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6세 작은 어른들, 강력한 소비집단

[패션] 패션의 리틀파워 '틴'

11~16세 작은 어른들, 강력한 소비집단

옷을 살 때 패션을 따르고, 새로운 제품을 앞서 구매하고, 유행을 빨리 수용한다. 의류소비 조사에서 언제나 선두를 지키는 10대. 13살에 데뷔해 1인 중소기업으로 불리는 보아, 14세의 천재 골퍼 미쉘 위의 활약 등 10대 돌풍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 중에서도 초등학교 고학년(11~13세)과 중학생(14~16세), 이 나이를 어린이라고 부르면 곤란하다. ‘작은 어른’쯤으로 불러야 하나? 10대의 파워로 인해 주니어 패션도 새로운 호황을 누리고 있다. 새 시대를 이끌어갈 작은 파워, 그들의 문화를 이끄는 주니어 패션을 들여다보자.


10대후반 하이틴과 차별화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풍요로움을 받고 자란 이들 세대가 새로운 소비세대로 떠올랐다. 이들은 신체적으로 성숙할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성숙하다.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세계를 쫓아가기 보다 자신들만의 세계를 찾는다.

맞벌이하는 부모 밑에서 자라는 1인 자녀가 많기 때문에 혼자 있는 시간에는 인터넷에 빠져 지내는 세대. 자신의 홈페이지를 만들고 아바타 치장에 열중하며 주니어용이지만 색조 화장품을 사용할 정도로 자기 자신을 꾸미는 일에도 관심이 많다. 이들은 10대 전 후반을 지칭하는 프리틴(Preteen), 로틴(Low-teen)으로 불리며 십대 후반의 하이틴(High-teen)과 차별화 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이미 1950년대 자유민주주의 호황 기에 틴에이저의 등극이 시작됐다. 전쟁 이후 경제호황과 함께 생산과 소비가 모두 늘어났다. 쓰고 버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소비주의 풍조로 1회 용품의 사용이 증가했고, 할리우드 영화와 영화배우의 스타일이 10대들 사이에서 선풍을 일으켰다.

이 시기부터 가정 내에 자녀들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고 틴에이저들은 자신들이 직접 의류를 구매할 재정적 능력을 가지게 됐다. 따라서 이들을 대상으로 한 잡지, 화장품, 주니어 패션 등이 등장한 것은 당연지사. 틴에이저들은 그들의 부모 세대와는 다른 형태의 패션 취향을 취하고 영 패션을 활성화시켰다.


성인 못지않은 소비성향

‘주니어 아르마니’, ‘디케이엔와이 키즈’, ‘영 베르사체’, ‘돌체앤가바나 주니어’, ‘미스 블루마린’ 등 해외 유명 브랜드들은 주니어 패션에 대한 관심을 영, 주니어, 키즈 등의 수식어를 덧붙여 선 보인지 오래다.

국내의 패션업체들도 주니어시장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의류 구매시 60% 이상이 이들의 의사에 따라 결정되고 반복 구매 빈도수가 높게 나타나는 등 주니어가 강력한 소비집단으로 부상했기 때문이다.

이 세대는 글을 익히자마자 인터넷을 시작한 세대로 숙제와 공부는 물론 이메일, 동호회, 게임, 음악, 채팅 등 인터넷에 너무나 익숙하다. 요즘 초등학교 고학년 중에는 주니어 잡지, 전용 화장품, 10대 전용 휴대전화 등을 가지고 다니는 학생이 많아 성인들의 소지품과 별반 다르지 않다. 날로 신체 성숙도가 빨라지고 모방 심리와 자기 주장이 강해지면서 소비 성향도 성인 못지 않다.

주니어를 겨냥한 시장은 이미 화장품, 통신, 잡지 등 활발하다. 프리틴 대상 잡지로는 학용품 같은 ‘와와109’, ‘미스터 케이’, 10대 스타들의 소식지 ‘주니어’, ‘틴스타’, 패션지 ‘신디더퍼키’, ‘보그걸’, ‘엘르걸’ 등 수많은 잡지가 10대들 사이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외국어에 대한 관심도 커져 ‘주니어 토익’, ‘YBM주니어 토익’ 등 이들을 겨냥한 학습 교재도 쏟아져 나오고 있다. ‘팅’, ‘TTL’ 같은 10대 통신서비스의 활약도 계속되고 있다.

패션에서는 기존 브랜드의 서브 브랜드 개발 및 런칭이 활발하다. 고급화 명품화 바람도 주니어 시장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유아, 토들러, 아동의 경계도 무너졌다. 이 경계를 확대하고 포괄하는 브랜드로 새 단장하고 확장하는 시도가 더해졌다. 새로운 브랜드를 키우기 보다는 기존 브랜드의 명성을 이어가겠다는 생각이다.

이에 고급화로 변신하려는 유아복 브랜드들이 라이센스 또는 직수입 브랜드 런칭을 준비하고 국내 브랜드들도 고급화 및 명품화 전략을 강화하여 서브 브랜드를 내놓고 있다.

