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효리·이수영 '섹시' '정숙' 상반된 컨셉과 이미지로 인기몰이

효리의 몸이냐? 수영의 감성이냐?

이효리·이수영 '섹시' '정숙' 상반된 컨셉과 이미지로 인기몰이

길을 걷던 남녀 커플이 신문 가판대를 지나면서 “이효리는 왜 저렇게 매일 신문에 등장하는 거냐?”, “섹시하지도 않는데 왜 난리인 지 모르겠어.”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신문을 보니 스포츠지 1면에 어김없이 배꼽을 드러낸 이효리의 사진과 함께 ‘외국인도 이효리의 섹시함에 반했다’, ‘하룻밤 5,000만원 나이트클럽 출연 제의 거절’ 이라는 헤드라인이 시야에 들어온다.

동시에 길가 상점에서 노래가 흘러나온다. 이수영의 ‘덩그러니’다. 극심한 음반시장의 불황기에 출시 한달 만에 25만장이 팔려나간 이수영의 5집 음반. 담백한 음색에 발라드 선율이 템포가 빠르고 직설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가사로 대변되는 댄스가요의 횡행 속에 청각을 오히려 더 자극한다.


진정한 스타는 누구냐

요즘 다른 색깔의 신드롬을 일으키며 인기의 정점에 서 있는 두 여가수의 이미지와 가수로서 행보, 그리고 그녀들에 대한 대중매체와 대중의 시각은 우리 가요계에 적지 않은 문제와 대안을 제시한다.

우선 두 여가수를 보면 두 명의 미국 스타가 떠오른다. 섹시함과 정숙함이라는 이미지의 대척점에 서 있던 마를린 먼로와 그레이스 켈리.

대중문화 초창기부터 고도의 상업적 전략을 구사한 할리우드 영화사들은 켈리에게 맑고 깨끗한 숙녀 이미지를 구축시키기 위해 부유하고 가문 좋고 화목한 가정에서 태어났다는 성장 배경을 영화 개봉 전 잡지와 신문 등에 집중적으로 홍보하고 켈리 역시 그러한 분위기를 풍기도록 패션과 스타일을 지향하며 생활을 해왔다. 그리고 영화에서의 배역도 사적인 생활과 연결되는 정숙한 숙녀 역을 연기해 정숙함의 표상으로 떠올랐다.

반면 먼로는 돌봐주는 가족 없는 가정에서 태어난 불행한 과거의 실제 삶을 잡지 등에 집중 홍보해 남성들로 하여금 만만하게 손에 넣을 수 있는 여성의 이미지를 창출한 뒤 의도적으로 홍보 자료에 노출이 심한 옷, 반쯤 감은 눈 등 선정적인 사진을 삽입해 섹스 심벌로서 먼로를 만들었다.

할리우드 영화사의 이미지 조작 노력과 대중매체의 열띤 호응에 힘입어 두 스타는 극단적인 이미지의 표상으로 대중은 받아들였고 그녀들이 죽은 후 지금에도 대중의 마음에는 정숙함과 섹시함의 코드로 남아 있다.

요즘 새 음반 출시를 같은 시점에서 하며 왕성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이효리와 이수영의 이미지 역시 먼로와 켈리에게 행했던 고도의 전략 속에 축성된 것이다. 이효리는 핑클에서 성유리(예쁨), 이진(선함) 옥주현(재능)과 함께 섹시함이라는 컨셉으로 대중에게 다가갔다.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이 그녀는 결코 섹시하지 않다고 주장하고 있는 가운데 확고하게 그녀의 섹시함이라는 이미지가 대중에게 유포된 것은 그녀가 솔로 앨범을 내기 직전 집중적으로 조성된 것이다. 그녀의 노출이 심한 의상, 성형을 둘러싼 논란들, 그녀가 텔레비전에서 나와서 언급한 것들(19세 키스, 음주), 선정성이 농후한 섹시한 춤과 텔레비전과 스포츠지의 섹시함과 관련된 시시콜콜한 보도들에 의해 가공된 것이다.

이에 반해 이수영은 가수 데뷔 당시 소녀가장이라는 출신배경이 알려지고 그녀가 대중매체에서 언표한 돌아가신 어머니에 대한 애틋한 사랑, 조신한 의상, 차분한 외모와 말투, 온갖 주접을 떠는 다른 가수들과 달리 오락 프로그램에서 수선스럽지 않는 모습, 종교가 기독교라는 점등은 그녀에게 정숙함과 차분한 이미지를 구축시켜줬다.

