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권 '중간평가'의미, 참신한 인물론으로 승부

[17대총선을 향해 뛴다] 험난한 여의도 입성 "전선 없는 전쟁"

노무현 정권 '중간평가'의미, 참신한 인물론으로 승부

내년 4월15일 실시되는 제17대 총선은 사상 유례없는 혼전으로 치러질 전망이다.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민주-평민-신공화당이 벌인 ‘4당 싸움’이 16년 만에 재현되는 ‘신 4당 체제’가 성립됐고, 민주화 이후 꾸준히 고정 표를 확대해온 민주노동당을 비롯, 민국당 하나로국민연합 국민통합21 등 군소정당이 가세하면 근래 보기 드문 다자간 싸움이 된다.

이번 선거는 또 과거의 1인 보스 정당간 대결에서 이탈한, ‘깃발만 꽂으면 당선’이란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첫 선거이다. 4당 모두 텃밭이 흔들리는 양상이어서 현역 의원들을 넘보려는 후보자들이 넘쳐 나고 있다.

실제 주간한국에서 총선 출마를 희망하거나 준비 중인 예비 선량들을 조사한 결과, 전국 227개 선거구에서 총 2,0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단순 계산만으로도 10대1의 경쟁률이다.

후보자 풍년에는 이번 선거가 지역구도에서 이념간 계층간 세대간 대결구도로 변화하는데 기인한다. 이 때문에 여타 후보가 가장 넘보기 힘든 지역으로 꼽혀온 광주광역시만 해도 6개 선거구에 80여명이 물망에 오르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흔히 총선의 최종 승부는 수도권 쟁패 여부에 달려 있었지만 이번에는 전국의 모든 선거구마다 여야 정당과 각 후보자 간에 험난한 사투를 벌일 정도로 ‘전선없는 전쟁’이 준비되고 있다.


수도권- 여야 3당의 마지막 격전장

역대 선거에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은 늘 여야 모두의 격전장이었고 이곳에서의 승패 여부에 따라 전체 성적이 좌우되곤 했다. 199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여촌야도(與村野都) 성향이 강하게 나타났지만 DJ정권 이후 상황이 달라졌다.

실제 98년 6ㆍ4 지방선거에서는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동여당이 서울 경기 인천을 휩쓸어 서울의 25개 구청장 중 한나라당은 단 5곳에서만 깃발을 들었다. 2000년 4월 16대 총선에서도 득표율면에서는 민주당이 우세했다.

하지만 지난해 6월 지방선거에서는 한나라당이 3개 광역단체와 서울 25개 구청장중 22곳을 ‘삼키는’ 괴력을 과시했다. 이때만 해도 한나라당의 상승세가 유지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12월 대선에서는 다시 민주당 노무현 후보가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를 눌렀다. 민심의 변화가 그만큼 빠른 지역이다.

내년 총선은 안개 구도 속에서 치러지지만 아무래도 호남 민심과 젊은 층 표심이 갈라선 두 여당으로 분산될 가능성이 높아 일단은 한나라당이 근소 우위에 설 것으로 보인다. 지난 4월 재ㆍ보선 때도 여권 후보가 단일화된 경기 고양시는 개혁당이, 복수후보로 나선 의정부에서는 한나라당이 이겼다.

세부적으로 서울의 경우 강남지역은 한나라당 우세, 강북지역은 3당의 혼전양상이다. 자민련이 설 곳은 별로 없어 보인다. 인천과 경기지역도 서울 강북권과 같이 혼전 구도속에 지역별로 한나라당이 조금 무게감을 가질 수 있다. 강동 갑과 금천 등 한나라당 탈당파 지역의 승패가 관심사이고, 민주당 추미애 의원이 버티는 광진 을, 통합신당 이해찬 의원의 관악도 핫 코너로 등장할 전망이다.


영남- 신당 東進 가능할까

한나라당의 텃밭을 통합신당이 얼마나 공략하느냐가 관건이다. 분위기로 보면 민주당과 자민련의 공간은 없다.

잇달은 대선 패배와 대구 지하철 참사에 이은 태풍 매미의 수해 등으로 이곳의 민심은 ‘노기’(怒氣)로 가득 차 있다. 정부 여당에 그리 좋은 감정은 아닌 상태다. 다만 통합신당은 노무현 대통령 출신지인 점을 앞세우면서 한나라당 내부에서 불고 있는 60대 용퇴론의 주 타깃이 영남권 민정계 출신 원로층이란 점을 부각시켜 ‘제대로’ 한판 승부를 벌여볼 태세다.

통합신당의 강력한 도전장에 한나라당은 TK(대구ㆍ경북)지역은 안정권이라고 보고 PK(부산ㆍ경남)지역의 문단속에 몰두할 준비를 갖추고 있다. 그러나 이수성 전 총리와 김중권 전 민주당 대표, 최기문 경찰청장 등 유력 인사들이 나설 경우 TK 지역도 예측이 어렵다. 그래도 ‘남도’(南道)보다는 수월한 편이다.

노 대통령 고향인 PK의 향배가 이번 선거의 최대 관심사 중 하나다. 통합신당은 바람만 勞沮寧?절반 이상도 얻을 수 있다고 호언하고 있다. 대체로 이 지역의 비(非) 한나라당 고정표가 30%에 육박한다고 볼 때 20%의 유권자 층만 포섭하면 당선에 이른다는 공식이 성립된다.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도 있는 상황이다. 한나라당 입장에서는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노 대통령 고향인 김해, 김두관 전 행자부장관 지역인 남해, 외지인 비율이 높은 부산의 몇 개 지역에서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13대 이후 내리 4선에 성공한 울산의 정몽준 의원도 이번 만큼은 호락호락하지 않다. 여기에다 민노당 권영길 대표의 원내 입성도 관심거리다. 통합신당이 호언대로 절반 가량을 가져갈 경우 전체 의석수 비율 여부와 상관없이 이번 총선은 사실상 신당의 승리로 귀결된다.


