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다른 인생을 사는 '나도 배우'

[직업의 세계-10] 재연배우 김량경

또 다른 인생을 사는 '나도 배우'

어쩐지 낯익은? 김량경(24)은 흔히 말하는 ‘재연배우’다. MBC TV ‘타임머신’을 통해 알려진, 신인 같지 않은 당찬 신인이다. 출연 경력 1년반만에 인터넷에 팬 클럽까지 얻었다.

망가진 배역 소화는 김씨의 특기중 특기. 술집 작부역으로부터 출발해 깡패 여고생, 못생긴 선생님, 50대 아줌마, 노처녀, 가정부 역할 등을 단골로 맡으며 천연덕스런 연기로 시청자들을 녹여 왔다. 이렇다 할 연기 수업 한번 받지 않은 일반인 출신 연기자라 더욱 의외다.

“원래는 시청자 배우로 참여했다가 이제는 연기가 본업이 됐어요. 연기만 하고 싶어서 몇 달전부터는 하고 있던 다른 일들도 모두 정리했어요.”


개그맨 웃기는 코믹배우

남다른 주목을 받아 교양 프로그램에 화제의 인물로도 여러 차례 소개되기도 한 김씨. 카메라 앞의 배짱과 열정이 여늬 베테랑 못지 않다. 그의 맹렬 연기는 첫 출연 때부터 돋보였다.

원래 자신의 역할도 아닌데 자청해 머리로 바가지를 깨는 장면에 도전했다. 열연 끝에 머리에서 피까지 났다. 안스러워 어쩔 줄 모르는 PD에게 ‘저는 괜찮아요. 다음에 한번 더 써주세요’라며 오히려 웃었던 열성파다. 지금도 그는 이들 제작진에게 손꼽히는 기대주 중의 한 사람이다. 개그맨들을 웃기는 코믹배우이기도 하다.

세상에 알려진 건 최근 일이지만, 연기자의 꿈을 키운지는 아주 오래다. 애초의 꿈이 개그우먼 되기. 경남 고성 출신인 김씨는 학창 시절 내내 학교의 무슨 행사만 있었다 하면 도맡아 놓고 진행을 보았던 ‘학교내 개그우먼’이었다. 친구나 선생님들로부터 입버릇처럼 ‘꼭 개그우먼이 되라’는 당부를 듣고 살았다.

어린 나이에 무작정 상경한 것도 개그우먼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였다. 중학교 때 방송사 개그맨 공채 응시 자격이 전문대졸 이상의 학력이라야 한다는 공고를 보고 직접 돈을 벌어서라도 대학에 가기로 결심, 고등학교 때부터 혼자 서울에 올라와 자취하며 학교에 다녔다.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직장생활을 하며 3년만에 1,000만원을 모았다. 그것으로 전문대에 입학했으나 너무 허탈하게도 대학1년 때 개그맨 공채의 학력 제한이 없어져버렸다.


??은 일 하며 키운 연기자의 꿈

그 후 방송사 공채 때마다 문을 두드렸다. 난생처음 개그맨 시험을 보러 갔다가 너무 가슴이 떨려 면접시험장 문을 열자마자 도로 닫은 채 돌아서 나온 곳도 다름아닌 현재의 그를 처음 연기자로 만들어준 MBC였다.

SBS 시험 때는 기성 개그맨들이 짜준 멋진 레퍼토리를 준비하고도 막상 실기시험에서는 평소 실력의 100분의 1도 발휘하지 못했다. 면접관들 앞에만 가면 얼어붙는 자신을 보고 결국 개그우먼의 미련을 접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스스로 생계를 책임져 온 억순이 김씨. 나이에 비해 고생도 많았다. 대학을 그만둔 직후 한 출판사에 취직해 2년간 책 외판원으로 뛰었다. 어느날 심한 욕에 물벼락까지 맞고 혼자 울었던 기억이 아직도 아프다.

“어린이용 도서전집을 팔았는데, 한번은 아파트를 돌면서 벨을 눌렀더니 주인 아저씨가 문을 열자마자 ‘오지 말랬는데 왜 왔냐’며 갑자기 물을 퍼붓고 욕설을 하시더라구요. 그때 참 많이 울었어요.”

