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갈한 멋과 맛… 품위의 상차림

[맛이 있는 집] 장충동 '토방' 한정식
정갈한 멋과 맛… 품위의 상차림

딱딱하고 차가운 느낌의 콘크리트 건물에 둘러 쌓여 살다 보면 가끔씩 흙냄새가 풀풀 풍기는 시골의 토방이 그리워질 때가 있다. 시골집 토방에서는 귀여운 손자를 꼭 보듬어 안아주는 할머니의 품 같은 포근함과 정겨움이 묻어 나온다. 장충체육관 뒤편에 가면 이런 시골집의 정서를 느낄 수 있는 곳이 있다.

전라도 한정식을 내는 ‘토방’이 그 곳으로, 전통적이면서도 세련된 분위기를 띠고 있어 외국인 손님 접대에도 제격인 곳이다.

사실 이 집은 건물의 외관으로만 따지면 포근하고 정겨운 느낌과는 다소 동떨어진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대문과 담은 한옥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정작 그 안의 건물이 새하얀 칠을 한 현대식 건물이기 때문이다. 언뜻 보면 한복을 걸친 외국인처럼 어색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대문 안으로 한 발짝 들어선 순간 시선을 가득 메우는 옹기항아리들이 이런 이질감을 걷어내고 고향집을 찾은 듯한 친근감을 안겨준다.

3층으로 이뤄진 건물의 내부는 한옥의 구조를 각 층 별로 달리 옮겨 놓아 층마다 다른 느낌이 드는 점이 돋보인다. 1층은 휴식도 취하고 손님도 맞는 시골집 툇마루처럼 목재바닥과 황토벽으로, 2층과 3층은 각각 안방과 사랑방인 듯 따뜻한 온돌이 깔린 방으로 꾸며져 있다. 3개 층 모두 장식을 최대한 배제해 단아한 분위기가 도는데 2층과 3층은 창 밖으로 꽃밭이 펼쳐져 있어 식욕을 한층 돋구어 준다.

한정식집답게 상위에 오르는 음식들에는 우리네 정취와 손맛이 한껏 느껴진다. 원래 한정식이라고 하면 상다리가 휠 만큼 갖은 음식이 상위에 가득 올라 있는 모습을 떠올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음식 솜씨 좋기로 소문난 고장인 전라도 한정식이라면 더욱이 그렇다.

허나 이 집의 상차림은 다소 색다르다. 전라도 한정식이기는 하지만 상다리가 휘어질 만큼 음식이 오르지 않는다. 그렇다고 다른 집과 비교해 음식의 가짓수가 적은 것은 결코 아니다. 단지 한 번에 내지 않고 차례차례 코스로 내는 것이 다를 뿐이다.

전채를 먹고 나면 죽을 시작으로 보통 15가지 이상의 요리가 차례로 상에 오르는데 맛깔스런 음식들의 행렬이 미식의 즐거움을 안겨준다. 이 중 홍어회와 돼지고기, 신김치가 함께 나오는 삼합은 이 집의 대표 요리로 꼽힌다. 삭힌 홍어회의 경우 코를 아릿하게 만드는 톡 쏘는 맛 때문에 꺼리는 이들이 꽤 있는 편이다.

그렇지만 이 집 홍어회는 적당히 삭혀 아릿한 맛을 줄인 덕에 그다지 자극적이지 않아 외국손님들도 좋아한다고 한다.

이 집 요리의 가장 큰 특징은 인공 조미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 된장, 간장, 고추장 등 모든 장을 직접 담가 쓰는 것은 물론 식초까지도 직접 담근다. 탱자식초, 감식초, 잣식초 등 직접 담그는 식초의 가짓수도 적지 않다. 단 맛은 설탕 대신 발효시킨 딸기를 갈아서 쓰는데, 설탕과 달리 뒷맛이 깔끔하고 음식에 깊은 맛을 더한다.

한편 발효시킨 딸기는 우유, 감식초, 잣술 등을 넣고 드레싱을 만들기도 하는데 이를 맛보는 것만으로도 이 집을 찾은 보람을 느끼게 할 만큼 맛이 뛰어나다. 드레싱으로 살짝 뿌려져 나오기 때문에 양껏 맛볼 수 없는 것이 아쉬울 정도.

◐ 메뉴 -1인분 기준, 우리정식 28,000원, 토속정식 38,000원, 부안정식 55,000원, 토방정식 77,000원, 들꽃정식 20,000원(점심).

◐ 찾아가는 길 -지하철 3호선 동대입구역 5번 출구에서 나와 장충체육관을 오른쪽에 끼고 돌면 신라호텔 면세점 방향으로 가는 길이 나온다. 이 길을 따라 30m를 올라가면 우측에 토방이 나온다. 02-2233-3113

◐ 영업시간 -오전 11시 30분~오후 10시, 명절을 제외하고는 연중무휴.

손형준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1 17:43


손형준 자유기고가 boltagoo@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