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건이 다 싶으면 느낌이 꽂히죠"

[직업의 세계-13]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

"물건이 다 싶으면 느낌이 꽂히죠"


문화 분위기에 맞는 캐릭터야야… 외모는 그 다음

유명하다 보면 이런 일도 다 있다.

“낮에 압구정동 거리에 서 있는데 바로 제 옆에 서 있던 어떤 녀석이 앞에 여자 아이들이 지나가자 붙들고 ‘내가 SM의 김수현인데…’하면서 꼭 제가 캐스팅할 때 하는 모습 그대로 하는 거예요. 저는 처음 보는 사람이요. 한창 신문에 제 기사가 떴을 때였어요.”

“그래서 어떻게 했어요?”

“처음엔 고발해 버릴까도 생각했는데, 그냥 내버려 뒀어요. 내가 유명하긴 유명한가 보구나 하고 웃고 말았죠 뭐.”

“여자가 사기꾼한테 당할 수도 있쟎아요.”

“그것도 걔 운명이죠. 이름 하나에 속을 정도라면 어차피 연예인이 돼선 안돼죠.”

연예인을 발굴하는 전문가, 캐스팅 디렉터 김수현(34)씨는 자타가 공인하는 스타메이커다. S.E.S의 유진, 핑클의 이효리, 성유리, 신화의 김동완, 클릭-B의 김상혁, UN의 김정훈, 박지윤 등 현재 연예계를 장악하고 있는 톱스타 상당수가 그를 통해 등장했다. 요즘 서서히 인기를 얻고 있는 연기자 강정화, 가수 보배 등도 그가 최근 내놓은 새 유망주들이다.

김씨는 1996년부터 SM기획에서 활동하다 현재 ‘이안’이라는 연예기획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온라인, 오프라인을 합쳐 그에게 몰려드는 오디션 신청자들만 한달 평균 100여명이다. 하지만 재목은 1,000명에 하나 될까 말까. 거절할 땐 악역도 어쩔 수 없다.

“일부러 잔인하게 말할 때도 있습니다. 너는 돈(뇌물)을 줘도, 수술을 해도 (연예인이) 될 수 없다, 더 심하면 ‘몸을 팔아도’안 된다는 소리까지 하기도 합니다. 헛된 기대를 갖지 않게 하기 위해서요.”

차라리 직접 찾아 다니는 것이 그의 경험상 훨씬 성공적이다. 대상도 다양하고, 일 자체도 더 재미있다. 그의 캐스팅 1호가 된 가수 유진도 H.O.T의 매니저 시절 영상집을 만들러 출장 간 괌에서 우연히 건졌다.

핑클의 성유리는 어린이대공원의 사생대회에서, 신화의 김동완은 대학로에서 어른 몸집만한 곰 인형을 들고 가는 모습이 재미 있어 붙들었다. 클릭-B의 김상혁은 한강둔치공원 지하터널을 걷다가 발견, 그 외에도 떡볶이 집에서, 학교 매점에서 등등 톱스타의 출처가 다양하다.


"한 눈에 감이 잡혀요"

“주로 거리캐스팅이 많다 보니, 대신 어디를 가서도 저는 쉬지를 못하는 거예요. 노래방에 가서도 남들은 노래부를 때 저는 대기실에 앉아 있다가 누가 노래 부르는 소리를 듣고 그 방을 찾아가 문을 열어본 일도 있어요. 목소리가 아주 좋았거든요. 실제로 그렇게 찾은 고등학생을 데뷔시키려고 지금 몇 년째 준비중이예요.”

그가 눈여겨보는 것은 단지 외모가 아니다. 튀면 튀는 대로, 어눌하면 어눌한 대로, 당시 문화 분위기에 필요한 캐릭터라야 일단 합격이다. 얼굴보다 ‘느낌’이 먼저다. 그러나 첫 눈에 그 느낌을 어떻게 확신하는가?

“강력계 형사가 그렇쟎아요. 오래 사람을 상대하다 보니 딱 보면 되겠다, 안되겠다 바로 느낌이 와요. 거의 관상도 보이구요, 외형만 해도 ‘얘는 체형이 어떻고 어디에 군살이 많고, 어디가 균형이 안 맞으니까 이렇게 교정을 하면 되고…’ 한 눈에 감이 잡히죠. 실제로 성형에 관한 전문서적들을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 점을 말해주면 본인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정말 그런데 어떻게 알았냐구요.”

