 지난해 5월. 제일화재는 오프라인 보험 상품을 온라인에서도 판매하는 ‘아이퍼스트(I-First) 자동차보험’을 선보였다. 오프라인 전국 보상망이 온라인 보험에도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교보와의 가장 큰 차별성이었다. 하지만 비슷한 가격 조건에서 선발 주자인 교보와의 경쟁은 힘겨웠다. 회사의 인지도가 크게 떨어지는 것도 원인이었다.

제일화재측이 내놓은 처방은 또 한번의 가격 할인. 온라인 기본 할인 외에 부부만 운전할 경우 보험료를 평균 6.2% 더 할인해주는 ‘부부운전 한정특약’ 상품에 대해 집중 판촉에 나섰다. 처방은 적중했다. ‘직거래로 한번 할인받고 부부한정으로 한번 더’라는 광고 카피는 고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최근에는 제일화재 온라인 보험 판매 중 60% 이상을 점유할 정도로 급성장했다. 올 1월 자동차보험 상품 중에서는 유일하게 금융감독원에서 선정하는 ‘2002 우수금융 신상품’ 우수상을 받기도 했다.

손보 시장 점유율 2.8%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대한화재도 온라인 보험 행을 선택했다. 지난해 11월 출시한 ‘하우머치 자동차보험’이 내세운 것은 평균 17% 보험료 할인. 경쟁사 온라인 상품에 비해 2%포인트 저렴하다는 것을 강조한 내용이었다. 특히 24~35세 가입자의 경우 동업사 온라인 상품과 비교해 5~15% 정도 저렴하다는 점을 집중적으로 내세웠다.

현재 이들 3개사의 온라인 자동차 보험이 전체 자보 시장에서 차지하고 있는 비중은 4% 내외. 아직까지 미미한 수준이기는 하지만, 수십년간 영업을 해온 기존 오프라인 중소형 손보사의 시장 점유율이 2~4%대에 불과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규모다. 제일화재 김준연 대리는 “온라인 보험 시장이 계속 팽창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수년 내 대형 손보사를 위협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진짜 전쟁은 이제부터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예고편에 불과했다. 온라인 보험이 돈 되는 장사라는 사실이 입증되면서 너도나도 입질을 하기 시작했다. 우선 눈길을 끄는 것은 65만명의 교직원을 잠재 고객층으로 거느린 대한교원공제회의 온라인 자보 시장 진출. 교원공제회가 200억원 자본금 전액을 출자한 교원나라자동차보험㈜는 조만간 금융 당국의 정식 인가를 얻어 12월 중 상품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이 회사 서영길 상무는 “손익분기점을 25만건 정도로 예상하고 있기 때문에 전체 교직원의 3분의 1 정도만 고객으로 흡수해도 성공할 수 있다는 판단”이라며 “탄탄한 상품과 보상 체계를 갖춘다면 교원 뿐 아니라 일반 고객들의 수요도 생겨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무엇보다 온라인 보험 업계를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빅4’도 언젠가는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움직임은 감지되고 있다. 먼저 선수를 친 곳은 LG화재였다. 인터넷 포털 업체인 다음커뮤니케이션과 공동 출자 방식으로 ‘다음 다이렉트 라인(가칭)’이라는 온라인 자동차 보험사를 설립키로 했다. 지분 구조는 다음과 LG가 9대 1. 이는 현행 보험업법 상 손해보험사는 동종 업종에 10% 이상 지분을 출자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 측이 보험 상품 개발에서 판매, 관리까지를 일체 총괄하고 LG화재는 보상 서비스 조직만 제공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이를 곧이 곧대로 믿는 이들은 별로 없다. 전면에 나서는 것은 다음 측이지만 실질적으로는 LG측이 사업을 주도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더구나 보험업법 개정으로 9월 이후엔 동종업종 출자 제한 규정이 없어질 예정이어서 LG측이 지분 확대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는 상태다. 지난 5월 구자준 사장이 기자 간담회에서 “온라인 자동차 보험은 이제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향후 5년 내 온라인 보험 시장 점유율은 30%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도 이런 관측을 뒷받침한다.

삼성, 현대, 동부 등 나머지 대형 3사는 아직 정중동(靜中動)이다. 언제든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온라인 시장에 진출할 내부적 채비는 갖췄지만 서로 눈치만 보며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을 뿐이다. 이들의 온라인 시장 진출에 가장 큰 걸림돌은 보험 설계사, 대리점 등 기존 모집 조직의 거센 반발.

“금융감독원에 온라인 보험 진출 의향을 전했더니 난색을 표명했다. 대형사마저 온라인 시장에 진출하면 생계를 위협받는 수만명의 설계사들이 집단 행동에 나서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을 꺼려하는 것 같았다.” 한 대형 손보사 관계자는 최근의 분위기를 이렇게 전했다.

온라인 보험 시장의 전망이 반드시 밝은 것만은 아니다. 사고 발생 시 담당 보험설계사를 찾는 계약자들의 관행, 아직까지 연고 판매 비중이 높은 현실 등은 온라인 보험의 성장의 벽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업계 전문가들은 “향후 대세가 온라인 보험”이라고 입을 모은다. 단지 시간과 속도의 문제일 뿐이라는 얘기다. 온라인 보험 시장의 진짜 혈투의 시기는 예상 외로 빨리 찾아올 수 있다. 아마도 ‘빅4’ 중 어느 한 곳이 본격적으로 온라인 시장에 뛰어드는 때가 바로 그 시점이 될 것이다.

이영태기자


이영태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