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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핵카드' 잽 주고 받기

'안전보장' '핵 폐기' 타진, 합의실패 불구 의미있는 첫 걸음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베이징 6자(남북한, 미ㆍ일ㆍ중ㆍ러) 회담이 8월29일 막을 내렸다. 회담 결과에 대해 각국마다 입장 차가 있고 ‘성공’과 ‘실패’라는 상반된 평가가 나오지만 ‘성과’와 ‘과제’를 동시에 남긴 회담이라 할 수 있다.

왕이(王毅) 중국 수석대표는 공동성명이나 합의문 형태가 아닌 ‘주최국 요약’이란 형식으로 ▦대화지속을 통한 이견조율 ▦차기회담을 가능한 빠른 시일내 재개 ▦추가적인 상황 악화 조치 금지 ▦북핵 문제의 대화를 통한 평화적 해결과 한반도 비핵화 ▦북한 안보 우려 해소 ▦동시병행을 통한 해결 등 6개항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우여곡절 끝 대화 틀 유지 성과



이번 회담의 가장 큰 성과는 대화의 채널이 유지되고 긴장 관계에 있는 북한과 미국이 6자회담 틀 속에 구속됨으로써 당분간 한반도의 안정이 확보됐다는 점이다. 하지만 6개국이 막판까지 집중 조율했음에도 불구하고 구속력을 갖는 공동문서 도출에 실패하고 북한이 미국을 겨냥한 핵 위협을 거둬들이지 않을 것임을 밝혀 여전히 ‘미완성’ 상태다.

6자 회담의 의제가 ‘북핵’이고 북한과 미국이 회담의 기본 축을 형성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국가의 태도는 중요하다. 그러나 1차 회담에서 북한과 미국은 핵문제 해결에 대해 서로 다른 로드맵을 갖고 나와 기존의 입장 차만 확인하는데 그쳤다.

미국은 북한의 핵폐기 진전 정도에 따라 인도적 식량지원(북한의 검증 가능한 핵폐기와 NPT 복귀)?국제사회의 대북 지원을 위한 테러지원국 명단 삭제(핵 해체 시작)?에너지 제공(핵 완전 제거) 등 대북 인센티브의 강도를 높이겠다는 3단계 로드맵을 제시했다. 종래 ‘대가 없는 핵폐기’서 한발 물러났지만 기본 입장이 바뀐 것은 아니었다.

북한은 4단계 해법을 제시했다. 중유 공급 및 식량지원이 있을 때 핵포기를 선언할 수 있고(1단계), 핵시설 및 물질 동결과 사찰 허용은 북ㆍ미 불가침조약 체결을 전제로 한다(2단계)고 밝혔다. 미사일문제 해결은 북ㆍ미, 북ㆍ일 외교관계가 수립된 후에 진행하고(3단계), 핵시설을 해체하는 마지막 단계는 경수로 완공을 전제하고 있어 사실상 타협할 의사가 없다는 것을 내비쳤다.



6자 회담후 미국은 ‘성공적인 회담’이었다고 밝혔지만 이는 나머지 4개국이 한 목소리로 북한의 비핵화를 촉구하고 북한을 다자 틀에 묶어둔 성과를 언급한 것에 불과하다. 오히려 미국은 북한의 선(先) 핵폐기를 요구하고 회담의 의제를 북한의 인권 문제, 재래식 무기까지 넓혀 북한을 자극하는 등 북한에 대한 ‘불신’의 속내를 숨김없이 드러냈다.

북한 또한 미국의 선 북ㆍ미 불가침조약 체결이 북핵 해결의 전제조건임을 내세우면서 이번 회담을 ‘탁상공론’으로 폄훼하고 “이런 백해무익한 회담에는 흥미나 기대도 없다”고 말해 북핵 게임에서 양보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주변 4개국이 북ㆍ미간 괴리를 좁히는데 일사분란한 공조를 할 지도 의문이다. 한국은 공허한 ‘주도적 역할’만 외치고, 일본은 미국에 밀착해 대북수익(납치 문제 등)에 치중하는 양상이다.

러시아도 북한에 대한 미국의 고강도 압력에 끝까지 동조할지 의문이다. 중국은 북한에 가장 큰 영향력을 갖고 있지만 지난 4월에 열린 북한 미국 중국의 3자 회담을 전후해 북한이 중국의 친미 성향을 의심을 갖고 있어 영향력은 반감될 수밖에 없다.


북핵 해결 '미완', 2자회담 난항 예고



결국 국내외 전문가들은 2차 회담과 관련, 북한과 미국의 내적 요인에 따라 결과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한다.

경제난의 심화 속에서 ‘핵무기 카드’를 매개로 한 일괄타결 해법을 추구하는 북한의 군부강경파가 득세한다면 2차회담에서도 협상타결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전문가는 “미국의 차기 대선인 내년 11월까지 핵카드로 시간을 끌면서 민주당 정권이 들어서기를 기대할 가능성도 있다”고 전망했다.

미국도 럼스펠드 국방장관 등 매파가 주도권을 쥘 경우 2차회담은 결렬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 미국은 군사적 행동을 포함한 고강도 압박을 북한에 가할 것이 예상된다.

어쨌든 이번 베이징회담은 탐색전이었다. 본격적인 북핵 게임은 2차 회담부터 시작된다.

6자 회담 숨은 공신 러시아의 '힘'
  


북핵 6자회담과 관련, 러시아가 막후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설이 회담장 주변에 퍼졌다. 소문은 러시아 복지당 전당대회를 준비하던 고르바초프 전 러시아 대통령이 7월 21일 푸틴 대통령으로부터 긴급한 요청을 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크렘린에서 푸틴을 만난 고르바초프는 다음날 워싱턴행 비행기에 올랐고 이틀 뒤 모스크바로 돌아왔다.

고르바초프가 부시 대통령 등 미국 고위 인사와 만나 북핵문제를 논의했고 곧바로 모스크바와 평양 간에 핫라인이 가동됐다는 게 소문의 핵심이다.

그로부터 며칠 뒤(7월31일) 박의춘 주러 북한대사는 유리 페도로프 러시아 외무차관과 가진 회담에서 6자회담 개최에 동의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6자 회담 성사와 관련, 그동안 중국과 한국정부의 역할이 부각됐지만 러시아가 역할은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다. 러시아측 인사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등 주요 발언을 할 때도 얼굴 내밀기식 언론플레이 정도로 취급됐다.

그러나 고르바초프 재단의 한 관계자는 "미국은 북한에 대한 러시아의 영향력을 활용해 북한을 6자회담이라는 다자틀에 묶어두려 했고, 6자회담에서 중국의 (대 한반도) 입김을 줄이기 위해 러시아를 끌어들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미국의 궁극적인 목적은 6자회담이나 북핵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북핵을 포함한 동아시아전략, 구체적으로 중국을 견제하는데 있다"고 덧붙였다.

미국의 대 한반도 정책에 불만을 지닌 중국이 북핵 해결과정에서 영향력을 확대하자 미국이 러시아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게 또다른 전문가의 분석이다. 러시아는 이라크 유전에 대한 기득권을 확보하는 조건으로 미국을 도와 북한을 6자회담 테이블로 이끌어냈다는 것이다.

북한은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하려면 이동식 미사일발사대 등 러시아의 지원이 필요하다. 지난해 7월 말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푸틴과의 블라디보스톡 회담에서 미사일 지원을 요청했다는 설도 같은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박종진 기자 jj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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