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섭의 한의학산책] 만성피로증후군

내원하는 환자 중에 “나는 만성 피로 증후군”이라고 말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만성피로증후군(Chronic Fatigue Syndrome)’이란 명칭은 1988년에 CDC(미국질병통제센터: Centers for Disease Control)에 의해 처음으로 제안된 이후 널리 사용되고 있다.

특히 환자들이 이렇게 부르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이유는 아마도 ‘만성피로’라는 익숙한 용어에서 일종의 심리적 안정감을 느끼기 때문인 것 같다.

사실 피로 증상은 누구나 흔히 경험하게 되는 신체적, 정신적 증상이다. 그러나 만성 피로 증후군은 과로와 일시적인 스트레스로 오는 일반적인 피로와는 구별되는 질환이다. 정상적인 피로 증상은 대부분 휴식, 수면 등으로 사라지지만, 특별히 피로를 느낄 만한 생활을 하고 있지 않는데도 6개월 이상 지속되는 피로 증상은 비정상적인 피로일 가능성이 많다.

흔히 많은 활동량을 요구하는 15~40세와 체력 저하가 쉽게 나타나는 60세 이후에 피로 증후군 환자가 발생한다. 두통,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 근육과 관절 부위의 통증, 잠을 자고 난 후에도 개운하지 않은 느낌, 일한 후에 나타나는 미열감, 뒷목과 어깨 부분의 당기는 듯한 느낌, 인후부의 불쾌감 등의 증세가 4개 이상 6개월 이상 나타날 때 만성피로증후군이라 진단 할 수 있다.

만성피로를 일으키는 요인은 육체보다 심리적 상태에서 오는 수가 많다. 여러 가지 정신 감정적 불균형이 주범일 가능성이 크고, 그 가운데서도 수면장애와 스트레스, 우울증이 주요인이다.

이러한 피로를 해소하는 방법으로는 일단 휴식이 필요하다. 현대인들에게 충분한 휴식은 정말 꿈같은 일이겠지만 휴식은 인체가 다음 일을 보다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준비가 된다.

그러나 심리적인 피로일 때는 휴식만으로 관리가 쉽지 않다. 휴식을 취하려고 하면 오히려 정신적 긴장을 악화시킬 수가 있다. 그럴 때는 적절한 신체 자극이 도움이 되는데 정원을 가꾸거나 가벼운 산보나 운동을 통하여 긴장된 정신상태를 풀어주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그리고 충분하고 질 좋은 수면도 필수적이다.

음식 섭취에서도 비타민 C는 스트레스로 인한 피로회복에 좋다. 지방질, 당분의 섭취를 줄이고, 과식을 피하도록 한다. 잘못된 생활 습관 가운데서도 먼저 교정해야 할 것은 흡연과 만성적인 음주가 꼽힌다. 하루에 몇 잔씩 마시는 커피도 만성 피로를 가중시키는 주범이다. 숙면을 방해하고 잠들기까지 시간도 늦춰 피로를 가중시킨다.

한방에서는 만성피로를 노권상(勞倦傷), 허로증(虛勞證)의 범주로 보는데 소화 기능을 담당하는 위장과 육체적 운동 능력을 주관하는 비장에 이상이 생기거나, 기와 혈액 순환의 균형이 깨지면서 생긴다고 한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간에서 받게 되는데 간이 피로함을 조절하게 된다. 그런데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간 기능에 이상이 생겨 피로를 느끼고 다시 위장 기능이나 심장 기능을 저하시킨다.

이러한 피로 증상이 있을 때 주변의 흔한 전통차로도 일정부분 효과를 볼 수 있다. 나른하고 피로로 인해 머리가 멍한 경우는 쌍화차, 인삼차, 구기자차를 복용한다. 머리를 많이 쓰는 수험생이나 사무직 종사자의 경우에는 맑은 기운을 머리로 올려주고 과다한 정신노동에 의해 머리에서 나는 열을 식혀주는 녹차, 결명자차, 감국차가 좋다. 몸이 찌뿌둥하고 무겁게 느껴지면서 몸이 비만하다면 율무차를 마시도록 한다.

과학과 의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사람이 스트레스의 영향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문명이 발달할 수록 일과 스트레스는 더 증가할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만성피로 증후군을 호소하는 환자는 늘어갈 것이다.

스트레스는 쌓이면 쌓일수록 해롭기 때문에 스트레스의 총량을 줄이고, 스트레스가 될 만한 일들은 분산해서 처리하는 것이 좋다. 주어진 업무는 부담스럽게 생각하기보다 기회나 도전의 의미로 받아들이면 스트레스를 줄일 수 있다. 지나친 성취욕에 얽매이지 말고 세상사에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도 있다는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


강남경희한방병원 이경섭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