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훈 전 검사, 이원호씨 살인교사혐의 내사 중 '몰카'제작

몰카 파문, '외압' 공방으로 비화

김도훈 전 검사, 이원호씨 살인교사혐의 내사 중 '몰카'제작

양길승 전 청와대 제1 부속실장의 부적절한 처신에서 비롯된 ‘양길승 몰카 사건’이 ‘이원호 게이트’를 거쳐 담당 검사와 부장검사간의 ‘진실게임’으로 비화됐다. 최근 담당 검사가 ‘몰카’를 제작, 유포한 혐의 등으로 구속되자 검찰 수뇌부의 ‘외압’을 입증할 증빙자료를 폭로하겠다고 나서는 등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양길승-이원호 커넥션을 기본 축으로 발생한 이번 사건들을 따지고 들어가면 하나의 공통된 뿌리에 닿는다. 같은 청주 출신으로 몰카 사건 수사를 맡은 김도훈 전 검사와 피의자인 이원호 키스나이트클럽 대표와의 ‘악연’이 다.


오락실 운영권 둘러싼 살인사건

청주의 토호세력인 이씨가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 등으로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에서 김 전검사가 올해 초 고향으로 부임하면서 악연은 시작됐다. 김 전검사는 부임직후 청주 J볼링장 대출사기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89년 발생한 한 살인사건에 이씨가 개입되었다는 첩보를 입수하고 내사를 시작했다.

이씨로서는 가뜩이나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방지법 위반 혐의로 수사를 받고 있는 터에 14년 전 살인사건 개입혐의에 대해 느닷없이 내사를 받게 되자 다급해졌다는 게 이씨 주변의 이야기다. 이들은 이씨가 양 전 실장을 모시면서까지 다급하고도 집요하게 수사 무마 청탁을 한 진짜 배경이 바로 살인교사 혐의 때문이라고 확신하고 있다.

10년 넘게 이씨의 사업에 관여해 온 한 인사는 “조세포탈 혐의는 벌금을 내면 그만이고 윤락행위건은 나이트 클럽의 얼굴 마담격인 박모씨가 대신 책임지기로 돼 있었다”고 말해 이씨의 로비 목적이 다른 데(살인교사 혐의) 있음을 암시했다. 김 전검사측 변호인단은 “6월20일 이씨를 우선 갈취교사혐의로 긴급 체포하기 위해 지검 수뇌부에 보고한 뒤 준비를 했으나 윗선에서 막았다”면서 “7월1일에는 수사 지휘선상에 있지 않는 모 부장검사가 김 전 검사를 불러 1시간 동안 욕설을 퍼부으며 ‘14년전 살인사건을 깡패의 말만 믿고 조사하느냐’고 수사 중단을 요구했다”고 폭로했다.

문제의 살인사건은 89년 청주 북문로 노상에서 발생했다. 당시 피살자는 이씨에게 이씨 소유의 호텔 오락실 영업권을 요구했으나 거절 당하자 앙갚음으로 린치를 가했던 조직폭력배 배모씨. 배씨 살해범은 청주 일원에서 성가를 높이고 있던 ‘대명사파’ 조직원인 김모·조모씨로, 이들은 99년 만기 출소했다.

이씨가 이 사건의 교사 혐의를 받게 된 데는 그럴만한 배경이 있다. 이씨는 청주에서 부친 때부터 해온 정육업을 기반으로 부동산 사업에 뛰어 들어 큰 돈을 모았다. 이 자금을 사채로 돌려 일부 건설업체들의 발목을 잡아 부도가 나면 업체를 인수하기도 했다.

이씨는 80년대 들어 진양관광호텔과 리호관광호텔을 인수, 오락실과 나이트클럽, 증기탕 등 호텔 부대시설을 주수입원으로 삼았다. 이씨가 연루 의혹을 받고 있는 살인사건의 단초가 된 것은 바로 진양관광호텔내 오락실(슬롯머신)이다. 당시 이씨와 동업으로 사업을 했던 한 인사는 “본래 이씨는 호텔내 오락실을 청주지역 폭력배 대부인 신모씨의 동생이자 중학교 동창에게 줄 계획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오락실 수입이 생각보다 많고 청주 뿐만 아니라 서울, 대전 등지의 폭력배들도 탐을 내자 이씨의 생각은 바뀌었다. 오락실 소유권은 유지하면서 슬롯머신을 다룰 줄 아는 사람을 찾은 것. 이씨는 인척 고모씨를 통해 국내 슬롯머신업계 대부인 정모씨 밑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박모씨를 88년 초대 사장으로 임명했다.

