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율 40% 상회, 정치인 불신이 낳은 반대급부 분석도

캘리포니아 주지사 출마한 아놀드 슈워제네거

지지율 40% 상회, 정치인 불신이 낳은 반대급부 분석도

미국 캘리포니아 주지사 보궐선거에 나선 ‘거버네이터’ 아놀드 슈워제네거가 미국의 하한 정국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세계적인 근육질 스크린 스타로 명성을 쌓아온 슈워제네거가 공화당 후보로 출마를 선언하자마자 그의 지지율은 40%를 넘어섰고, 덩달아 워싱턴 정가는 벌써부터 민주당 아성에서 공화당이 승리할 경우 내년 대선에 불어 닥칠 파장을 가늠하기에 바쁜 모습이다. 한때 백악관이 슈워제네거를 도와줄지 여부를 놓고 고민에 빠질 정도였다.

하지만 슈워제네거에 대한 뜨거운 관심은 연예인 출신 새 정치 스타를 맞을 수 있다는 흥미로움에 기인하기 보다는 보궐선거를 야기한 현 캘리포니아 주지사 주민 소환의 정당성, 2000년 대선을 연상케 하는 미 정치제도의 모순에 대한 짙은 회의에서 출발한 것이어서 귀추가 주목된다.


날로 치솟는 인기

10월 7일 치러질 보선을 앞두고 슈워제네거는 스크린 스타답게 8월6일 코미디언 제이 리노가 진행하는 NBC 방송 ‘투나잇쇼’에 출연, 출마를 전격 선언했다. 그는 “정치인들이 빈둥거리고, 서툰 짓이나 하면서 캘리포니아에서 일을 그르쳤다”라고 기성 정치인을 싸잡아 비난, 대중들의 속을 시원하게 긁었다.

미 국민에게 그의 출마 선언은 대통령이 되기 전 캘리포니아 주지사로 정치 경력을 쌓았던 영화배우 출신의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했다.

출마 선언 직후 그의 지지율은 하루가 다르게 급등 중이다. 출마선언과 동시에 실시된 주간지 타임과 CNN방송의 지지율 조사에서 그는 25%로 1위 였고, 사흘 뒤인 11일 USA투데이와 갤럽이 실시한 조사에서 응답자의 42%가 그에게 투표할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조사 결과로만 보면 지지율 2위인 민주당 소속의 크루즈 부스타만테 현 캘리포니아주 부지사를 큰 표차로 따돌리고 당선될 것이 확실시된다.

특히 응답자의 52%는 그가 정치인들보다 주지사 직무를 더 잘 수행할 것이라고 답하고, 3분의 2 이상이 그레이 데이비스(민주당) 현 주지사를 소환해야 한다고 밝혀 미 국민의 정치인 불신이 매우 심각한 수준임을 드러냈다.


절름발이 제도에 따른 슈워제네거의 등장

하지만 미 언론과 지식인들은 이런 인기가 현 정치권에 대한 짙은 불신에서 나온 반사적인 현상일 뿐이며, 이런 불신을 조장하는 주민소환제와 보궐선거제의 문제점을 이번에 뜯어고쳐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다.

기성 정치인들에 대한 불신이 그의 지지로 투영된 것은 프로레슬러 출신으로 미네소타 주지사를 지낸 벤추라가 “나는 그에게 결코 정치인처럼 행동하지 말라고 충고했다”고 말한 데서 잘 알 수 있다.

미 뉴욕타임스는 개인적인 축재나 부정이 없는 그레이스 주지사의 소환이 이뤄지는 것 자체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레이스 주지사가 주민소환으로 주지사 자리를 박탈당할 위기에 처하게 된 것은 380억 달러에 이르는 재정 적자의 처리를 두고 민주, 공화 양당이 힘겨루기를 하는 과정에서 공화당 극우파들이 그레이스를 내쫓는 음모를 벌였기 때문이라는 게 정설이다.

사실 이번 보선은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감세 정책을 추종하는 캘리포니아 공화당 지도부가 세금을 삭감하는 대신 복지예산을 대거 축소하는 예산안을 마련하고 그레이스 주지사가 이를 거부하면서 시작됐다. 흥분한 극우파들은 1건의 주민서명을 받을 때마다 서명모집책에 1달러를 주는 등 막대한 자금을 뿌리면서 소환 서명 작업에 착수, 소환 요건을 충족시켰다. 정치에서 다반사로 벌어지는 정책 결정에서의 힘겨루기로 인해 정식 선거에서 선출된 주지사가 내몰리는 상황은 매우 비정상이라는 지적이다.

언론들은 또 양당 후보만이 겨루는 정식 선거의 경우 과반수에 달하는 표를 얻은 후보가 당선되지만 보선의 경우 과반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를 하고도 당선될 수 있는 보선 제도의 허점도 질타하고 있다.

