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아찾기·자아성찰로 포함한 유부남·유부녀의 바람피우기

불륜·섹스, 바람 권하는 대중문화

자아찾기·자아성찰로 포함한 유부남·유부녀의 바람피우기

바야흐로 드라마와 영화 등 대중문화는 섹스, 그리고 바람 권하는 방향으로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계속하고 있다. 마치 섹스와 바람이 대중문화의 유일한 정답인 듯 말이다. 영화와 드라마는 인간의 행복과 구원은 섹스에 있는 냥 그리고 일부일처제의 부당함을 바람에 의존해 해결할 수 있는 냥 난리 법석이다.

남성과 여성의 자아 찾기나 자기 성찰의 모범 답안이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 피기, 노골적으로 말하자면 섹스로 표출되고, 대중문화 속 남성과 여성은 자기 욕구에 충실할 권리를 행사하는 방식이 모두 몸인 듯 하다.

1996년 9월, ‘애인 신드롬’ 에 대한 거센 논박이 전개됐다. 유부녀들은 만나면 한마디씩 건넸다. “애인이 있느냐?”고. 요즘 애인이 없으면 바보 소리는 듣는다는 첨언과 함께. MBC 이창순 PD가 연출한 유부녀와 유부남의 사랑을 그린 ‘애인’이라는 드라마가 불러온 파장이었다.

사회적 논란을 일으키며 신드롬을 초래했던 ‘애인’에선 유부남(유동근), 유부녀(황신혜)의 좋아하는 감정의 절정은 호텔에서 표출됐다. 하지만 잠자리에 들기도 전에 유부녀는 옷을 벗지 못하고 호텔을 뛰쳐나왔다. 결혼과 가족에 대한 책임감과 새로운 사랑 사이에서 고민의 흔적을 남기고. 이 장면을 두고 난리가 났다. 어떻게 지상파 TV에서 불륜을 공공연하게 조장하는 내용을 내 보낼 수 있느냐고.


당당해진 '불륜 명랑 코미디'

그로부터 정확히 6년 10개월이 흐른 2003년 7월. 모텔 방을 나서는 아파트 앞집 두 유부녀가 만난다. 한 여자는 부끄러운 듯(실제 첫사랑을 만나 다른 일로 모텔에 들어섰다가 나오는 중), 한 여자는 그 여자의 어줍잖은 모습을 보며 한마디 던진다.

“너! 초보지. 너 남자 손 한번 못 잡아봤지.” 아파트에서 다시 만난 여자는 말한다. “난 남자를 만날 때마다 조약돌 하나를 넣지. 스무개(섹스 횟수)가 쌓이면 더 이상 만나지 않아!” 제작진이 ‘명랑 불륜 코미디’ 라고 당당하게 밝힌 MBC 미니시리즈 ‘앞집 여자’다. 제작진마저 불륜 드라마라 당당하게 밝히고 시청자들은 불륜 조장이라는 비판의 소리대신 방송 1~2회분에 20%대라는 높은 시청률로 화답한다.

6년 여의 세월 동안 화면 안과 밖은 이렇게 변했다. 최근 1~2년 사이에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들여다보면 변화의 급물살을 확인할 수 있다. 40대 유부남과 20대 여대생의 사랑을 파격적으로 안방 극장에 끌어들인 ‘푸른 안개’가 새로운 사랑을 갈구하던 이 땅의 중년 남성들을 뒤흔들었다.

또한 30대 유부남과 30대 처녀의 순수한 사랑이 현실 속의 문제와 서로간의 감정으로 인해 제목 ‘거침없는 사랑’과 달리 거침 있는 사랑으로 그려져 공감을 받았다. 여기까지는 섹스라는 기제가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그러다가 마침내 당당한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과 섹스를 동일어 차원으로 끌어들인 드라마 ‘고백’이 지난해 안방을 강타하더니 이윽고 유부녀의 입에서 한 남자와 스무 번의 섹스를 하면 헤어진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터져 나오는 ‘앞집 여자’ 까지 왔다.

스크린은 더욱 심하다. 자기 일에 당당하면서 남편과 정부사이에서 주체성을 보이며 바람을 피우다 남편에게 죽임을 당한 ‘해피엔드’ 의 보라(전도연)를 거쳐 죽도록 사랑하고 있으며 사랑할 것만 같았던 남편의 외도로 인해 자신 역시 새로운 남자를 만나고 헤어지는 ‘밀애’ 의 미흔(김윤진)을 통과한 다음 결혼 후에 혼전 에 사귀었던 남자와 계속 만나 이중생활을 즐기는 ‘결혼은 미친짓이다’ 연희(엄정화)까지 바람 피는 유부녀의 캐릭터는 바람기의 강도를 더욱 더 강하게 고조시켰다.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의 결정판은 아마 8월 14일 개봉 예정인 ‘바람 난 가족’일 것 같다. 제목처럼 바람 전선에 모두 가족 구성원이 뛰어 들었다. 며느리이자 한 남자의 아내인 호정(문소리)은 “남편 말고 애인이 필요하다”며 고삐리(고등학생) 애인과 바람을 피워 그 남자의 아이를 임신하고 남편은 처녀와 연애를 한다.

