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덕균의 개그펀치] 정신 나가 사람들


전에 우리집의 싱크대 배수관이 막힌 적이 있었다. 설거지를 마친 아내의 입에서 비명이 터져나와 달려가보니 싱크대 바닥 주변으로 물이 흥건히 고여 있었다. 처음엔 배수관이 막힌 것을 모르고 대야를 갖다놓고 바닥을 닦아냈는데 자꾸만 물이 흘러 넘치는 것이었다.

물을 써서 흘려보내면 넘치니까 아침밥도 못해먹고 관리소 사람들을 불러다가 수리를 했다. 기계와 공구들, 싱크대 밑을 가리고 있던 판자들이 뜯겨지고 하수구에서 풍겨 나오는 악취로 오전 내내 어수선했다.

단순히 배수관이 막힌 것 하나로 인해서 평화롭고 조용했던 한 가정의 오전 시간은 불안과 짜증과 어수선한 마음으로 다들 예민해져 있었다. 배수관 뿐인가, 아이들이 우유를 마시다가 바닥에 엎질러버리면 그걸 닦아내는 주부의 입에서는 어김없이 짜증과 한숨이 나오고 ‘못살아, 못살아’ 하는 신세한탄이 뒤를 잇는다.

이러한 작은 불상사 앞에서도 안절부절 못하는 사람들에게 요즘 태풍 매미가 휘젓고 간 뒤의 참혹함은 할말을 잃게 만든다. 어제도 비가 내렸다. 매미로 인해서 끔찍한 고통을 당한 사람들이 그래도 살아보겠다고 과일 하나, 풀 한포기를 보듬고 있는데 ‘희망은 없다’라고 단정짓듯이 거세게 내리는 비를 보고 있자니 아, 하늘이 원망스럽다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적은 액수를 성금으로 내며 손이 부끄럽다고 황급히 자취를 감추는 사람들이 있고 집안에서 방송을 보다가 마음이 쓰여 ARS 성금 전화 버튼을 다급하게 눌러대는 선한 사람들도 많지만 우리를 열받게 하는 사람들과 일들도 많은 게 요즘이다.

우리가 물난리를 하루 이틀 겪는 게 아니다. 위험에 노출돼있는 지역과 장소를 전혀 모르는 것도 아니다. 어쩔 수 없는 자연재해도 물론 있지만 대부분이 인간재해로 피해를 겪는 실정이다. 처음엔 뭘 몰라서 실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습관적으로 반복되는 것은 실수가 아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식의 땜질 수선말고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철저하고 완벽하게 대비를 하면 얼마든지 피해를 최소한도로 줄일 수 있었는데도 무능한 사람들로 인해 수많은 착하고 선량한 사람들이 집을 잃고 삶의 희망을 잃었다. 우리보다 지진과 태풍이 잦은 일본이 수많은 재해 속에서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최소한의 피해로 끝나는 것을 보면 새삼 분노마저 인다.

한나라의 부총리라는 사람은 태풍이 온다는 강력한 예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비행기 타고 제주도까지 내려가 골프를 즐기는 믿기 어려운 강심장을 가졌다. 친자식보다 더 애지중지하며 기른 양식장의 고기들이 죽어나가는걸 두눈 뜨고 뻔히 바라보는 어민들의 눈앞에서 그것들을 잡겠다고 희희낙락하며 모여드는 낚시꾼들도 있다. 초상집에 가서 춤추는 것도 아니고 정상적인 뇌를 가진 사람들은 도저히 할 수 없는 일들을 태연스레 저지르고 있으니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의 머리 뚜껑을 한번 열어보고 싶을 정도이다.

집이 떠내려가는 바람에 모든걸 잃은 16세의 소년이 ‘내년에 매미가 보이면 모두 죽여버릴거예요’ 라며 눈물을 삼키는데, 그 피눈물 나는 적의가 나중에는 이 사회를 향해, 무능하고 무뇌아같은 행동을 일삼는 사람들에게 향해지지는 않을지 가슴이 아팠다.

여름휴가를 갔던 곳이 피해를 입었다며 안타까와 하던 후배 하나는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 “난 태조 이성계하고 무학대사를 제일 존경해. 옛날 수도를 정할 때 정말 천혜의 장소를 골랐지. 서울이 저렇게 망가진 적은 없잖아.”

치산치수라고 했던가. 예전의 덕 있는 임금들은 산과 물을 잘 관리해서 농사를 돕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정책을 최우선의 과제로 삼았다. 백성들의 무사 태평을 위해 하늘을 향해 진심으로 무릎 꿇고 기원하던 임금들처럼은 못하더라도 그 마음 한자락만이라도 짚어볼 줄 아는 사람들이 점점 줄어드는 것은 아닌가 새삼 불안해진다.

장덕균


입력시간 : 2003-09-30 14:46


장덕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