화장품 회사의 외판원, 전화상담원, 빈 시간에는 전단지 뿌리는 일도 했다. 연기자 오디션을 위한 개인기도 쌓을 겸, 바텐더로도 일한 바 있다. 그 상황에서도 출판사와 화장품 회사 근무 때 자신이 소속된 지부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단골로 사회를 보는 등, 타고난 끼를 감추지 못했다.

그 후 케이블 TV 평화방송에서 일자리를 얻게 되면서 방송의 매력에 더욱 깊이 빠지게 됐다. FD겸 AD로 PD의 뒤를 따라다니며 갖가지 현장 보조업무를 맡는 한편, 어린이 프로그램에서 인형 분장을 하고 연기를 하거나 드라마 형식으로 문제를 출제하는 弧?프로그램에서 1인 다역을 맡기도 했다. 소탈하나마 연기의 맛을 본 곳이었다. 방송과 카메라에 적응하는 데에도 좋은 디딤대가 되었다.

“제가 연기자가 되고 싶어하는 걸 알고 그곳의 PD와 작가가 특히 적극적으로 응원을 해주셨어요. 퀴즈 프로그램에서는 혼자서 여러 역을 맡아 뛰느라 힘들기도 했지만 참 재미 있었어요. 그걸 하면서 나는 꼭 연기자가 되겠다고 결심을 더 굳히게 된거죠.”

마침내 지난해 1월 일반 시청자들을 대상으로 출연 기회를 주는 ‘타임머신’의 시청자 배우로 나서면서 꿈에도 그리던 공중파 방송 출연의 문턱을 넘게 되었다. 원래 한번으로 끝날 출연 자격이었지만 타고난 끼와 의욕으로 눈에 띄면서 ‘장수’의 길이 뚫렸다.

물론 칭찬만 기다리고 있는 건 아니었다. “그동안 출연하면서 야단도 많이 맞았고, 배운 것도 많아요. 제일 심하게 꾸중들은 건 6개월쯤 지났을 때인가, 카메라 감독님이 ‘야! 연기라도 못하면 오버라도 잘 해야지!’ 하시는데, 심장이 콱 막히는 것 같았어요. 아, 내가 연기도, 오버도 아무것도 잘하지 못하는 거구나, 워낙 충격을 받아서인지 곧바로 다시 촬영에 들어가자마자 한번에 OK를 받아냈어요.”

어느새 밖에서는 사인을 청하는 팬들까지 생겼지만, 드디어 원하던 연기자가 되었다는 행복감도 잠시, 김씨의 지난 1년 반 동안에는 기대감과 실망이 수시로 시소를 탔다.

“올해 초에 토크쇼에까지 초대됐을 때는 정말 뭔가 되는 줄 알았어요. ‘이제 나는 된 거다. 앞으로 출연할 곳도 많아지겠지’하고 잔뜩 기대에 부풀었어요. 그런데 별로 달라지는 게 없더라구요. 시간이 갈수록 이것이 생각보다 쉬운 길이 아니라는 걸 많이 느껴요. 사실 여기서 코믹연기만 하면 다른 정극 드라마에서 잘 안 써준다고 주위에서 말리는 분들도 많지만, 저는 어차피 평생 코믹 연기자로 갈 생각이라 그건 괜찮아요. 다만 출연하는 곳이 적다 보니 뭣보다 생활이 가장 어려워요.”

첫 방송 때 출연료 5만원을 받았던 김씨는 얼마 뒤 제작진의 인정을 받으면서 공식적으로 연기자로 등록돼 등급별 지급 규정에 따라 출연료를 받는 신분이 되었다. 그렇게 조정된 출연료가 1회에 약 15만원선. 팀별로 번갈아가며 제작하는 시스템에 따라 출연은 보통 2~3주만에 한번씩 찾아온다. 기본적인 생활에도 턱없이 부족한 수입이다. 이를 메꾸기 위해 김씨는 한달에 두어번 홈쇼핑의 연출 모델 일거리 등을 맡는 것으로 그럭저럭 버티고 있다.

다른 부업이라도 가질까 심각하게 고민도 하지만, 이럴 때 또 딜레마다. 언제 불시에 호출을 받을지 모르는 것이 방송 출연. 자칫하면 두 가지 일 모두 망칠 수 있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 케이블 TV에서 일할 때도 그리 많지 않은 월급이라도 꼬박꼬박 적금까지 쪼개어 붓던 또순이지만 이제는 수입 자체가 불규칙해 아무런 계획조차 통하지 않는다.

