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접으며] 39세의 가을단상

1964년 9월27일생이니 벌써 서른아홉이다. 주간한국의 지령(誌齡)이다.

“아홉 수는 사나운 운수에 휘감길 수 있어 액(厄)을 조심하라”는 말이 있다. 그것도 인생 40대, 그 찬란한 장년기에 접어드는 문턱에선 말보다 행동이 더욱 값어치를 발휘하는 시점이다. 가장 역동적으로 인생의 큰 흐름을 잡아가는 시기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하니, 생각과 말, 몸가짐마저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이 서른아홉에 갖는 관심사는 무엇일까?

요즘 안팎으로 ‘바람’이 거세 가정의 행복과 경제적 안정이 우선이다. 자기관리가 절대 필요한 대목이다. 또 정신없이 뛰어온 여름 한나절, 잠시 나무 아래에서 땀을 식히다 보면 서늘한 바람에 정신이 바짝 든다. 바야흐로 가을이다.

30대 초ㆍ중반까지 ‘부자’에 대한 막연한 꿈과 기대로 주식이나 부동산을 머리속에 그려보지만 마흔 목줄에 들면 꿈은 잘게 부서져 간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아파트값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자녀들의 사교육비, 한번이라도 긋게 되면 영락없이 쌓이는 카드 빚 등은 결국 ‘부자 되기’란 인위적인 게 아니라 운명임을 스스로 깨닫게 된다.

안정된 노후생활에 필요한 실속 재테크에 눈을 돌리는 시점도 이쯤이다. 유행어 같이 범람하는 ‘10년에 10억원 벌기’란 단지 가을햇살 아래 전설이나 동화쯤으로 체감된다. 자녀 교육에다 새로운 삶의 시작을 꿈꾸며 ‘탈 한국’을 목표로 이리저리 이민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초 가을날의 단상이다.

정치에 대한 무관심은 가을이 깊어질수록 더욱 깊어 간다. 민주당의 분당과 보ㆍ혁 갈등, 이해집단간 편가르기, 노사갈등 등 사회 전반에 깔린 이념ㆍ계층ㆍ세대간 갈등구조는 총선 전야에도 관심이 ??어진다. 이미 식상할대로 식상해졌다.

어우르고 부둥켜 안는 통합의 리더십이 없는 시대 상황에서 “정치야 어떻게 됐던 자신만이 바로 서야 되겠다”는 ‘불혹’(不惑)의 개인주의는 더욱 심화되고 386세대의 꿈을 먹고 자랐지만 정계의 386과는 거리가 먼 것이 현실이다. 바야흐로 39세. 인생으로 따지면 또 한번 세상이 바뀌어가는 시점이다. 그런 나이에 느끼는 초가을 단상은 푸른 것이 그저 푸른 것으로 끝나지 않는 조심스러움, 그 자체다.

장학만 기자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