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 누리장나무

요즈음 산엘 가면 이름이 가장 궁금해지는 나무는 무엇일까? 자잘한 붉은 꽃이 애잔한 싸리쯤이야 아는 이들이 많을 듯 하고, 물푸레나무의 잎새의 싱그러움이야 마음먹고 고개를 들어 올려보아야 그 맛이 살아나니 무심한 산길에 느껴지기는 어려울 듯도 하다.

하지만 산길에서 만난 누리장나무의 꽃송이들은 한번 보고나면 아무리 목석같은 마음이라도 한번쯤은 발길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고 이내 이름이 무얼까 궁금해질 법 하다. 그만큼 특별한 개성을 지는 꽃을 가졌기 때문이다.

누리장나무는 마편초과에 속하는 중간키 정도의 나무이다. 높이 자라지도 그렇다고 그리 작은 관목도 아니어서 언제나 산에서 눈높이보다 약간 높은 정도로 자라 보기에 딱 좋다. 달걀 모양의 아이 손바닥만한 넓적하고 무성한 잎이 마주 달린다. 작은 오동나무잎을 생각하면 된다.

그 잎들의 가운데쯤에 꽃들이 달린다. 꽃잎의 모양도 일정하지 않고 더욱이 수술이 아주 길게 빠져나와 곱다. 꽃잎 한 장의 길이는 아주 길지 않아도 전체로 치면 3㎝정도는 되고 이런 꽃들이 다시 수십개 씩 한자리에 모여 달리니 우리의 눈길을 끌지 않을 수 없다. 꽃이 지고 달리는 열매 역시 특별하다.

이미 짐작하셨겠지만 누리장나무란 이름은 이 나무에서 나는 누린내 같은 냄새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현대인의 입맛이 딱 맞을 법한 톡톡 튀는 꽃과 열매를 지녔으면서도 오래된 시골 곳간 냄새와도 같은 누릿한 냄새가 난다. 그래서 개나무(씻지 않은 개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니까), 누린내나무라고 하는 치명적인 별명을 가지고 있다. 한방에서는 냄새가 나는 오동나무 잎을 닮은 나무라하여 취오동(臭梧桐)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꽃이 여름내 볼 수 있고 이어서 가을이 다 가도록 멋진 열매 감상이 가능하니 조경수로 관심을 두는 이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어느 땅에서나 잘 자라고 추위, 공해 등에도 잘 견디며 빨리 커서 좋다. 어릴 때 그늘에서도 크는 장점도 있다. 나물로도 유명하다. 냄새가 나서 어찌먹겠나 싶지만 봄에 어린 잎을 데쳐 우려내면 독성도 빠지고 냄새도 사라진다.

한방에서는 거풍, 소종 등에 효과가 있으며 혈압을 낮추는 역할도 한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혈압이 높거나 중풍 혹은 마비로 인한 통증이 있는 경우 이용한다고 한다. 종기가 날 때는 이 나무의 생잎을 찧어 붙이는 민간에서의 쓰임도 있다.

누리장나무의 꽃감상을 좀 더 하고 나면 붉은색 꽃받침이 남는다. 그 빛깔은 그저 붉다고만 말하기 어려운 자주빛이 많이 나는 아주 특별한 색깔이어서 마치 자연의 색에 이런 빛깔도 있었을까 싶을 정도이다. 열매는 익으면서 그 꽃받침이 벌어지고 그 안에 남빛이 도는 검은색의 구슬같은 모습으로 드러난다. 아름답게 세팅해 놓은 흑진주 반지같은 모습을 보는 듯하다. 그러니 이 나무를 이 여름에 알고 나면 가을까지 또 하나의 즐거움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