호남- 민주 우세속 신당 맹추격

88년 13대 총선이후 영원한 무풍지대였던 호남이 거센 격량에 휩싸여 있다. ‘공천=당선’이란 등식이 어느 지역보다 확실하게 들어 맞았던 호남이지만 내년 총선은 180도 상황이 다르다. 누가 진짜 호남의 간판이 되는 지는 선거가 끝나봐야 알 정도로 유권자 본인들도 혼란스럽다.

과연 DJ의 적자가 동교동계를 중심으로 한 민주당인지, 호남 주민의 염원인 지역구도 타파를 외치는 통합신당인지 아직은 가늠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현재까지의 지역 민심을 보면 대체로 광주 전남은 민주당 쪽에, 전북은 팽팽한 구도 속에 지역별로 엇갈리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또 젊은 층은 신당 쪽에, 장년 층은 민주당 쪽에 마음을 두는 듯하다. 이 상태대로라면 남도를 잡고 있는 민주당이 다소 우세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이런 분위기가 끝까지 유지될 지는 미지수다.

호남의 표심을 놓고 흔히 ‘패키지’ 성향이라고 한다. 13대 대선이후 표의 결집력이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 후보나 정당에 대한 호ㆍ불호가 명확하게 가려지므로 여론의 힘만 받으면 도미노처럼 싹쓸이 할 수 있다. 지난 대선도 노 대통령에게 95%가 넘는 지원을 보낸 바 있다.

민주당이 동교동계의 재 단합 등으로 철옹성을 보이는 것 같지만 작은 틈새만 보이면 신당의 바람이 거세게 비집고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이 바람이 한번 불기 시작하면 호남 전역으로 확대될 개연성도 충분하다.

전북은 전 지역이 모두 관심지역으로 분류될 만큼 민주당과 신당의 싸움이 볼만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무주 지역의 동계올림픽 유치, 위도 핵 폐기장 문제, 새만금 간척공사 문제 등 굵직굵직한 현안이 지역 주민 뜻과는 배치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어 현 정권에 대한 감정이 썩 좋은 것은 아니다.

이런 바닥 민심을 잡지 못할 경우 민주당이 대승(大勝)을 거둘 수도 있다. 17대 총선의 최대 하이라이트가 펼쳐지는 곳은 바로 이곳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나라당과 자민련은 민주ㆍ신당의 기세 싸움에 끼어들 여지조차 보이지 않는다.


충청- 자민련 안방에 3당 모두 호시탐탐

영남은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호남은 민주당과 통합신당의 두 집 싸움이고 수도권이 여야 3자 대결구도라면 충청지역은 진정한 4자 대결이 벌어지는 혼전지대다.

JP가 정치적 명운을 건 마지막 승부를 벌이기 위한 수성에 들어간 상태라 전체적으로 자민련이 한발 앞서가고는 있지만 충북은 물론 대전ㆍ충남에서도 당선을 확신할 수 있는 곳이 그렇게 많다고 보기는 힘들다. 그만큼 자민련의 정당 지지도가 떨어졌다.

충청 민심은 각종 여론조사 결과 아직은 JP에게 어느 정도 애정을 갖고 있다. 그래서 자민련은 원내교섭단체 수준의 의석확보를 목표로 잡고 있지만 적어도 16대 총선 결과 이상은 얻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여기에는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민주당 등을 지지하는 표심들이 여러 갈래로 분산될 경우 최소한의 고정표를 확보하고 있는 자민련이 상대적으로 유리하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

만약 자민련이 아니라면? 그럼 다음 선택이 한나라당인지 통합신당인지 민주당인지 불분명하다. 다만 민주당의 기세가 좀 약해 보이긴 한다.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의 다툼이 한바탕 불을 뿜을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자민련에서 한나라당으로 날아온 철새파들의 수성 여부는 또다른 별미거리.


강원·제주- 절대 강자도 절대 약자도 없다.

수도권과 비슷한 여야 각축장이다. 자민련의 기운은 약화돼 있고 3당 중에서는 아무래도 민주당이 힘겨워 보인다. 이곳도 한나라당과 통합신당의 양자 대결구도가 유력하다.

충청이나 영ㆍ호남과 달리 지역색이 뚜렷하지 않고 ‘무조건 1번’이라던 강원지역도 최근 선거에서는 여야가 백중을 보이고 있어 선뜻 결과를 예단하기 힘들다.

강원은 대체로 한나라당이 선전하던 지역이다. 지난 대선에서도 이회창 후보의 득표수가 조금 많았다. 지역에 따라 편차가 있을 수 있지만 한나라당이 반 보 가량 앞서가는 ×諍?통합신당이 빠른 속도로 맹추격한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변화나 개혁을 바라는 강원 표심이 상대적인 지역 낙후성에 따라 이전과 달리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어 한나라당이 조금만 느슨하게 나오면 신당이 상당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제주지역은 3당간 대접전이 벌어질 양상이다. 한나라당과 통합신당, 민주당 어느 당도 안심할 수도, 포기할 수도 없는 곳이 제주지역이다. 모두 해볼만한 곳이란 얘기다. 지역구 3곳 모두 개표 막판까지 이르러야 당락의 윤곽이 가려지는 박빙의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염영남 기자


염영남 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