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속의 보드게임

[영화되돌리기] 클루

스크린 속의 보드게임

얼마 전 뉴욕 타임스에 ‘The PC Generation, Back to the Board’라는 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인터넷 게임에 몰두하던 닷컴 세대들이 가족이나 친구들과 마주하며 즐길 수 있는 보드게임에 빠지고 있다는 얘기다. 그런데 기사는 미국의 이런 보드게임 열풍을 경제불황 탓으로 돌리고 있다.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가될수록 외출을 삼가게 되고 장롱 안에 쳐 박에 두었던 옛날 보드게임을 하며 값싼 여가를 즐긴다는 말이다.

사실 미국이나 유럽에서 보드게임의 전통은 생각보다 길다. 미국에서 85년에 제작된 Clue라는 영화가 동명의 보드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을 정도니 말이다. Clue라는 보드게임은 미국의 Parker Brothers라는 회사가 만든 게임이다. 이 회사는 1888년에 찰스 파커와 조지 파커 형제가 설립한 이후 Monopoly, Risk, Sorry와 같은 고전적인 보드게임을 제작해 왔다.

Clue는 일종의 추리게임으로 살인자, 살해도구, 범행장소를 맞히는 게임이다. 여섯 명의 등장인물(머스타드 대령, 화이트 부인, 피콕 부인, 스칼렛양, 플럼 교수, 그린씨)이 모두 한 저택에 초대를 받아 저택의 집주인을 살해한 자를 찾는다는 게 게임의 간단한 줄거리다.

영화는 보드게임에서 단지 인물들의 이름과 설정만을 받아들인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날 한 저택에 6명의 남녀가 초대된다. 정치인 남편을 위해 로비를 하는 피콕 부인, 남편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화이트 부인, 군의 기물을 팔아 재산을 축적한 머스타드 대령, 불법 영업을 눈감아 달라고 경찰을 매수한 스칼렛양, 젊은 여자와 놀아난 플럼교수, 국방성에서 근무하는 동성연애자 그린씨, 이들은 모두 누군가에게 협박편지를 받고 있다.

그리고 이들을 한 자리에 불러모은 이 저택의 집사 워즈워드는 협박을 받고 있는 6명을 회유해 협박자를 경찰에 넘길 생각을 하고 있다. 이 때 저택을 찾은 집주인이자 협박범 버디씨. 그는 사람들에게 각각 6가지 무기를 나눠주면서 새로운 제안을 한다. 자신들의 비밀을 영원히 덮어버리고 싶으면 집사를 죽이라는 것이다. 그런데 정전이 된 상황에서 결국 살해된 사람은 버디씨고 나머지 사람들은 도대체 누가 어떤 무기를 갖고 그를 살해했는지 추리를 하기 시작한다.

영화는 게임 상에 단지 이름과 모습만으로 존재하는 캐릭터에 살을 붙이고 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을 드라마틱하게 재구성하고 있다. 특히 1950년대 매카시즘의 광풍이 미국을 휩쓸고 간 시대적 상황을 적절히 이용해 간간이 블랙유머를 구사하기도 한다.

집사 워즈워드의 말에 의하면 반미위원회에 공산주의자를 밀고하는 버디씨는 미국의 국익에 반하는 이적 행위들을 용납할 수 없어 이들에게 협박편지를 쓴 애국자다. 하지만 실상 공산주의는 주의를 환기시키기 위한 핑계에 불과하고 모든 건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속셈이라며 버디씨를 비꼬고 있다.

마치 매카시즘을 이용해 미국사회 내부의 적을 제거해 나갔던 미연방수사국 FBI를 연상시키듯이 말이다. 이 뿐만 아니라 시체를 이리 저리 옮기면서 벌이는 황당하고 엽기적인 장면들이나 쓸데없는 말장난에 몸으로 웃기는 과장까지 영화는 전반적으로 슬랩스틱 코미디에 가깝다

그런데 문제는 미스터리 게임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영화에 정작 미스터리가 별로 없다는 점이다. 다행히 추리의 묘미를 살려내기 위해 영화의 엔딩이 세 가지 버전으로 준비되어 있긴 있다. 극장 상영 시에는 한 가지 결말만 보여졌지만 비디오에는 세 가지가 다 나왔고 DVD에서는 세 가지 가운데 마음대로 선택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고 한다.

하지만 보드게임 Clue를 즐겨하는 사람들에게는 영화가 제시하는 결말이 조금 싱거울 수도 있겠다. 코미디만을 기대하는 사람에게는 엉뚱한 재미를 줄 수 있을 것이다.

정선영 자유기고가


정선영 자유기고가 startvideo@hot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