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독감예방접종을 합시다

독감은 감기와는 증상부터가 다르다. 감기의 경우는 목이 아프거나 맑은 콧물이 나거나, 기침이 나는 등 호흡기계 증상이 먼저 시작되고 이후 미열이 생기지만, 독감은 갑작스러운 오한과 고열, 근육통으로 시작하여 곧 이어 기침, 콧물, 인후통, 가래 등이 생기는데 감기보다 휠씬 전신증상이 심하고 회복된 뒤에도 근육통, 관절통, 피곤감으로 평상시과 같이 기운을 차리는 데 시간이 한참 걸린다.

무엇보다도 독감은 합병증이 생겨 사망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감기와는 다르다. 역사상 독감의 대유행이 수 십 회 있었는데, 이 중 가장 악명이 높은 수퍼독감은 1918년의 ‘스페인 독감’이었다. 미국에서 시작되어 전 세계를 휩쓴 스페인 독감은 1년 남짓 기간에 4,000만 명의 사망자를 냈다.

스페인에서 유독 사망자가 많아 스페인 독감으로 이름 지어졌는데 1918년 5월 한 달 동안 스페인에서 800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하였다. 이 때가 1차 세계대전 중으로, 당시 전쟁으로 죽은 사람보다 독감으로 죽은 사람이 훨씬 더 많았다고 한다. 수퍼독감의 유행이 아니더라도 매년 전 세계 인구의 10~20%가 독감에 감염되고, 25만 명 내지 50만 명이 독감으로 사망하고 있다.

독감을 일으키는 바이러스는 믹소바이러스(Myxovirus)라는 RNA 바이러스이다. 믹소바이러스는 A형, B형, C형의 여러 가지 아형이 있는데, 이 중 C형은 거의 변이가 없고 대부분의 사람이 면역을 가지고 있어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A형과 B형은 해마다 변이를 일으켜 다른 아형이 유행하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는 매년 1, 2월에 유행한 바이러스 아형을 토대로 그 해 겨울에 유행할 바이러스를 예측하여 백신을 만들어 전세계에 공급한다.

올해 유행하리라고 예측되는 독감 바이러스는 A형 뉴칼레도니아균주와 A형 모스크바 균주, B형 홍콩균주로 현재 접종되고 있는 독감백신은 이들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항체를 유도하도록 만들어져 있다. 그러므로 세계보건기구의 예측과는 다른 아형의 바이러스가 유행하게 되면 백신이 무용지물이 된다.

예방접종을 한다고 해서 모든 독감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예방접종을 받은 10명 중 대략 7명에게서 독감이 예방된다. 전신상태가 나쁘고, 나이가 많을수록 면역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젊고 건강한 사람에서 독감 예방률도 높고 만들어진 항체도 오랫동안 유지된다.

또 주사를 맞자마자 면역이 생기는 것은 아니고, 접종 1주 후부터 항체가 생기기 시작하여 4주 후 최고가 되므로 최소한 독감 유행시점에서 1달 전에는 접종을 마쳐야 한다. 독감은 주로 겨울에 유행하므로 9월부터 접종을 시작해 늦어도 10월 말까지는 맞는 것이 좋다.

만성질환이 있는 경우는 건강한 사람보다 독감에 걸렸을 때 사망률이 60배 이상 높아지고, 65세 이상 노인에서는 사망률이 50배에서 100배 증가한다. 그러므로 독감에 걸리게 되었을 때 사망률이 높아질 위험이 있는 분들은 반드시 예방접종을 받아야 한다.

보건 당국이 권장하는 독감 예방접종 대상군으로는 65세 이상의 노인, 협심증이나 뇌졸중, 고혈압과 같은 만성 심혈관계질환자, 만성기관지염, 천식과 같은 만성 폐질환자, 만성 신장질환, 당뇨병, 암, 간장병 등이 있는 만성질환자이다. 독감예방접종은 5,000원에서 1만5,000원으로 비용이 비교적 저렴하고, 부작용이 거의 없기 때문에 최근에는 건강한 사람들도 예방접종을 많이 받는 추세이다. 보건소나 가까운 병의원에서 간단하게 독감예방접종을 받을 수 있다.

특히 올해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사스ㆍSARS)가 다시 유행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로 인해 세계보건기구에서는 모든 사람에게 독감예방접종를 권장하고 있다. 독감과 사스의 초기 증상이 유사하기 때문에 독감을 예방해야 사스감염 여부를 초기에 알 수 있다는 것이 권장의 근거이다. 두 전염병이 같이 돌게 되면 독감으로 인한 고열과 기침을 사스로 오인하여 환자와 주변인들이 공황에 빠져 사회혼란이 우려되기 때문이다.

독감예방접종을 감기예방접종으로 생각하고, 독감예방접종 후 감기가 걸리면 예방접종이 효과가 없는 것이 아니냐고 묻는 분들도 계시는 데, 독감예방접종으로 감기가 예방되지는 않으며, 감기를 경하게 앓고 지나가게 하는 효과도 없다.

감기와 독감 모두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 다니는 전염병이므로 외출 후 양치질과 손발 씻기 등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피하여 감기와 독감 바이러스의 노출을 줄이고, 평상시 스트레스와 과음, 과로를 줄이고 절제된 생활로 면역력을 높여 둔다면, 올 가을, 겨울을 감기와 독감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