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 여자골프계에 '코리언 돌풍'

[스포츠 프리즘] 태극낭자 질주에 세계가 주목

강인한 정신력으로 무장, 여자골프계에 '코리언 돌풍'

골프와 양궁은 여러모로 닮았다. 두 종목 모두 ‘에이밍(Aiming) 스포츠’다. 골프가 10.8㎝ 크기의 홀을 향해 샷을 휘두른다면 양궁은 120㎝의 과녁을 겨누고 활시위를 당긴다. 조준 자세도 똑같다. 골프와 양궁 모두 타깃을 정면으로 향해 서지 않는다. 타깃과는 수직으로 선 다음 고개만 돌려 거리와 방향을 맞춘다.

어느 스포츠보다 고도의 지적 능력과 강한 정신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다. 바람의 세기와 방향, 그날의 습도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거리감을 맞춰야 한다. 둘 다 혼자서 치르는 철저한 ‘멘탈(mental)게임’이다. 심장이 멎을 듯한 긴장 속에서도 인내심과 절제력을 발휘, 평정을 잃지 말아야 한다.

혹자는 골프와 양궁에서 태극마크를 단 여전사들이 세계 무대를 휩쓸고 있는 것이야말로 한민족 여성들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말한다.


골프 女帝도 두려워하는 태극 여전사

“한국 여자선수들이 무섭다.” ‘골프여제’ 아니카 소렌스탐(스웨덴)이 시즌 초반 전방위 공세에 나선 한 한국 선수들의 위용을 보면서 내뱉은 말이다.

올 시즌 세계 여자골프 정벌에 나선 태극 여전사들의 기세가 그야말로 무섭다. 7월 27일 프랑스 에비앙레뱅의 에비앙골프장(파72ㆍ6,091야드)에서 막을 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에비앙마스터스(총상금 210만달러). 아쉽게 우승을 놓치기는 했지만 LPGA 투어에서 시작된 코리언 열풍은 유럽에서도 전혀 식지 않았다. 78명의 스타급 선수만 초대받은 제5의 메이저대회. 이 ‘별들의 전쟁’에 참가한 8명의 한국 여자선수 중 3명이 톱 10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얼마 전 빅애플클래식에서 생애 첫 승의 감격을 맛본 한희원(25ㆍ휠라코리아)이 15언더파 273타로 단독 2위에 오른 것을 비롯해 시즌 2승의 박세리(26ㆍCJ)와 루키 강수연(27ㆍ아스트라)이 각각 6위와 9위에 올랐다. 뒤를 이어 미켈롭라이트에서 1승을 거둔 박지은(24ㆍ나이키골프)도 마지막 날 맹타를 휘두르며 공동 17위, ‘울트라 슈퍼땅콩’ 장정(23)도 공동 21위에 오르는 등 한국 선수들이 상위권에 대거 이름을 올렸다. 리더보드 상단을 한국 여자선수이 대거 점령하는 것은 이제 너무나 익숙한 풍경이 됐다.

에비앙마스터스는 유럽 정벌의 전초전에 불과하다. 올 시즌 이미 4승을 챙긴 태극 여전사들은 곧바로 도버 해협을 건넜다. 잉글랜드 블랙풀의 링크스코스에서 벌어지는 대자연과의 싸움인 브리티시여자오픈. 개막 경기부터 돌풍을 일으킨 태극여전사들은 올 시즌 마지막 메이저대회에서 대미를 장식한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코리언 돌풍은 아래 위가 없다. 에비앙마스터스 최종라운드에서 ‘언니’들이 선전을 벌이고 있던 그 시간에 미국에서는 한국 소녀들의 또 다른 축제가 진행되고 있었다. 미래의 스타를 키워내는 미국여자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 결승전. 매치플레이 방식으로 열린 이날 경기에 임하기 위해 첫 홀 티잉그라운드에 올라선 결승 진출자는 지난해 이 대회 챔피언인 한국인 유학생 박인비(15)와 교포 이숙진(16)이었다.

