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 이야기] 커피에 대한 즐거운 상상

어디론가 훌쩍 떠나 맛있는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었다. 아름다운 음악이 흐르는 곳이라면 더욱 좋으리라. 문득 오래 전에 가보았던 경주의 한 커피숍이 생각났다. 과거에 그 커피숍을 방문한 것은 그 커피숍이 생긴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당시 주인은 커피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다. 그렇기에 자신이 열렬한 애연가임에도 커피 향을 보호한다고 ‘커피숍 내 금연’을 선언해 버리기도 했었다.

그 커피숍은 어떻게 변했을까. 확인해볼 요량으로 바로 서울을 떠났고 도착한 경주는 이미 어둑어둑한 밤이 되어 있었다. 지하에 위치한 ‘슈만과 클라라’란 이름의 그 커피숍은 4년 전과 달라진 게 거의 없었다. 여전히 금연을 고수하고 있었고,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나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변화하지 않는 공간이 있음에 새삼 안도감이 밀려왔다.

커피 두 잔을 마셨다. 진한 ‘케냐 커피’와 밝게 볶아져 연하게 추출된 ‘콜롬비아 커피’였다. 이 두 커피는 부분적으로라도 맛이 비슷해야 한다. 케냐 커피는 콜롬비아 커피 묘목을 이식받아 재배가 시작된 커피이기도 하고, 재배와 가공이 콜롬비아를 모델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잔의 커피 맛은 명료하게 달랐다.

케냐 커피는 와인과 초콜릿에서 느껴지는 아프리카 커피 특유의 쌉쌀한 감촉을 잘 표현했다. 진하되 쓰지 않은, 깊이를 간직한 고급스런 느낌. 두 세 모금을 마신 후 설탕을 한 스푼 반 넣어 마시자 커피는 또 다른 미각의 즐거움을 선사했다. 콜롬비아 커피는 너무 밝게 볶아져 콩풋내가 나 조금은 당혹스러웠다.

그러나 한 모금 더 마시자 그렇게 볶아져 연출한 까닭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쩌면 가장 많이 알려지고 편안한 느낌을 제공하는 콜롬비아 커피의 본질을 알리고 싶었으리라.

어쩌면 이러한 것들은 주인의 의도와는 다른, 나만의 맛의 변질된 해석인지 모른다. 그러나 그러면 어떠랴. 좋은 커피에 나름대로의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한 재미가 아닐까? 철학적으로든지, 음악이나 미술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든지 커피에 대한 즐거운 상상일터니 말이다.

늦은 밤이었기에 주인과 커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본인은 커피를 잘 모른다고 말하는 겸양 속에 순수한 커피의 열정이 담겨 있었다. 서울로 올라오는 차창에 그 커피숍의 잔영이 잔잔하게 그려졌다.

한승환 커피칼럼리스트


한승환 커피칼럼리스트 barist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