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脫 한국] 날개돋친 이민상품… 씁쓸한 대박

“지금부터 이 나라를 떠날 수 있는 ‘기회’를 팔겠습니다. 가격은 단돈 2,800만원입니다.”

한 TV홈쇼핑에서 이민 상품을 판매하는 프로그램을 방송했더니 문의전화가 폭주하는 바람에 조기 종영을 해야 했다. 그리고 이 상품은 역대 홈쇼핑 사상 최고의 판매기록을 세웠다. ‘해외 토픽’에서나 볼 법한 한 편의 희극 같은 사건이 한국 땅에서 벌어졌다.

현대홈쇼핑이 8월 28일과 9월 4일 소개한 ‘캐나다 마니토바주(州) 이민 상품’이 홈쇼핑 8년 역사상 초유의 대박을 터뜨린 것이다. 프로그램이 시작되자마자 983명의 신청자가 몰려 175억원 어치를 주문했고 그래도 문의전화가 빗발치자 90분짜리 프로그램은 80분만에 조기 종영됐다. 선착순으로 상품 구매 행운(?)을 잡은 사람들 중에는 30대가 51%를 차지했고 20대도 11%나 됐다. 뒷맛이 씁쓸할 뿐이다.

안 그래도 ‘엑소더스’ 이민이 사회 문제가 되고 있는 판에 홈쇼핑 채널에서까지 ‘이민 상품’을 팔고, 기다렸다는 듯 ‘우울한 대박’을 터뜨렸다. 살고 있는 주민이 너무 적어 이민자들이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에 홈쇼핑에 이민상품 판매를 의뢰했던 캐나다 마니토바주는 ‘80분만에 상품이 동 났다’는 얘기를 듣고 오히려 당황했다는 웃지 못할 뒷얘기도 전해진다.

어느 곳이든 한국땅이 아닌 곳에서 살아 보기를 꿈꾸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먹고 살기 힘들던 시절, 우리 선조들은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 독일의 병원으로 ‘생계 이민’을 떠났다. 그러나 선진국 진입을 앞두고 있다는 2003년에도 한국민들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이국땅 ‘마니토바주’로 무작정 앞다퉈 떠난다. 탈(脫)한국 러시의 한 풍경이다.

국민소득은 높아졌을 지 모른다. 이 땅은 그러나 여전히 ‘먹고 살기 힘든 곳’일 뿐이다. 한국의 청장년이 제2, 제3의 마니토바주를 꿈꾸는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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