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적 이념의 싱크탱크로, '정계복귀 수순' 시각에 부담

돌아올 昌, 연구재단에 뜻?

보수적 이념의 싱크탱크로, '정계복귀 수순' 시각에 부담

미국에서 일시 귀국해 8월2일 재출국한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다음 행보가 궁금하다. 미국 방문비자 만료시한은 내년 2월이지만 벌써부터 그의 귀국이후 일정에 대한 각종 ‘설’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조기 귀국론에다 내년 총선 지원론, 이를 바탕으로 한 정계 전면 복귀설까지 심심찮게 떠도는 상황이다.

물론 이중 어느 것 하나 가시권에 들어온 얘기는 없다. 오히려 이 전 총재는 세간에 알려진 조기 귀국보다는 연말쯤, 또는 이보다도 더 시기를 늦출 계획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내년부터는?

현재까지는 이 전 총재가 보수적 이념의 종합적인 국가발전 프로그램을 제시할 수 있는 연구재단을 설립할 것이란 얘기가 가장 설득력 있게 들린다.

이 전 총재 입장에서 단순한 학술모임을 위한 연구재단 설립이라면 굳이 반대할 이유가 없는 데다 옛 측근들도 정계 복귀는 차치하더라도 어떤 식으로라도 이 전 총재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하길 고대하고 있어 이의 실현 가능성은 한층 높아지고 있다.


한국형 헤리티지 재단 성격

이 전 총재는 7월31일 신경식 하순봉 신영균 맹형규 주진우 의원 등 비서실장 및 특보단장을 지낸 한나라당 전ㆍ현직 의원들과 시내 한 음식점에서 만찬회동을 가졌다. 귀국이후 첫 나들이였다.

이 자리에서 이 전 총재는 “나라가 위기다. 한나라당이라도 흔들리지 말고 잘 단합해 국민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당부했다고 한다. 그는 특히 “미국이 한국을 보는 시각이 동맹국의 시각이 아닌 것 같다”며 “국제정세나 국내문제를 보면 100년전 구한말과 같은데 정치하는 사람들이 잘해야 한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또 옥인동 자택을 방문한 한나라당 최병렬 대표와 소장파 의원들과의 만남에서 “밖에 나가서 보니까 답답하고 나라가 여러 가지로 걱정이 된다”며 “이럴 때일수록 야당이 잘해줘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측근들은 “정계를 떠나 자연인 신분으로 나라를 걱정하는 것이지 다른 뜻은 없다”고 선을 긋고 있지만, 그간 국내 정세에 대해 일체 언급을 회피해 오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양상이다.

이 전 총재의 말을 종합해 보면 국내 정세의 혼란상과 미국의 달라진 대 한국 시각, 이를 타개하기 위한 야당 단합을 주문한 것으로 귀결된다. 노무현 정권의 출범이후 상황을 혼란과 위기로 규정한 것. 유난히 말을 아껴오던 그가 사실상 현 정권에 대한 우회적인 언급을 통해 평균점 이하의 점수를 매긴 대목은 분명 이 전 총재의 국가적 역할론과 맥이 닿아 있다.


순수하고 미래지향적인 활동

최근의 국내 상황을 놓고 국민 사이에는 ‘발전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과도기적 현상’이란 희망 섞인 전망을 내놓는 진보성향 세력과, 정 반대의 시각에서 ‘국가의 총체적 부실 심화’로 보는 보수성향의 목소리로 극렬하게 나뉘어 있다. 이 전 총재는 후자에 동의를 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 전 총재 주변에서는 “어차피 국가 봉사의 뜻을 밝힌 이상 개인적으로 활동하기에는 어려운 현실을 감안한다면 가장 순수하고 미래지향적인 학술 연구재단 등의 설립이 명분도 있고 모양새도 좋지 않겠느냐”고 말하고 있다. 이런 연구재단을 통해 이 전 총재의 뜻이 반영된 국가적 위기 타개책을 제시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이에 대해 일각에서는 이 전 총재 측이 보수주의를 지향하는 미국의 헤리티지(HERITAGE) 재단을 모델로 삼을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헤리티지 재단은 1973년 공화당의 젊은 신 보수주의자들에 의해 ‘진정한 보수혁명’의 기치 아래 설립됐으며 미국의 경제와 대외정책, 국방 유엔 등의 분야별 정책개발에 주력하면서 공화당의 싱크탱크 역할을 하고 있다.

대외적 상황과 여건 등을 감안하면 이 전 총재가 재단을 세울 경우 이와 상당 부분 합치되는 점이 많을 것 같다. 다만 아무리 순수성을 내세우더라도 ‘제2의 아태재단’이나 ‘정계복귀 수순’이란 시각은 부담으로 남는다.

염영남기자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