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담쟁이 덩굴

창 너머 보이는 돌벽 위로 담쟁이덩굴이 가득 올라가 있다. 그리고 그 덩굴 가득 달린 나뭇잎 마다 붉은 가을물이 곱게 들어가고 있다.

봄이면 담쟁이덩굴의 앙상한 가지 위로 발긋하기도 하고 파릇하기도 하게 돋아 나오는 새순도 귀엽고, 여름이면 가득한 그 무성한 초록빛도 시원하지만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바로 가을 단풍에 있지 않을까 싶다. 한 잎새에서도 알록달록 여러 색깔을 표현하며 물드는 그 빛깔들은 하나같이 곱고도 가을에 잘 어울린다.

담쟁이덩굴은 포도과에 속하는 낙엽성 덩굴식물이다. 덩굴이 지는 나무들은 다른 물체를 타고 올라가는 나름대로의 방법이 있지만 담쟁이덩굴의 줄기에는 흡착근이 있어 숲 속의 바위에도, 나무에도, 도시의 담장에도 잘도 올라간다.

벽에 붙은 줄기를 잘 살펴보면 흡반이라고도 부르는 흡착근을 볼 수 있는데 마치 심전도 검사를 할 때 몸에 탁탁 고정시키는 둥근 물체같기도 하고 오징어 다리에 붙어 있는 둥근 흡반을 닮기도 했다. 필요에 따라 덩굴손이 변하여 흡착근이 된 것이라고 하는데 물체를 부착하는데 아주 효과적이다. 얼마나 담을 잘 타면 이름도 담쟁이덩굴이 되었을까. 석벽려 또는 지금(地錦)이라고도 하는데 땅을 덮는 비단이라는 뜻이니 이 또한 참 좋은 이름이다.

담쟁이덩굴의 잎은 마치 포도잎처럼 끝이 크게 세 갈래로 갈라진다. 그런데 아주 어린 줄기나 포기의 잎들은 완전하게 세 장으로 갈라진 것들이 많아 서로 다른 식물로 착각하게 만든다. 곤충이나 사람처럼 말이다.

초여름에 피는 꽃은 워낙 작은 꽃이 모여 피고 더욱이 그 빛깔도 황록색이어서 꽃이 피고 졌음을 알아차리는 이가 드물고 가을에 익은 열매는 머루송이처럼 흰 백분이 묻어나는 검붉은 열매가 겨울이 오고 잎이 다 떨어지도록 남아 있으니 또 하나의 매력으로 느껴진다.

도시에서 담쟁이덩굴은 시멘트나 콘크리트로 된 삭막한 담장이나 벽들을 가리고 시원하게 해주는 용도로 많이 이용된다. 또 도로를 만들어 생긴 비탈면을 푸르게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한방에서는 지면이라는 생약이름으로 쓰기도 하는데 그 뿌리가 산후 출혈을 비롯한 각종 출혈, 골절로 인한 통증 등에 쓰이고 줄기에서는 달콤한 즙액이 나와 감미료로 이용하기도 했다는 이웃나라 기록도 있다.

담쟁이덩굴(물론 서양담쟁이덩굴이지만)에는 이야기가 하나 전해져 내려온다. 옛날 히스톤이라는 착하고 고운 아가씨가 한번도 보지 못한 청년과 부모님이 정해주신대로 약혼을 하였지만 이 청년은 전쟁에 나가 돌아오지 않았다. 많은 이들이 자신이 바로 그 약혼자라며 청혼을 했지만 히스톤은 먼 발치서 그림자만 보았던 약혼자의 키가 큰 것만을 기억했다.

청년을 기다리다 지친 히스톤은 자신을 그 그림자가 지나간 담장 밑에 묻어 달라고 유언하며 죽었다. 그녀가 묻힌 곳에서는 약혼자를 찾으려는 듯 담을 타고 자꾸만 높이 올라가는 덩굴이 있었으니 사람들은 그녀의 넋이 거기에 깃들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 덩굴이 바로 담쟁이덩굴이다. 담쟁이덩굴 집안을 총칭하는 학명 파르테노서는 처녀덩굴이란 뜻이다.

한창 곱게 물들어가는 담쟁이덩굴 잎을 바라보며 한 사람을 기다리며 애태웠을 마음을 짐작해보니 그 빛이 예사롭지 않게 느껴진다. 그렇게 가을이 오고 있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