물론 두 사람이 출발부터 이효리는 댄스가요로, 이수영은 발라드로 활동한 것도 이 같은 이미지를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줬다.


고도의 전략으로 차별화

현재 가요계의 가장 큰 문제는 가수가 노래보다는 가공된 이미지에 매몰되는 것이다. 물론 테크놀러지의 놀라운 발전으로 가창력 없이도 충분히 노래를 잘하는 것처럼 대중을 속일 수 있고 텔레비전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임에도 마치 엄청난 일을 하는 것인 양 화면 상단에 표시까지 하는 시대이고 보니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가수의 본질은 노래이며 그들이 지녀야 할 무기는 가창력이다. 분명 두 사람의 가창력은 차이가 있다. 이효리는 ‘10 Minutes’ 앨범에서 음색과 노래가 자연스럽게 어울리지 못하는 문제를 노출한데다 방송에서 라이브로 부를 때 음정의 불안함 마저 보였다.

이에 비해 이수영은 5집 앨범 ‘This Time’에서 섬세하고 감미로운 음색에 담백함을 더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덩그러니’나 ‘아이리시 휘슬 블로우’에서 새로운 음악적 시도도 해 이전 앨범과 차별화를 기했다.

아이돌 스타로 출발했던 핑클은 멤버의 인기가 저점에 닿자 그들의 생명력을 연장하고 상업성을 높이기 위해 멤버들을 연기자, MC로 진출시켜 노래는 부르지 않고 방송 활동에 더 치중했다.

이들이 가수였던가 할 정도로 노래와는 거리를 두었다. 올 들어 옥주현과 이효리가 솔로 앨범을 내면서 가수 활동을 재개해 MC로서 구축한 인기를 솔로 가수로서의 상업성으로 이어가는 놀라운 상술을 드러내 성공(?)을 거뒀다. 그야말로 요즘 성행하는 원소스-멀티 유스(One Source-Multi Use)전략의 전형이자 성공 사례이다. 하지만 이들의 연기활동이나 음반에 대한 비판은 더욱 더 높아졌다.

이수영은 어떤가. 한번의 외도(MBC 라디오 가요 프로그램MC)외에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노래에 바치고 있다. 그래서 이전의 음반보다 새로움을 추구하고 자신의 음악적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의 흔적이 음반에서 배어난다.


본말 전도된 대중매체 관심

이들에 대한 대중매체의 보도 행태 역시 우리 대중문화계의 고질적인 병폐를 보여준다. 특히 이효리에 대한 보도가 그렇다. 대중매체역시 이윤추구를 위한 상업성을 무시할 수 없다. 하지만 비판과 대안제시로 문화의 질을 높여야하는 매체로서의 본질적인 책무도 있다.

애당초 이러한 책무를 수행하리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텔레비전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차치하더라도 지난 7월부터 하루에 한 두건씩 쏟아내는 스포츠지의 이효리에 대한 기사들은 그야말로 본말이 전도된 것들이 주류를 이룬다. 신문들은 이효리에 대한 노래와 성격, 가창력에 대한 기사와 비판은 없고 대신 섹시함에 관련된 것들만 쏟아내고 있다.

텔레비전의 오락 프로그램도 오로지 이효리의 출연으로 가져올 수 있는 이익, 시청률만 생각하며 방송 3사는 이효리 잡기에 혈안이 돼있다. 이 시점에서 과연 대중매체들은 완성도 높은 음악을 위해 젊음과 정열 그리고 노력을 바치고 있는 가수들을 조명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 지에 대한 자문을 요구하고 싶다. 물론 이효리가 매체 장사에 효과가 높은데 웬말이냐 하면 할말이 없지만.

요즘 참 웃기는 말이 있다. 스타는 있고 가수는 없다는 말이다. 스타라는 단어에 대한 모독이다. 스타는 가창력(연기력), 대중적 이미지의 축성, 인기도, 개성의 유무, 문화상품의 수요창출력 등이 일정 정도의 수준에 오른 사람을 지칭한다. 스타 용어에 대한 정의를 환기하는 도중에 이효리와 이수영의 두 사람중 어떤 사람이 진정한 스타일까라는 우문을 던져본다.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배국남 대중문화평론가 knbae24@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