바람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시어머니는 15년 만에 초등학교 동창을 만나 섹스를 하면서 오르가슴을 느꼈다며 늦바람의 전형을 보이고 시아버지 역시 바람을 피운다. 가족 중에 바람 피우지 않는 사람은 없다.


콘텐츠는 역시 섹스와 바람

최근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휘젓고 있는 유부남, 유부녀의 바람 피우기는 때로는 코미디 형식으로 때로는 멜로 형식으로 문양을 바꾸지만 결론은 섹스와 바람의 등가물이다. 작품의 완성도나 극적 전개, 주제와 메시지의 함의를 무시하고 캐릭터를 획일화 해 윤리적 잣대로 재단할 생각은 없다.

사회의 변화와 가족 형태의 역할 변화의 상황을 무시하고 전통적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를 생각은 더더욱 없다. 박물관으로 직행하고 있는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부여잡고 옛날이 좋았다라는 복고의 향수를 노래할 마음도 추호도 없다.

고궁에서 행복한 표정을 짓던 신혼 부부들이 서초동 가정법원으로 향하는 속도는 가속도가 붙어 매우 빨라지는 것이 현실이다. ‘남편 출장 간 심심여 나와 화끈한 밤을’ ‘애인이 있는데 바람 필 남자를 구함’ 채팅 사이트에 들어가면 어디에서든 이런 방제를 만날 수 있는 상황이다. 현실이 영화나 드라마의 내용을 앞질러 가는 추세다.

이런 현실과 극적 상황을 고려하더라도 요즘 영화와 드라마에서 전개되고 있는, 특히 인기가 높은 대중문화의 콘텐츠들이 천편일률적으로 그려내는 바람 피는 사람들의 캐릭터의 전형성과 바람에 대한 일방적이면서도 획일적인 성격규정에는 문제는 있다.

결혼이란 관계는 이제 더 이상 가족의 안전판도 아니고 확고부동한 가정의 유지 체제도 될 수 없다. 바람은 남성의 전유물도 아니며 여성의 혼외 정사를 일방적인 비난만을 할 수 없는 시대다. 그런데 문제는 영화와 드라마에서 섹스를 동반한 바람은 진정한 자아 찾기의 한 과정, 자아 성찰의 계기, 그리고 삶과 인생을 찾아가는 모티브로 한결같이 전개되고 있다는데 있다.

또한 제도(결혼, 가족관계)나 도덕과 규범, 법, 사람들의 시선 등 앞에서 모습을 절제하거나 숨겨왔던 욕망도 거리낌 없이 노출시킨다. 욕망과 몸의 욕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또 다른 행복임을 주저 없이 드러내놓는다. 최근 바람을 화두로 내세운 드라마나 영화에선 섹스와 바람만이 자아 찾기나 자아 성찰의 유일한 답안처럼 그려내고 있지만 욕망만을 쫓는 것이 얼마나 많은 현실속 문제를 파생시키는가를 대부분 거세하고 있다.

영화와 드라마가 이제는 찬찬히 바람과 섹스, 그리고 욕망으로 질주할 때 올 수 있는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 명품을 무분별하게 샀다가 엄청난 빚을 지고 그 빚을 갚아주는 상대가 누구이든, 결혼하겠다는 ‘원조결혼족’마저 양산되고 부모의 이기심으로 버려지는 수많은 아이들이 수용 시설로 보내지고 있다. 과연 이러한 사회적 현상과 요즘 영화와 드라마가 치닫는 것들과 전혀 관련은 없는 것일까.


가족해체현상 심화

1970년대 중반 미국에선 ‘신가족운동(New Family Movement)’이 일어났다. 세 쌍의 부부 중 두 쌍이 이혼하는 비율로 이혼율이 급증하면서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엄청나게 파생돼 새롭게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운동이었다. 우리도 조만간 신가족운동을 벌일지 모르겠다. 가족의 변화의 속도가 너무 빠르고 가족의 해체와 파편화가 급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분명 요즘 치닫고 있는 대중문화의 콘텐츠의 반대 그림도 존재한다. ‘영상기록 병원 24시’나 ‘인간 극장’을 보면 희귀병에 걸린 아내를 위해 직장도 포기한 채 자신의 전부를 던지며 간호하는 남편, 몇 년째 식물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에도 병상을 굳건하게 지키는 아내를 만난다.

그들은 욕망이 없고 자아실현을 하지 못하는 인간들일까. 이들이 제도와 도덕이 두려워 그 오랜 기간 남편과 아내의 병상을 지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사랑이다.

가족이 해체되고 파편화하는 추세가 강해지는데 구태의연한 스테레오 타입식의 대안으로 사랑타령이냐고 비판할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사랑이 가족과 사회를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답안임은 부인할 수 없다. 문화는 생활과 삶의 질을 고양시킬 의무가 있다. 바람과 섹스, 그리고 욕망으로 치닫는 영화와 드라마가 이제는 이 부분에 대해 답할 차례다.

배국남


배국남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