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드러움으로 불을 잡는 火摩와의 싸움꾼

[아름다운 그녀] 관악소방서 최선미
부드러움으로 불을 잡는 火摩와의 싸움꾼

불길이 솟구치는 화재 현장. 너나없이 몸을 피하는 순간에도 목숨을 담보로 불길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있다. ‘불과 싸우는 사나이’들이다. 그러나 이제는 이런 표현도 고쳐져야 할 듯 하다. 금녀의 영역이었던 이 곳에도 여성 소방대원이 발을 들여 놓았다.

2001년에 처음으로 여성 소방대원을 뽑았고, 현재 3기 채용을 앞두고 있다. 서울 관악소방서에서 근무하는 최선미씨(28)는 지난해 뽑힌 2기생이다. 함께 소방대원이 된 두 명의 동료들처럼 최씨 또한 자신이 하는 일에 보람과 자긍심을 갖고 있다.


봉사하는 일을 하고 싶었어요

그녀가 소방대원이 되고자 했던 가장 큰 이유는 소방대원이 봉사할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뭔가 특별한 일을 하고 싶었어요. 처음엔 경찰이 되어볼까도 했는데, 경찰보다는 제 적성에 소방관이 더 맞을 것 같았어요.”

자신의 성격을 ‘너무나 활동적’이라고 표현하는 그녀는 자신의 끼를 좋은 일에 쓰고 싶었다. 학교를 졸업하고 맨 처음 그녀가 택한 직업은 영양사였다. 식품영양학을 전공했으니 어찌보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영양사를 하는 3년 동안 계속 다른 일을 머리속에 그리고 있었어요. 영양사 일이 싫어서라기 보다는 좀 더 활동적인 일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그러다 우연히 소방대원 모집 공고를 보게 됐다. 마치 정체를 알 수 없는, 어찌할 수 없는 힘에 끌리다시피 영양사를 그만 뒀고, 그리고 곧바로 도서관 의자에 앉았다. 뒤늦게 두터운 수험서를 펼쳐놓고 소방 공무원 시험 준비를 시작했다.

“늘 감사하면서 지내요. 일과 보람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그래서 인지 그녀의 얼굴에서는 웃음과 자신감이 떠나지 않았다. 이런 그녀를 두고 주변에선 ‘남자같은 여전사’라고 표현한다.

관악소방서 박효표 소장(49) 은 “평상시에는 항상 웃는 얼굴이고, 출동을 나가선 몸을 사리지 않는 적극적인 성격 탓에 선후배간에 인기가 좋다”며 “우리 소방서에 없어서는 안될 대원”이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화재 현장은 실제 상황

. 막상 화재 현장에 나가게 되면 선배 소방관은 언제 그랬냐 싶게 달라진다. “솔직히 훈련받는 3개월 동안이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화재 진압 현장에서 저도 모르게 긴장을 늦추는 경우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이런 제 모습이 선배님들 눈엔 보이나 봐요. 조금만 어깨에 힘이 빠지면 지금은 실제 상황이라고 그 자리에서 야단을 치시죠.”

이는 그녀가 일선에 배치된 지 만 1년이 조금 못 된 신출내기라 선배 소방관들이 앞에서 뒤에서 넣어주는 기합 같은 것이다. 처음엔 사람들 앞이라 무안함을 느끼던 그녀도 이젠 그 횟수도 줄어들고 한편으론 동료애임을 알기에 고맙게 여긴다고 한다. 선배들이 늘 하는 말이 있다. “불은 여자라고 절대 봐주지 않는다”


강한 여자가 아름답다

한번 출동을 나갔다 돌아오면, 얼굴은 온통 검게 그을려 있다. 다른 남자 소방대원들이 샤워로 긴장을 푸는 동안, 그녀는 혼자서 이 허전함을 감당해야 한다. 그 나마 위안이 되는 건 시민들의 격려라고 한다.

“화재 진압복을 입으면 남자인지 여자인지 구분을 할 수가 없어요. 예전엔 모자를 벗고도 여자 소방관인지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도 많았어요. 요즘에는 시민들도 ‘어 여자 소방관이네!’하며 박수를 쳐주고는 하죠.”

하지만 이런 격려를 뒤로하고 숙소로 들어오면 공연스레 서글퍼 질 때도 있단다. “혼자서 가만히 거울을 보고 있으면 조금 서글퍼 질 때가 있어요. 얼굴이나 몸이 온통 검게 그을리고 땀으로 범벅이 됐는데, 이 순간 피곤함을 같이 나눌 동료가 없다는 게 허전하더라구요.”

처음 출동을 나갔던 날에는 화재 현장의 처참함에 눈물이 핑 돌았다는 그녀는 소방관이 되기 위한 첫째 자질로 강한 정신력을 들었다.“여자 소방관이 되기 위해 특별히 갖춰야 할 건 없어요. 우선 기본적으로 건강하고 체력적으로 강해야 겠죠.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 여리면 절대 안될 것 같아요. 사람의 목숨과 관련된 일이잖아요.”


그렇다! 47

평상시 성격이 급하지 않던 그녀도 소방대원이 된 후에는 조금 급한 성격이 되어버린 듯 하다고 한다. “격일 24시간 근무를 하면서 밥을 제 때 먹는 날이 거의 없어요. 출동 나갔다 오면 반나절이 훌쩍 가버리고, 또 언제 출동을 나갈지 모르다 보니 시간에 쫓겨지내구요.”

이렇게 시간에 쫓기는 습관이 생긴 이유는 도로에서 시민들의 불협조 탓도 적지 않다. “사이렌이 울려도 못 들은 척 무시하고 비켜주지 않는 차들이 있어요. 우린일분 일초가 아쉬워 조바심이 나는데…. 그 때는 정말 속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는 것 같아요.”

이런 긴장과 빠듯한 업무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현재의 일에 만족과 보람을 느낀다고 한다. 앞으로 소방관으로서 평생을 다하고 싶냐는 질문에 그녀는 “47”이라고 대답했다. 47은 무선 호출 약어로 “그렇다”이다. 안전지킴이로서 단호한 그녀의 한마디에 든든함을 느낄 수가 있었다.

황경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1 17:01


황경란 자유기고가 seasky72@kore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