한번 출연에 수십, 수백만원씩 받는 탤런트들을 보면 부러움을 넘어 한숨까지 난다. 자신도 그 같은 때가 언제 올까 막막하고 아득할 때가 많다. 어떨 땐 인기 탤런트들의 뒷모습에서 빛이 나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대배우들은 확실히 뭔가가 다르구나’하다 가도 ‘다른 사람들도 나중에 나를 보면서 저런 느낌을 받게 될까?’ 자신에게 반문하곤 한다. 꼭 그렇게 느끼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또 한번 단단해진다.


"재연배우가 아니라 연기자예요"

사람들이 왜 굳이 ‘재연배우’라고 부르는지 종종 속상하기도 하다. 당당한 연기자로 불리고 싶은 김씨. 곧바로 방송에 뛰어든 김씨와는 달리 다른 재연배우중 상당수는 연극배우 출신들이다. 같은 프로그램에서 동고동락하며 김씨에게 연기 지도도 아끼지 않는 소재익씨도 연극배우다. 모두가 연기자로서의 열정과 포부를 가진 이들이다.

“재연배우라는 설움이 다들 있지요. 우리끼리 사적으로 얘기 할 때도 어디 놀러 가자는 식의 얘기는 한번도 해 본 적이 없어요. 거의 대부분 신세 한탄이지요. ‘이번 주에는 연락이 안 온다’ 그런 얘기거나 ‘불러줄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직접 찾아나서봐라’는 식으로 서로 위로도 하고 조언도 해주고 그래요. 차라리 방송국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똑같은 연기자로 우리를 봐주는데, 오히려 방송국 안에서 우리를 낮춰보는 시선이 많아요. 그런 게 서글프지요.”

김씨는 매주 월요일만 되면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그 주일의 출연 요청 전화가 오는 날이 대개 월요일 오후다. 출연해 달라는 전화가 오기 전에는 아무것도 확실치 않다. 매주 이런 불안과 조바심과 싸우며 지내야 한다. 내일을 약속 받을 수 없는 단발 출연자의 고행이다.

“한번은 6주동안 아무데서도 안 불렀을 때가 있었어요. 1주일은 거의 매일 집에만 있었는데 미치는 줄 알았어요. 너무 우울해져서 아무도 만나기도 싫고, 아무 것도 하기도 싫고, 집에서 줄곧 비디오만 보고 있었어요. 비디오를 보면서도 ‘아, 나는 언제 저렇게 연기해볼까, 나도 기회만 주면 잘 할 수 있는데…’ 그 생각만 하면서요.”


"코믹 영화배우로 뜨고 싶다"

한때 연기자들과 친숙해지는 방법이 될까 해서 발 맛사지와 스포츠 마사지를 배워 자격증을 딴 적도 있다. 연기할 자리만 있다면, 단 한 장면이라도 자신을 불러주는 분들이 늘 고맙다는 김씨. 리포터로도 뛰어보고 싶고, 일일시트콤에 출연할 수 있는 날을 꿈꾸기도 한다.

최종목표는 코믹 영화배우가 되는 것, 무엇보다 재연배우는 연기자로 대성할 수 없다는 틀을 보란 듯이 깨어놓고 싶다. 10년만에 축포를 터뜨린 탤런트 장서희의 고진감래나 ‘구마적’으로 히트한 이원종도 원래 재연배우 출신이었다는 사실이 김씨에게는 더 없는 용기를 준다. 이 상황을 얼마나 오래 견딜 수 있겠냐는 물음에 ‘끝까지!’라고 대답하는 김씨.

“제게는 오직 이 길밖에 없는 걸요. 사무직 같은 건 제 성격에 좀이 쑤셔서 못하고, 카메라 앞에만 서면 저는 행복해요. 생활이 어려운 것도 이제껏 그런 저런 고생도 다 해봤는데 앞으로라고 못하겠어요. 연기자로 성공할 때까지 끝까지 기다릴 거예요.”

기회가 닿는다면, 10년 뒤에 다시 한번 김씨를 취재하고 싶다.

글 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글 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