사람을 짚어내는 김씨의 눈썰미는 연예계에 들어서기 전부터 돋보였다. 특전사 하사관 출신인 김씨는 제대 후 꽤 다양한 직업을 거쳤다. 스키 강사, 건축 설비 기술자, 옷 가게 경영, 주유소 근무, 태권도 강사 등 이력서가 까맣다. 그중 마지막이 한 재즈바의 주차요원 겸 바텐더로 일한 경력이다. 김씨의 ‘캐스팅’은 이미 진행중이었다.

“손님들에겐 참 죄송한 얘기지만, 가게 ‘물갈이’를 위해서 손님을 가려서 받았어요. 딱 보고 돈이 많겠다 싶은 사람이면 안내하고, 아니다 싶으면 주차자리가 다 찼다고 돌려보냈어요. 돈 잘 쓰는 손님만 받다 보니 당연히 가게가 잘 됐죠. 유명한 사람들도 많이 오고, 엄청 잘 나갔어요.”

주차후엔 바텐더를 하며 손님들을 접대했다. 매니저가 된 것도 그 인연이다. 그의 운동 선배이기도 한 현 SM기획 김경욱 대표는 당시 로드매니저 신분이었고, 술집에 들를 때마다 김씨 앞에서 자신의 힘든 일 문제로 괴로워하곤 했다. 이에 불끈한 의리파 김씨. ‘내가 형 곁에서 지켜주겠다’며 나선 것이 매니저 입문 동기다.

H.O.T의 로드매니저로 뛴 초창기, 정말 ‘악독’하게 일을 배웠다. 와중에 유진을 발굴해 S.E.S의 대박을 이끌어 냈다. 누가 부탁하지도 않은 일, 그것도 입사 첫 해에 김씨가 한 일이다.


인간적인 배신에 상처

캐스팅 디렉터로 다역을 뛰다 보니 생활은 더욱 피로해졌다. 일이며 접대까지 모두 끝나면 보통 새벽 6시, 그런데 아침 9시에 출근하라고 했다. 몇 년동안 집 구경을 못했다. 사우나는 물론, 여름이면 공원에서 눈을 붙였다가 출근한 날도 많다.

가수와 함께 이동하던 중 강원도 횡성의 깎아지른 산길에서 승용차의 브레이크가 파열해 목숨을 잃을 뻔한 일도 있다. 낭떠러지로 떨어지기 직전 마주오던 견인차가 끼어들어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 머리를 18바늘이나 꿰매고도 머리에 붕대를 감은 채 또 현장을 뛰었다.

“몇 년 동안 집에 못 들어간 사이 아버지가 간암이 걸리신 것도 몰랐어요. 나중에 알았을 땐 돈이 없어 아무런 힘도 돼 드리지 못했어요. 조금만 더 있으면 편하게 부모님을 모시고, 같이 여행도 가고, 여유 있게 살텐데, 결국 그렇게 돌아가셨어요. 장남이면서 가실 때까지 걱정만 끼쳐드린 게 얼마나 괴로웠는지 몰라요.”

더 견디기 어려운 것은 자신이 발굴해 가족처럼 아꼈던 연예인들의 배신이었다. 가수 L은 호프집에서 픽업한 케이스. 그러나 스타로 뜨자마자 전화연락부터 사라졌다. 초등학생 때부터 준비해 데뷔시킨 고교생 스타 D는 인기를 얻자 숫제 연예계 밖의 일까지 ‘공주’로 보좌해 주기를 요구했다. 다시는 반복하지 않겠다며 심기일전해 데뷔시킨 고교생 가수 S는 그러나 결과적으로 더 험한 고통과 타격을 남겼다. 작년 여름, 사람도 집도 차도 다 날렸다.

