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나와 그녀들이 하나 될 때…

그녀들이 다시 돌아왔다. 8ㆍ15행사에서 일부 보수 단체 사람들이 인공기를 소각했다는 이유로 대구 유니버시아드 대회를 불참하겠다고 으름장을 놓던 북한은 대통령이 나서서 사과를 하자 마지못한 듯 참가를 했다. 어디 그뿐인가. 우리나라 사람들이 정작 북한 선수들보다 더 관심을 갖고 기다리던 예쁜 응원단을 대동하고 말이다.

우리들의 소망을 저버리지않고 북한은 대회에 참가하는 선수들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응원단을 내려보내는 아량(?)까지 베풀어 주었다. 생각해보면 참으로 기이하고 웃기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세계 응원대회가 아니라 각 나라의 젊은이들이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 곳인데 선수보다 응원단이 더 많다는 건 분명히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그뿐인가. 예쁜 응원단이 당당하게 외치는 구호가 ‘사상, 투지, 속도, 기술’ 이라는 데는 정말 기가 막힐 노릇이다. 운동을 하는 선수들에게 기술은 중요하다. 또 육상 선수들에게 속도는 승리의 원천이 된다. 물론 투지도 있어야 막판 뒤집기를 통한 감동의 드라마를 만들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운동 선수들에게 있어서 사상이 주는 의미는 무엇인가?

지금까지 우리는 남한과 북한의 어정쩡한 관계를 모두 떠나 북한의 응원단 미녀들에게 무조건적인 호감과 열광적인 찬사를 보냈다. 마치 스타를 떠받들 듯 순진하고 열정적인 팬의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번에도 어렵사리 참석한 응원단을 구경하기 위해 관광버스의 행렬이 줄을 이었고 극성팬임을 자처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카페를 만들고 사진과 동영상을 올려 놓으며 소소한 정보를 교환하고 있다. 어떤 네티즌은 매일같이 북한 응원단들의 어깨를 주물러 주고 도시락도 싸주고 싶다는 소박한 소망을 밝히기도 한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그 네티즌이 한번이라도 부모님을 위해 어깨를 주물러 드리고 밥 한 번 해드려 봤는지 묻고싶다)

이렇게 순진하고 단순하게 열광하는 우리를 북한 응원단은 조금씩 지겹게 만들고 있다. 사상, 투지, 속도, 기술이라는 어마어마한 응원구호를 그들이 외칠 때마다 우리는 정말 사상이 다른 사람들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서 불편해 진다. 마치 순진한 남자가 아리따운 여자에게 꽃을 바치며 노래를 불러주는데 정작 그녀는 머리 속으로 남자의 돈지갑만 헤아려보는 듯한 느낌이다.

얼마 전 응원단들이 보여준 눈물은 우리로서는 정말 이해할 수 없는 높은 벽을 실감케 했다. 가로수에 걸린 김정일의 대형 사진이 비를 맞는다고 그 이쁜 언니들이 눈물을 철철 흘리면서 마치 곡예하듯이 높다란 가로수에 대롱대롱 매달려 현수막을 떼어내는 데는 정말 할말을 잃었다. 그걸 본다면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부러움에 가득찬 눈으로 도대체 국민들을 어떻게 다뤘길래 그런 충성심을 보이는지 궁금해서 비법을 전수받기 위해 북한으로 몰려갈지도 모를 일이다.

달콤하고 아득했던 꿈에서 깨어나 불편하고 의혹에 찬 눈길로 북한 응원단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가운데 그래도 오매불망 그녀들을 향해 열렬한 사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다. 내 후배 가운데 한명인 이 녀석은 남남북녀를 외쳐가며 저번부터 난리도 아니었다. 그때도 그녀들 때문에 며칠밤을 뒤척이더니 이번엔 아예 작정을 하고 대구 주변을 맴돌고 있다.

경기를 보는 게 아니라 북한 응원단이 나타나는 곳만 찾아 다니는 데 벌써 몇 명 찍었다며 나름대로 꽃님이, 달님이, 이쁜이 등등의 별명까지 붙여서는 양다리도 아니고 수 십 명한테 다리를 놓았다. 문제는 그것이 일방통행 도로라는거다.

“우리는 하나다. 우리는 하나다. 형, 나는 걔들이 그걸 외칠 때마다 미치겠어.”

“니가 그렇게 열렬한 통일론자였는지는 몰랐는데.”

“에이 형은…. 꼭 그것만 통일인가. 남녀간의 몸 통일도 있는거지. 걔들이 우리는 하나다 라고 외칠 때마다 나를 향해서 우르르 달려드는 것 같아서 오우, 지금도 미치겠네.”

아이고, 이 녀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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