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한 신세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

고양이 신드롬, 낭만과 개성의 상징으로

쿨한 신세대의 새로운 아이콘으로 등장

고양이 인형, ‘야~옹’ 효과음, 실제 고양이의 등장….

그야말로 ‘고양이 세상’임을 내건 드라마가 있었다. 지난달 말 35.6%라는 시청률 1위의 기록 속에 화려하게 막을 내린 MBC TV드라마 ‘옥탑방 고양이’다. 인터넷 소설로 돌풍을 일으키더니, 급기야는 TV 브라운관까지 점령하며 거센 ‘고양이 바람’을 몰고 왔다.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MBC 드라마 가운데 역대 최고가인 22만달러(한화 약2억6,000만원)에 대만으로 수출돼, 한류의 중심으로 부상할 조짐까지 보이고 있다. 제목부터 심상치 않았던 이 드라마에서 고양이는 주인공이 아니라 ‘상징’으로 등장할 뿐이지만, 드라마 면면에서 차지한 비중은 적지 않다.

신세대 남녀의 동거와 사랑을 경쾌한 터치로 풀어내며 큰 인기를 끈 이 드라마에는 ‘고양이’란 말이 들어간 대사가 가득하다. 예컨대 “고양이한테 밥 주러 간다” “우리집 고양이가 ‘고양이 인형’을 싫어해서요” 같은 식이다. 더욱이 남자 주인공 경민은 여자친구 정은의 집에 도둑고양이처럼 얹혀 살며 자기중심적이며 제 멋대로인 특성을 지녔다.

바로 고양이의 이미지에서 도출된 캐릭터. 동명의 인터넷 원작 소설에서는 아예 경민과 정은을 ‘야옹이’와 ‘주인님’으로 표현했다. 이 작품의 원작자인 김유리(27)씨는 “고양이는 사람이 살기에 부적합한 ‘옥탑방’이라는 공간에 낭만을 불어 넣어주는 상징”이라며 “드라마가 젊은이들의 큰 호응을 얻으면서 ‘영물’로 터부시해온 고양이에 대한 시각도 바뀌고 있다”고 말한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양이의 이미지는 ‘전설의 고향’에나 나올 법한 음산하고 섬뜩한 영물이었지만 이제 그 느낌은 ‘쿨’(cool)한 신세대 아이콘으로 바뀌었다.

예전에는 고양이가 변함 없는 충정의 상징인 개에 비해 변덕스럽고 자기중심적이며 감정적이라고 멸시 받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감정의 구걸 없이 단도직입적으로 솔직하고, 때론 이기적이고 무책임해 보여도 자기 감정에 그저 충실한 모습으로 비춰지면서 젊은 세대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


스크린으로 옮겨간 고양이 열풍

브라운관 뿐만 아니라 스크린에서도 ‘고양이 열풍’은 이어지고 있다. 8월8일 개봉된 ‘고양이의 보은’은 일본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 제작사 지브리 스튜디오의 최신작. 휴가철을 맞아 극장으로 향하는 관객들의 발길이 뜸한 가운데 ‘나쁜 녀석들2’에 이어 외화 흥행순위 2위에 올랐다.

제목 그대로 ‘목숨을 구해준 고양이가 은혜를 갚는다’가 줄거리. 이런 단순한 이야기에 독특한 재미를 불어넣는 것은 고양이들의 ‘핀트 벗어간’, ‘제 멋대로의’ 보은 방식에 있다.

고양이들은 “은혜를 갚는다”며 여고생 소녀의 집에 ‘고양이 환각제’인 ‘개박하풀’을 심어놓고, 포장된 수십 마리의 쥐를 선물하는 등 ‘막무가내식’ 보은 행각을 벌인다. “사흘만 돌봐줘도 평생 그 은혜를 잊지 않는다는 개와 달리 고양이는 은혜를 모르기로 유명한 동물이다. 그런 고양이들의 은혜 갚기 대소동은 새로운 설정이자 우리가 갖고 있던 고양이에 대한 편협한 생각과 무서움을 한꺼번에 날려버리게 한다.” 영화사측은 기획의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고양이’에 대한 출판계의 구애도 열병처럼 번지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의 도서검색란에서 ‘고양이’를 검색어로 올리면 7월 이후에만 무려 20여 종의 관련 출판물이 검색된다.

