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美 살려낸 패션 혁명가

[역사 속 여성이야기] 코코 샤넬

여성美 살려낸 패션 혁명가

극작가이자, 신랄한 비평가로 알려진 조지 버나드 쇼는 20세기 가장 중요한 여성으로 2명의 여성을 꼽았다. 한 명은 라듐의 발견으로 인류의 과학진보를 앞당긴 퀴리 부인이었고 나머지 한 사람은 바로 이 사람 코코 샤넬이었다. 명품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도 ‘샤넬’이라는 이름은 익숙할 것이다.

샤넬하면 주로 향수 ‘NO. 5’를 떠올리지만, 사실 샤넬이라는 이름이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바로 현대 여성 옷의 기준을 세웠다는데 있다. 19세기까지 조형적인 아름다움 때문에 신체를 학대하며 코르셋으로 조여왔던 여성의 몸을 자유롭게 해방시킨 사람이 바로 샤넬이었다. 그녀는 코르셋으로 조이지 않은 여성의 자연스러운 육체의 아름다움을 패션 속에 녹여낸 최초의 사람이었다.


버림받은 고아소녀

프랑스의 오르베뉴 지방의 소뮈르에서 태어난 코코 샤넬(1883~1971)의 원래 이름은 가브리엘 샤넬이었다. 그녀의 아버지는 지방 도시를 돌며 행상을 하는 가난한 사람이었다. 샤넬은 12살에 어머니를 여의고 두 자녀를 키울 마음이 없던 아버지에게 버림받고 언니와 함께 고아원에서 성장한다.

가브리엘 샤넬에게 있어 어린 시절은 회고하기 싶지 않은 시간이었다. 검은 머리의 깡마르고 고집 세며 자유분방한 소녀는 고아원 생활에 적응하기 어려웠다. 고아원에서 요구하는 규율은 모두 그녀에게 맞지 않았다. 청소와 바느질보다는 춤과 노래가 좋았던 그녀는 스무 살에 인근 도시 물랭에서 유아용품의 판매원으로 취직하지만 곧 이를 그만 두고 만다.

그리고 기병들이 드나드는 싸구려 바에서 댄서와 가수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이곳에서 그녀는 즐겨 부르던 노래 코코에서 이름을 따 스스로에게 새로운 이름을 주었다. 코코 샤넬. 어두웠던 과거를 상기시키는 이름인 가브리엘을 버리고 그녀는 새롭게 비상하기 위해 코코 샤넬이란 이름을 스스로에게 선사했던 것이다.


그녀를 성공시킨 두 명의 남자

샤넬의 성공기에는 중요한 두 남자가 등장한다. 애초 샤넬의 역동적이며 자유분방한 삶 속에는 한 남자에 대한 지고지순한 사랑은 없었다. 그녀는 스스로 필요할 때 사랑을 하였고 그 사랑을 통해 이룰 수 있는 것은 모두 성취하는 사람이었다.

싸구려 바에서 샤넬을 건져낸 최초의 사랑은 상류층의 부유한 남자 에티엔 발상이었다. 그는 샤넬을 자신의 호화스러운 별장에 두고 그녀를 가꾸기를 좋아했다. 비참한 어린 시절 동안 배우지 못했던 상류층의 예절과 습관을 샤넬은 모두 이곳에서 배운다.

그리고 그녀가 두 번째로 만난 남자는 영국인 사업가 아서 카펠이었다. 그는 그녀가 자신의 살롱과 의상실을 열 수 있는 돈을 대주었다. 샤넬은 이곳에서 디자이너로서 재능을 남김없이 발휘했고 결국 훗날 아서 카펠에게 빌린 돈을 모두 갚을 수 있었다.


단순하고 명료한 디자인

샤넬 디자인의 정수는 단순함과 명료함이다. 샤넬 디자인의 첫걸음은 모자 디자인부터 시작됐다. 19세기 말 여성들은 모자에 온갖 것들을 다 장식하고 다녔다. 작게는 리본이나 꽃, 심하면 과일까지 얹고 다니는 사람도 있었다. 당연히 그 모자는 무겁고 거추장스러웠으며 여성들의 행동을 제약하였다. 샤넬은 일반 여성들이 쓰는 거추장스러운 모자를 거부하고 스스로 디자인한 검은 모자에 하얀색 리본 하나만을 두른 단순한 모자를 쓰고 다녔다.

이 모자는 당시 상류층 여인들에게 센세이션을 일으킨다. 샤넬의 간단한 모자 디자인에 대한 수요가 물밀듯이 늘어나면서 샤넬은 일약 세계적인 디자이너로 성장하기에 이른다. 영화배우와 연극배우들이 그녀의 모자를 앞다투어 쓰기 시작했다.

그녀는 모자디자인에만 그치지 않고 1913년 도빌에 의상실을 열었다. 이곳에서 그녀는 여성의 옷과 향수에까지 그 영역을 넓혀나가기 시작했다. 1920년대 만들어진 샤넬의 대표적인 향수‘NO.5’는 아직까지도 그 명성을 잃지 않고 많은 여성들에게 애호되고 있다.


옷으로부터의 해방

1913년 도빌에 연 샤넬의 의상실은 패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쾌거를 이루어 낸다. 역사적으로 서양 여성들의 옷은 코르셋을 입지 않고서는 입을 수 없는 옷들이었다. 샤넬은 여성 옷의 코르셋을 과감히 생략하였다. 그녀가 디자인 한 옷은 여성성을 나타내는 약간의 곡선만 있을 뿐 전체적으로 헐렁하며 움직임이 자유로운 형태의 옷이었다. 이 옷은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여기에 더해 샤넬은 1920년 이른바 ‘샤넬 라인’으로 알려진 무릎 밑 5~10㎝ 까지만 오는 길이의 스커트를 선보여 세계를 놀라게 했다. 여성 옷에서 다리를 드러낸 것은 샤넬의 옷이 최초였다. 이 옷은 논란이 많았지만, 당시 터진 세계 1차 대전의 여파로 기능적이고 활동적인 옷을 선호하게 되면서 전세계적으로 유행하게 되었다. 이 때부터 여성들은 스커트 길이에서도 해방을 맞이한 것이다.

여성의 옷에 주머니를 달고 여성이 입을 수 있는 쟈켓을 만들어 낸 것도 샤넬이었고 어깨에 거는 숄더백을 디자인해 핸드백으로부터 여성의 손을 해방시킨 것도 샤넬이었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

‘패션은 지나가도 스타일은 남는다’는 말은 샤넬이 남긴 중요한 말이다. 그녀가 디자인한 옷은 유행을 타고 사라질지라도 그녀가 만들어낸 여성 옷의 기준은 영원히 남아 20세기를 넘어 21세기까지 전해 오고 있다. 샤넬은 1971년 디자이너로서는 최고의 인생이었으나 여성으로서는 우여곡절많고 외로왔던 삶을 리츠 호텔의 스위트룸에서 마감한다.

현재 샤넬사는 칼 라거펠트라는 불세출의 남자 디자이너에 의해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샤넬이 남긴 말처럼 그녀는 떠났으나 그녀의 스타일은 샤넬사에 남이 있다.

김정미 방송·시나리오 작가


김정미 방송·시나리오 작가 limpid7@ms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