캐주얼 브랜드들의 주니어 패션 시장 진입이 가장 눈에 띈다. 이미 매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는 의류브랜드에서 모 브랜드의 명성을 기반으로 미니 사이즈를 제시한다는 점이 특징적. 성인 브랜드와 분리시키지 않고 기존 브랜드의 매장 안에서 함께 만날 수 있는 샵인샵(shop-in-shop) 개념으로 전개해 패밀리 브랜드로의 모습을 보여준다.

성인복이 제시하는 고급스럽고 지적인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해 자신과 자녀를 동일시해 자녀에 대한 관심과 투자에 적극적이고 변하지 않는 스타일에서 고급스러움과 차별성을 찾는 부모들이 1차 타깃이다.


주니어 명품족 등장

국내 성인복 패션의류업체들의 주니어 라인은 이미 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게스 키즈’, ‘폴로 보이즈’, ‘이랜드 주니어’, ‘리틀 뱅뱅’, ‘지오다노 주니어’ 등. 지난해 선보인 ‘조프 주니어’, ‘마루 아이’와 봄부터 선보인 ‘리바이스 키즈’, ‘에스쁘리 키즈’ 등이 주니어패션을 이끌고 있다.

올 가을에는 ‘빈폴’, ‘인터크루 주니어’, ‘씨피컴퍼니 언더식스틴’, ‘앙드레김 키즈’가 선보이고 ‘타미힐피거’, ‘버버리’ 등도 키즈, 주니어 라인의 런칭을 준비중이다.

패션진의 대명사 ‘게스’의 서브 브랜드인 ‘게스 키즈’. 2000년 가을에 대대적인 리뉴얼을 단행, 프리틴 라인을 강화했다. ‘게스 키즈’는 이 여세를 몰아 지난 여름부터 ‘걸(girl)’라인을 확대하고 영국의 주니어 색조화장품 전문 브랜드 ‘미스 몰리’와 함께 프로모션을 진행해 주니어 패션의 선두 자리를 지키고 있다.

여아 전문 브랜드인 이랜드 ‘더데이걸즈’도 지난 97년부터 꾸준히 주니어를 공략하기 위한 마케팅을 펼쳐 왔다. 10~12세를 대상으로 한 ‘더데이걸즈’는 지난해 20% 매출 성장을 보이며 상승세에 있다. 귀여운 소녀의 이미지보다 성숙한 여성의 이미지를 미니 사이즈로 제시한 것이 성공의 열쇠였다.

국내 트레디셔널 브랜드의 대표 주자 ‘빈폴’도 패밀리 브랜드로 도약하기 위한 전략의 일환으로 올 가을 주니어 라인 ‘빈폴’을 선보인다. ‘빈폴’은 주니어 라인의 명칭을 따로 지칭하지 않고 ‘빈폴(Bean Pole)’을 그대로 사용, 성인복의 이미지를 공유한다. 이미 인터넷상에서 선 주문을 받고 있을 정도로 성공을 자신하고 있다.

주니어 고급 맞춤복 시장은 ‘앙드레김 키즈’가 접수한다. 자신의 자녀가 미래의 귀족, 사회의 엘리트나 리더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럭셔리 아동복으로 표현한다. 기성복과 함께 맞춤복 블루라벨을 한정 생산, ‘앙드레김’의 명성을 이어간다. 중세 고딕의 정교하며 화려한 디자인을 아이들의 기사놀이로 표현해 정통성과 실용성을 함께 선보인다.

‘크리스찬디올’의 주니어 라인 ‘베이비 디올’도 주니어 럭셔리 라인에 합류한다. ‘베이비 디올’은 모나코의 왕비, 그레이스 켈리가 크리스찬 디올에게 딸인 캐롤라인 공주를 위한 옷을 의뢰하면서 시작됐기에 왕족을 위한 특별한 옷이라는 찬사가 따른다. 성인 컬렉션의 디자인과 소재를 그대로 사용해서 성인복과 다름없는 컨셉으로 보여지게 된다.


성인복 뺨치는 가격대

주니어 의류의 가격은 성인 제품의 70~80% 수준으로 형성되지만 맞춤복이나 10%이하의 소량 생산되는 노블리스 라인의 경우 성인복에 버금가는 가격이 책정되기도 한다.

‘작은 어른’에 대한 아낌없는 투자를 사치로 몰기는 어렵다. 이 같은 주니어패션의 관심은 부모가 자녀에게 애정을 쏟아 붓듯 기업이나 브랜드의 입장에서는 미래의 고객을 위한 투자로 볼 수 있다. 막대한 자본과 마케팅을 동원해 10대 이동통신 서비스를 지속하고 있는 통신회사들의 지침도 ‘미래의 자사 고객을 위한 투자’라고 밝히고 있으니.

주니어패션에 대한 관심은 10대의 자신의 자아 형성과 그들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더해진 미래의 희망과 기대감 때문이 아닐까.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박세은 패션칼럼니스트 suzanpark@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