“한 사업가가 투자를 하겠다고 제의해서 받아들였는데, 얼마 뒤 이 투자자가 저 몰래 돈으로 꾀어서 제 직원들이랑 가수 S를 모두 가로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 월급으로 샀던 차랑, 부모님과 함께 살던 집까지 빼앗겼습니다. ‘여자 스타 누구랑 깊은 관계’라는 전형적인 음해도 당하고, 경찰서에 불려간 일도 있습니다. 그땐 그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거리로 나앉게 된 신세보다 더 분통터지게 한 것은 인간적으로 믿음과 정성을 들였던 S자신의 변절이었다. 사태가 터진 직후 최소한 S의 해명이라도 들어보려 했지만 아예 그의 전화를 받지 않았다. 결국 변호사가 대신 통화를 하게 됐지만, S의 얘기는 오히려 그의 배신감만 더 부추겼을 뿐이다. 가수로 데뷔시킨지 단 석달만에 터진 일이다.

머리를 삭발한 것도 그 이후의 일이다. 사람이 싫어졌다. 지금도 그 머리 그대로다.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다. 그런데 사람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떻게 캐스팅 디렉터를 할까?

“다시는 이 일을 안 하겠다고 계속 잠수를 타고 있었는데 제 이름을 알고는 자꾸 여기저기서 아이들이 오디션을 보게 해달라고 찾아왔어요. 결국 어쩔 수 없이 몇몇을 맡게 되면서 재기 아닌 재기가 되었죠. 그래, 내가 강해지면 모두 해결되는 거다, 내가 내 세계를 더 잘 만들면 그게 복수다, 그렇게 다시 일어섰어요.”


함정 많은 연예계 사업

연예계 사업은 사건사고만큼이나 함정도 많은 곳. 신인들의 운명을 쥔 자리는 더욱 심하다. 가장 흔한 것이 이성 연예인과의 성추문. 독신주의자인 그는 아예 빌미를 주지 않으려고 오디션조차 자신의 사무실 근처에 있는 청담공원에서 본다. 파출소와 바로 붙어있는 곳이다.

경찰의 코 앞에서 오디션을 보는 판이니 무에 두려우랴. 지망생들을 만날 때도 반드시 부모님과 동석시킨다. 아주 가끔은 이런 겁나도록 당돌한 지망생들을 만날 때도 있다.

“들어오자마자 옷을 벗는 아이도 있고, 어떤 아이는 오디션에 떨어지자 ‘나를 강간했다고 떠들어버리겠다’고 협박을 한 적도 있어요. 마침 어떤 기자랑 만나고 있을 때 그 전화를 받았는데, 그런 말을 하길래 ‘그럼 기자랑 직접 얘기해보라’고 전화를 바꿔 줘 버렸지요. (웃음)”

세상 틈에서 찾아내 가꾼 신인들이 마침내 방송에 나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을 볼 때 김씨는 행복을 느낀다. ‘하고 싶어하는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었다’는 그만의 성취감이다.

지난 8년 동안 쉬어 본 날이라고는 선친의 장례를 치른 3일 외에는 단 하루도 없다. 앞으로 바라는 게 뭐냐고 묻자 ‘이젠 돈도 많이 벌어서 편찮으신 어머니도 잘 모시고, 남들처럼 하루 세끼 밥 먹고, 밥 먹고 나면 여유 있게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살고 싶다’는 김씨. 지금이라도 본인이 원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하자 고개를 저었다.

“안되죠. 지금은 준비 중인 아이(신인)들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요. 일단 맡았으면 일을 잘 만들어야지요. 이건 아이들의 인생이 걸렸으니까. 어제도 곧 가수로 데뷔시킬 한 아이의 노래 녹음을 들으면서 문제점을 찾느라고 오늘 아침 7시까지 잠을 못 잤어요. 지금도 졸려 죽겠어요.”

실제로 몸이 괴로운지 간간이 온 몸을 뒤틀어대던 김씨. 그의 상처는 얼마나 깊은 것일까. 김씨는 연예인들과 계약서를 쓰지 않는 이상한 제작자다. ‘계약을 한다고 해서 안 달아나는 것도 아닌데 굳이 할 필요가 있느냐’는 생각. 가든 오든 하루 하루에 충실하기로 했다.

나중에 연락하겠다고 인사를 하자 문 앞 계단 앞에 서서 그가 말했다. “전화가 잘 안될거예요. 저, 정말 사람을 별로 안 만난다니깐요.” 끊임없이 ‘사람이 싫다’고 말하는 김씨. 하지만 그의 말을 믿지 않기로 했다. 김씨 자신도 모르는 김씨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도 언젠가는 알게 될 지 모른다. 그는 캐스팅 디렉터다.

글 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글 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