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보성 차목원


봄은 초록이다. 연초록 새순이 돋고, 초록빛으로 물든 남도의 들녘은 봄의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보성 차밭은 사시사철 초록이지만 겨울에는 칙칙한 초록이었다가 봄이 되면서 밝은 초록빛으로 바뀐다. 이제 막 여린 잎을 내밀기 시작하는 차나무들.

보성 차밭에서 싱그러운 봄을 만났다. 안개 내린 야트막한 산등성에 구불구불 들어선 이랑, 차밭을 구비 돌아 오르는 길가에 심어둔 삼나무, 차밭 산책을 마친 뒤 맛보는 향긋한 차 한잔과 녹차 음식. 코와 입으로 느끼는 봄이다.

봄을 맞아 한창 보성 차밭 여행이 인기다. 주말이면 멀리서 찾아오는 여행객들로 차밭 입구 주차장이 대형버스로 가득 찬다. 사람들은 삼나무 길의 멋스러움에 감탄하며 차밭으로 들어선다. 산자락이 생긴 모양대로 만든 이랑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계단처럼 차곡차곡 놓여있다.

이 또한 감탄하기 충분한 광경. 안개 깔린 이른 아침이면 감동은 극에 달한다. 차밭을 거닐며 상쾌한 공기로 그 동안 찌들었던 폐를 깨끗하고 헹구고 나면 머리 속까지 맑아지는 느낌이다.

여행자들은 차밭 아래편에 마련된 찻집에서 햇차를 맛보거나 차를 구입하기도 한다. 단체 여행자들은 대부분 여기까지가 마지막이다. 다음 여행코스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바삐 버스에 오른다.

급히 떠나야하는 게 아니라면 차로 만든 음식까지 맛보면 어떨까? 찻집 아래쪽에 녹차전문음식점 차목원이 있다. 녹차는 콜레스테롤과 혈당을 저하시켜 당뇨를 억제하고 암을 예방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차를 이용해 만들었으니 건강에 좋은 것은 분명하고 문제는 맛인데.

녹차수제비나 녹차떡국의 맛부터 얘기하자면 그리 빼어난 맛은 아니다. 적당한 감칠맛에 속을 따뜻하게 만들어주는 뜨거운 국물, 적당히 쫄깃하고, 고만고만하게 뒷맛을 남긴다.

결론은 평범하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녹차음식을 권하는 이유는 보성에서만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잘 뻗은 삼나무 숲과 싱그러운 차밭을 내다보며 먹는 것이니 평범한 맛이지만 멋스럽게 느껴지기 때문이기도 하다. 고기류 역시 그리 특별한 맛은 아니다. 일반 고기 보다 조금 더 담백한 정도랄까.

메뉴는 그리 많지 않다. 돼지고기, 소고기, 녹차수제비, 녹차떡국 정도가 전부. 돼지는 찻잎을 먹여 기른 녹돈으로 생삼겹이나 주물럭으로 먹을 수 있고, 소고기는 양념에 말차(가루차)를 넣어 고기를 재운 것으로 불고기백반과 소갈비찜으로 먹는다.

수제비와 떡국은 반죽할 때 말차를 넣어서 푸르스름한 녹색을 띠는 게 독특하다. 차가루 때문인지 쫄깃거리는 맛이 일반 수제비나 떡국에 비해서는 조금 떨어지는 편. 하지만 떡이나 수제비에서 은근하게 풍기는 차향이 기분 좋다. 밑반찬은 깍두기에 김치 정도로 간단하게 나오는데 차 잎을 소금과 참기름, 다진 마늘 등으로 무쳐놓은 차나물(?)이 인상적이다. 맛도 좋고 향도 그만이다.

차목원은 보성의 차밭 가운데 가장 많은 이들이 찾는 대한다업 안에 자리하고 있다. 대한다업 외에도 크고 작은 차밭들이 많다. 주로 보성읍에서 율포로 이어지는 18번 국도변에 차밭이 많다. 보성읍내나 율포에서도 녹돈 삼겹살을 비롯해 녹차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몇 군데 있다.

▲메뉴 : 녹차수제비 5,000원, 녹차떡국 5,000원, 녹돈생삼겹 6,000원(180g), 녹돈주물럭 6,000원, 녹차불고기백반 8,000원, 녹차소갈비찜 10,000원. 061-853-5558

▲찾아가는 길 : 차목원으로 가려면 보성읍내에서 18번 국도를 따라 율포방면으로 10분 정도 달린다. 길 오른편으로 대한다업 입간판이 보이고 곧장 주차장이 나타난다. 차목원은 차밭으로 오르기 전 삼나무 숲에 둘러싸여 있다.

▲영업시간 : 아침 9시30분부터 저녁까지. 단, 차밭에 어둠이 깔린 뒤에는 찾는 이가 없으므로 조금 일찍 마치는 편이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1 14:15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