남자주니어선수권대회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강성훈(16ㆍ남주고)과 이정훈(16ㆍ미국명 제임스 리)이 모두 8강전에서 패해 우승 꿈이 좌절된 것과는 달리 한국 소녀들은 주니어 최강자들과의 서바이벌게임에서 끝까지 생존해 55회째를 맞는 최고 권위의 주니어선수권대회를 ‘코리언 페스티벌’로 바꿔놓았다.

이날 경기는 꼭 1주일전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서 열린 제42회 세계양궁선수권 대회를 오버랩시켜 주었다. 이 대회에서 남자들은 개인전에서 임동현(17ㆍ충북체고)만이 은메달을 따낸 것과는 달리 윤미진(20ㆍ경희대) 박성현(20ㆍ전북도청) 이현정(20ㆍ경희대) 등 세명의 스무살 동갑내기 여궁사들은 개인전 1,2,3위를 독식, 세계 최강 아마조謬볍병騈?명성을 재확인시켰다.

결과는 이숙진의 막판 극적인 역전승. 인천 한일초등학교 재학 시절인 1998년 당시 9살의 나이에 한국주니어골프선수권대회에서 준우승을 차지하면서 ‘떡잎’부터 달랐던 이숙진은 이듬해 미국으로 골프유학을 떠난 후 5번째 도전 만에 우승컵인 ‘글레나 콜렛 베어 트로피’에 입맞춤하는 감격을 누렸다.

이로써 이숙진은 이 대회 본선 직행은 물론 아마추어 자격을 유지한다면 US여자아마추어선수권은 2년, US여자오픈은 5년간 지역예선을 면제받을 수 있게 됐다.


미셸 위는 남성우월주의 깨뜨릴 구세주

일본 열도도 태극여전사들이 접수한 상태. 구옥희(47) 고우순(38) 등이 꾸준히 상금순위 상위권을 형성해 오던 일본 투어에 올해는 이지희(24ㆍLG화재)가 뛰어들었다. 이지희는 최근 끝난 위러브 고베 산토리레이디스오픈을 포함해 올 시즌 9경기에서 벌써 3승을 거두는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이지희의 ‘과녁’도 미국 무대. 98년 일본LPGA 신인상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가 2001년 미국LPGA 신인상을 동시 석권한 뒤 올 시즌 생애 첫 승을 거둔 한희원처럼 이지희도 올 시즌 상금왕 등극을 발판으로 내년 미 LPGA투어 퀄리파잉스쿨에 도전하겠다는 다부진 각오다. 이지희가 상금 순위 2위(3,870만엔)에 오른 것을 비롯, 구옥희(3위) 고우순(5위) 등 상금순위 5위 안에 3명의 한국 여자선수가 포진해 있다.

이 모든 코리언돌풍의 정점에서 전혀 새로운 차원의 태극여전사가 지금도 ‘진화’중이다.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여자프로골프는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그(The One)’처럼 마초콤플렉스(남성우월주의)를 본때 좋게 깨뜨려줄 구세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다. 183㎝에 신장에 평균 드라이버 비거리 300야드를 넘나드는 폭발적인 장타.

2차례 ‘성벽(性壁)’에 도전했다 실패로 끝난 소렌스탐과 수지 웨일리(36)와는 비교 대상조차 되지 않는 도전자. 바로 미셸 위(14ㆍ한국명 위성미)다. 그녀는 골프황제 ‘타이거 우즈(미국)’와 ‘마스터스 챔피언’을 정조준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미셸 위가 ‘14세에 이미 우즈를 눈앞에’라는 제목의 스포츠 화제기사를 이례적으로 1면에 싣는 등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LA타임스는 지금 세계 골프계의 유행어는 ‘Wie’라고 보도했다. 지난 6월말 미셸 위가 사상 최연소 나이로 미국여자아마추어 성인대회에서 우승한 뒤였다.

김병주 기자


김병주 기자 bjkim@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