오락실이 정상적으로 운영되면서 이권을 노린 지역 폭력배들이 본격적으로 개입했다. 대전의 전국구인 김모씨의 요구가 집요했으나 가장 위협적인 존재는 청주 ‘히라소니’파의 김모·배모씨였다. 이들은 이씨의 집?드나들며 오락실 운영권을 넘기라고 협박했다.

이때 인척 고모씨가 또 해결사로 등장했다고 한다. 그는 ‘대명사’파의 김모·조모씨에게 부탁해 이씨의 오락실을 지켜줄 것을 요청했다.

일이 이상하게 돌아가자 ‘히라소니’파의 김모·배모씨는 이듬해인 89년 이씨를 납치해 린치를 가했다. 그 사건 얼마 뒤 배모씨가 청주 북문로 수아사 앞에서 피살된 것이다. 당시엔 이 살인사건은 범행동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아 폭력배간의 싸움으로, 사실상 ‘미스터리 사건’으로 처리됐다.


외압여부 놓고 재판과정서 공방 예상

이 문제가 다시 수면위로 등장한 것은 그로부터 10년 후인 99년 9월 김모·조모씨가 출소하면서부터. 두 사람은 이씨를 찾아가 “10년간 감방에서 썩었는데 뭔가 보답해야 할 것 아니냐”며 금품을 요구했다.

2000년 2월에는 또다시 찾아가 “술집을 차려야 하는데 돈을 보태 달라. 끝까지 모른 척하면 검찰에 다 불어버리겠다”는 식으로 협박한 것으로 알려졌다. 견디다 못해 이씨는 지난 5월 김모ㆍ조모씨의 대부격인 ‘신대명사’파 김모씨에게 수천만원을 건넸다.

김도훈 전검사는 이 사건 수사에 들어가 이씨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김모씨를 폭력혐의(공갈갈취)로 구속하고 달아난 조모씨를 기소중지시켰다. 그리고 이들에게 돈을 줄 수 밖에 없었던 이씨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내사를 시작했다.

검찰청 주변에서는 김 전검사의 수사에 앞서 지금은 청주지검을 떠난 윤모 검사가 지난해 이씨의 살인교사 혐의에 대해 내사를 벌이다 뚜렷한 이유없이 중단되고 말았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그러나 이씨측은 돈을 건넨 이유에 대해 “귀찮게 하는데다 지역에 좋지 않은 소문이 날까봐 준 것일 뿐 살인교사는 말도 안 된다”고 주장한다. 청주지검측은 “이씨의 살인교사 여부에 대해선 충분한 진술을 들었다”며 “실질적인 살인피의자인 조씨와 조직 보스 등이 도피중인 상태라서 더 이상 수사를 진행하지 못한 상태”라고 밝혔다.

하지만 김 전검사는 구속중인 김모씨에게서 조직 보스로부터 살인지시를 받은 배후관계를 진술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모 부장검사가 김 전검에게 “깡패의 말만 믿고…” 운운한 부분이 바로 이 대목이다. 김 전검사는 김씨의 진술을 근거로 이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조사하려 했지만 이씨의 버티기와 수사 지휘부의 지시에 따라 더 이상 진척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대검 감찰부(유성수 검사장)는 김 전검사의 주장이 사실이더라도 수사 지도일 뿐 ‘외압’으로 볼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청주지검은 한국일보가 양 전실장 사건을 대서특필한 다음날인 8월1일에야 이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정식 내사 사건으로 사건부에 등재했다. 5개월 이상 방치돼 있었던 것이다.

청주 지검은 현재 김 전검사의 수사일지를 둘러싼 ‘진실게임’이 한창이다. 김 전검사가 파렴치하고 명예욕에 가득찬 검사였는지, 아니면 외압에 굴하지 않고 진실을 밝히려다 과욕을 벌인 것인지는 89년 살인사건의 수사결과에 달려 있다.

박종진 기자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