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있는 풍경] 한국식 다방커피

‘나’는 다방 안에서 글을 쓰다가, 창틀에 매달려 안을 엿보는 소년을 발견하고 상념에 빠진다. 그러다가 앞에 앉은 서너 명의 청년들이 조선 문단의 침체를 비판하는 것을 듣고는 거리로 나온다. 그들은 춘원과 이기영, 그리고 백구와 노산 시조집을 들먹이며 온갖 문인들을 통매(通罵)하고 있었다.(중략) 한강의 삭막한 겨울 풍경을 보며 우울해진다.

한강 다리를 놓아두고 다리 밑 얼음 위로 강을 건너는 사람들을 보며 또 다른 것을 연상한다. 다시 낙랑 다방으로 돌아와 엔리코 카루소의 엘레지를 들으며 미완성인 원고를 생각한다.

이 글은 1930년대에 이상(李箱)과 함께 즐겨 갔던 다방 ‘낙랑’을 무대로 박태원이 썼던 단편 소설 ‘피로’라는 작품의 일부다. 이 소설에서 나타나듯 당시의 많은 문인들의 하루 출발점과 종착점은 다방(茶房)이었다.

한국전쟁을 전후로 다방의 커피는 레귤러 커피에서 인스턴트 커피로 바뀐다. 한국전쟁이 인스턴트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만든 세계 최초의 기록을 갖고 있다(1차 대전과 2차 대전에서도 녹여 마시는 커피의 상용화를 시도했으나 모두 실패했다).

이 때부터 미군부대에는 미국의 각 커피 회사에서 시험용으로 제공한 인스턴트 커피가 넘쳐 났고 미군 부대 밖으로 커피가 흘러나와 한국인들의 입맛을 사로잡게 된다.

또 인스턴트 커피를 ‘커피’라고 부르고 커피를 ‘원두 커피’로 부르는 세계 유일의 희한한 용어가 한국에 정착하게 된다. 사실 인스턴트 커피도 원두 커피를 이용해 만들어지는 것인데, 둘을 희한하게 구분하게 되니 혼란스럽기조차 하다.

한승환 커피칼럼니스트


한승환 커피칼럼니스트 barista@dreamwiz.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