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대한민국이 싫다"

8월 28일 TV 홈쇼핑에서 “대한민국을 등지고 영원한 캐나다 국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팔겠다”는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결과는 문의 전화가 폭주한 끝에 예정시간을 10분이나 단축하면서 역대 홈쇼핑 사상 최고의 판매기록(175억원)을 세웠다. 3회에 걸쳐 1,000명을 모집할 예정이었으나 첫 회에 무려 983명이 몰려 방송을 조기 종영해야 했고 9월4일 2차방송을 통해 1,000명을 추가 모집한다고 한다. 아마 이날은 지난번 보다 더 빨리 마감될 것이란 전망이다.

이민 상품이 홈쇼핑을 통해 판매되는 것과 최고의 판매기록을 세운 것, 또 삽시간에 품절된 현상은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놀랄만한 일이다. 하지만 진짜 문제의 본질은 이민의 방법과 이유에 있다.

이번 상품은 고액을 들여 일정 기간을 기다린 뒤 비자 인터뷰 등 복잡한 절차를 거치는 일반 취업이민과 투자이민 등과 달리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620만~2,800만원)으로 어렵지 않게 떠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그래서 고졸 이상 학력자가 2년간 캐나다 현지에서 어학교육과 기술자격증 교육을 받고 이민 수속을 밟는 과정을 알선해 주는 기술취업에는 전체 신청자의 51%가 몰리는 ‘빅 히트’를 쳤다. 손쉽게 대한민국을 떠날 수 있다는 생각에 앞다퉈 상품 구매에 나선 것이다.

더욱 큰 문제는 이민 희망자들의 연령층. 20, 30대가 전체의 62%를 차지했고 40대가 29%로 뒤를 이었다. 가난에 찌들었던 시절에 우리 윗 세대들이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독일의 광산과 병원으로 ‘생계 이민’을 떠났다. 유신독재의 암흑기에 진보적인 지식인들도 이민 대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자유가 억압되는 시대도, 먹을 게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왜 국가 장래를 짊어질 젊은 층이 이민 상품에 벌떼처럼 달려들고 있는가.

이유는 명쾌하다. 당장도 힘들지만 앞으로도 나아질 희망이 없다는 생각에서다. 지금 힘들어도 잠시만 참으면 희망찬 미래가 다가올 것이란 기대를 갖고 있다면 ‘탈 한국’ 열풍이 이렇게 심했을 리가 없다.

불경기와 취업난, 치솟는 사교육비, 국론분열상 등 미래에 대한 불안감과 불확실성으로 가득찬 대한민국의 현주소가 그들을 타국으로 밀어낸 것이다. 그들의 마음 속에는 한가지 생각밖에 없다. “대한민국에는 미래가 없다. 조국을 떠나련다.” 우리 모두의 일그러진 자화상이다.

염영남 기자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