‘고양이 행복하게 키우기’(보누스), ‘내 고양이가 무슨 생각을 할까’(넥서스) 처럼 고양이를 키우고 이해하는데 도움을 주는 서적부터, 시집 ‘시 쓰는 고양이 널 많이 사랑해’(기획집단꾼), 어린이를 위한 동화 ‘사라진 고양이의 비밀’(아이세움) ‘캣츠’(아이들판) 등 다양한 고양이 관련 서적이 출간되고 있다.

고양이의 일상을 매우 사랑스럽게 그린 만화 ‘묘한 고양이 쿠로’(시공사)도 최근 고양이 열풍을 타고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시공사 소년단행본 팀장 백소용 씨는 “깜찍한 이미지가 강조되면서 고양이에 대한 거부감이 없어지고, 쉽게 마음이 가는 대상으로 부각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야성적 이미지에 매료

‘신세대 아이콘’으로서 고양이의 활약은 인터넷에서 보다 두드러진다. 1998년 홍익대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한 권윤주씨가 탄생시킨 인터넷 만화 ‘스노캣’(Snow Cat)이 이러한 고양이 텍스트의 원조다.

집단 속에서 나와 혼자 노는 것을 즐기는 백색 고양이 스노캣을 내세워 기성의 굴레를 벗어 던진다. ‘귀차니즘’ ‘게으르즘’의 원조로 꼽힐 만큼 지독하게 귀찮은 것을 싫어하고, 혼자만의 만족을 추구하는 등 독립성과 자기 만족성이 강한 것이 특징이다.

지난해 12월 ‘고양이라서 다행이야’라는 책을 펴냈던 고양이 애호가이자 대중문화평론가 박 사씨는 “공동체 중심이던 사고가 변화하면서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보다 자신에게로 관심을 집중시키는 고양이적 성향이 폭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는 것 같다”고 고양이 열풍을 진단했다.

만화평론가 이명석 씨는 “고양이의 길들여지지 않는 야성은 마니아적 성격을 지닌 사람들에게 더없이 끌리는 기질”이라며 “요즘의 고양의 열풍 또한 주위에 쉽게 동화되지 않는 신비로움에 대한 동경이 표출된 일종의 유행 현상”이라고 지적했다.

"고양이는 갸날프지만 강한 존재"
   
<옥탑방 고양이> 원작자 김유리

'옥탑방 고양이'의 원작자 김유리(27)씨는 소문난 고양이 애호가다. 좀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고양이 마니아'다. "세상에 이렇게 예쁘고 가냘프면서 강한 존재가 또 있겠냐"고 고양이 예찬론을 편다.

3월22일 결혼식을 올린 김씨는 현재 부산에서 '야옹이'란 애칭의 남편 안동렬(29)씨, 그리고 고양이 3마리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다. 오죽 고양이가 좋았으면 결혼 반지도 고양이 두 마리가 얼굴을 맞대고 있는 형상으로 제작했을까.

"고양이를 처음 봤던 때의 감동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초등학교 때 아버지께서 퇴근길에 주워온 고양이를 보고 한 눈에 반했지요. 당시 주위의 눈총 때문에 고양이를 키우지 못해 얼마나 안타까웠는지 몰라요."

4년 전 글을 쓰기 위한 '자신만의 공간'을 갖고자 집안에서 나오면서 "독립하면 고양이를 반드시 키우겠다"는 꿈을 이뤘다. "주인에게도 쉽게 마음을 주지 않는 고양이는 '좋아하지만 가질 수 없는' 존재로서의 매력이 남다르죠. 항상 긴장하게 해요. 도도한 여자처럼…."

'집안에 재앙을 가져온다' '털이 건강을 해친다' 등 갖가지 이유로 고양이를 버리라는 주변의 성화를 받고 있지만 모두 묵살한다. "남의 이목에 당당할 수 있는 자신감을 고양이에게서 배워요."

결혼 전 자신의 동거 생활을 인터넷에 공개해 사회 통념에 도전했던 김씨. 설혹 부정적인 시선을 느껴도 당당한 자기만의 방식을 고집하는 고양이의 성향과 묘하게 닮아 있다.

배현정 기자


배현정 기자 hjba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