즉 그레이스 주지사는 지난해 공화당 후보와의 치열한 접전 끝에 49%의 득표를 하고 당선됐지만 135명의 후보가 난립하는 이번 보선의 경우 불과 10%만을 얻더라도 최다 득표자로 결정되면 주지사로 취임하게 된다. 그래서 공화당 성향의 워싱턴포스트도 “이번 선거는 벌써부터 희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면서 “과연 이것이 미국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가진 주를 이끌 지도자를 선출하는 방식인지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고 논평했다.

아울러 65명의 지지서명과 등록금 3,500달러만 내면 손쉽게 후보로 등록할 수 있는 허술한 규정도 도마 위에 오른 상태이다. 참고로 유권자들은 10월 7일 보선일에 그레이스 주지사를 불신임할지 여부를 묻는 용지에 투표한 뒤 불신임될 경우 차기 주지사를 누구로 결정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투표지에 기표하게 된다.


머리는 얼마든지 빌릴 수 있다

이제 보선의 초점은 슈워제네거가 개인적인 상처를 얼마나 잘 방어하고 현재 잡은 승기를 여하히 유지하는가에 모아지고 있다.

슈워제네거의 지지도가 수위로 랭크 되자마자 미 언론들은 먼저 행정 경험이 전무해 능력이 의심스럽다고 자질론을 들고 나섰다. 사실 슈워제네거는 미국에서 가장 큰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캘리포니아의 최대 현안인 재정적자 실태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기자들로부터 질문을 받을 때 말을 얼버무리거나 못들은 척하는 능청으로 일관하고 있다.

언론들은 그의 오스트리아식 영어 발음이 이런 능청을 부릴 때 퍽 도움이 된다고 비꼬고 있다. 그는 이런 약점을 보완하기 위해 투자의 귀재 워렌 버핏, 경제 외교 전문가인 조지 슐츠 전 국무장관을 캠프로 영입했다. ‘체력은 빌릴 수 없어도 머리는 빌릴 수 있다’는 게 그의 생각인 듯 싶다.

슈워제네거에게 더 골치 아픈 현안은 아버지 구스타프의 나치 부역 시비이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구스타프가 1938년 나치당에 입당한 후 악명 높은 히틀러의 돌격대 ‘슈트룸압타일룽엔(SAㆍ폭풍부대)’에서 활약했다고 폭로했다. SA는 구스타프 합류 직전 독일과 오스트리아 전역의 유대인 가정과 기업 등을 공격하고 수천의 유대인을 집단수용소에 감금한 작전에 투입됐었다.

슈워제네거는 지금껏 아버지의 전력에 대해 잘 아는 것 없다고 밝혀왔지만, 그가 1990년 조지 부시 전 대통령의 선거운동을 도운 직후 처음으로 정치권에 얼굴을 내밀 때 유대인 학살 만행 등을 연구ㆍ추적하는 단체인 시몬 비젠탈 재단에 거액을 기부했었다. 그는 평생 껄끄러운 관계를 유지했던 아버지 구스타프의 장례식(72년) 에도 가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부친의 이력은 그의 이미지에 적지 않은 손상을 줄 것으로 보인다.


숱한 합성어와 이색후보들

언론들은 슈워제네거의 주지사 출연이라는 출연작품에 빗대어 숱한 신조어를 양산하고, 포르노 배우 등 이색 후보들은 각종 기발한 공약을 제시해 유권자들을 즐겁게 해주고 있다.

뉴욕의 타블로이드 신문인 데일리 뉴스는 그의 대표작 ‘터미네이터’와 주지사(Governor)를 합성한 ‘거버네이터’라는 단어를 만들어 히트를 쳤고, 또 슈워제네거가 90년에 출연한 영화 ‘토털 리콜’의 리콜(recall)이 주민 소환을 의미한다는 점에 착안해 일부 신문들은 캘리포니아 보선을 ‘토털 리콜’로 부르고 있다.

이밖에 막대한 재산을 빗대 아놀드를 ‘earnold’로 칭하고, 그의 출마에 놀라움을 표시하기 위해 아놀드(Arnold) 대신 ‘Ahhnold’로 부르는 잡지도 등장했다.

BBC 방송은 합법적 도박 활성화를 통해 주 재정을 복구시키겠다는 래리 플린트 허슬러 발행인, 범죄 심리를 잘 알기 때문에 치안 확보에 주력하겠다는 현상범 사냥꾼 레오날드 파딜라, 가슴 성형수술 세금을 중과해 재정을 확충하겠다는 22세 포르노 여배우 메리 캐리 등 이색 후보들의 주장도 흥미를 자극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영섭 기자


이영섭 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