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남자가 두 세계를 넘다들며 벌이는 삶

[시네마 타운] 역전에 산다
한 남자가 두 세계를 넘다들며 벌이는 삶

■ 감독: 박용운
■ 주연: 김승우, 하지원, 강성진, 이문식,
 고호경 
■ 장르: 코미디 
■ 제작년도: 2003
■ 개봉일: 2003년 06월 13일
■ 국가: 한국
■ 공식홈페이지: www.assalife.co.kr 

얼마 전 전국을 뜨겁게 달아오르게 한 사건이 있었다. ‘인생역전’의 대박을 꿈꾸게 했던 로또 복권 신드롬이다. 은행을 털어 대박, 도박에서 이겨 대박, 길가다 돈 주워 대박, 복권이 당첨돼 대박, 우연한 발견과 발명이 가져다 주는 대박 등 우리가 꿈꾸는 대박의 종류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인간의 얼굴 만큼이나 다양하다.

우리는 속칭 이 ‘대박’이란 것을 통해 인생이 새롭게 전환되길 꿈꾼다. 인생의 전환, 바꾸어 말하면 ‘인생역전’이라 하는 이 꿈은 추리소설에서 흔히 등장하는 반전기법과도 같은 것이다.

누군가 ‘인간의 삶에는 이유가 없다’는 말을 남겼지만 우리가 적어도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는 이상 그 삶의 목적은 ‘반전’ 그 자체가 아닐까? 이 같이 인생의 반전을 꿈꾸는 것은 시대를 초월하고 성별과 연령, 그리고 국가를 넘어선 인류의 공통된 소망이라 할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영화가 인생역전의 스토리를 다루는 것 역시 이런 공통된 희망에 대한 열망에서 비롯되는 게 아닐까. 그래서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삶의 형태를 담은 영화 중에서 우리의 흥미를 끄는 것은 단연 인생역전을 테마로 삼은 것이다.


인생역전의 묘미 가득

소개할 영화는 바로 인생역전의 묘미를 듬뿍 살린 <역전에 산다>이다. 제목부터 솔직한 이 영화는 인생의 반전을 그린 영화들 대부분이 그렇듯이 코믹한 연출로 그려졌다. 이 영화를 제작한 박용운 감독은 이 영화가 데뷔작이며, 그 동안 리허설 조감독. 본 투킬 각본, 택시이야기 각본, 댄스 댄스 각본을 맡은 경력을 갖고 있다.

<역전에 산다>는 한 남자가 두 세계를 넘나들며 벌이는 코믹하고 환타스틱한 인생역전기를 담고 있다. 이 영화는 뒤바뀐 삶 속에서 주인공이 벌이는 황당하고 기발한 코믹 에피소드와 함께 자신이 포기했던 꿈을 이뤄가는 과정에서 진정한 인생 역전을 맛보는 주인공(승완)의 모습을 통해 웃음과 따뜻한 감동을 전해준다.

어릴 적에는 촉망 받는 골프 신동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은 불량인생을 살고 있는 증권사 영업사원 강승완(김승우 분). 눈치 없고 순진한 탓에 직장에서 왕따로 통하는 그는 조폭 마강성(이문식 분)의 투자금을 부도난 회사에 ‘몰빵’한 죄로 쫓기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 돈을 잃은 마강성에게 쫓기다가 결국 붙잡혀 죽지 않을 만큼 맞았다.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터널 속을 질주하던 그는 자신과 똑같이 생긴 한 남자와 맞부딪힌다. 서로를 쳐다보며 각자 놀라는 두 남자. 너무 놀란 승완은 그만 터널 벽과 충돌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린 승완은 사지도 멀쩡한 게, 그냥 꿈이었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길거리의 사람들이 승완에게 달려든다.

승완은 그제서야 전광판을 가득 매운 자신의 광고 사진을 보고 놀란다. 여기는 바로 승완이 포기했던 골프 스타의 꿈이 이루어진 또 다른 세계. 사태 파악을 제대로 못한 채 경찰서에서 횡설수설하고 있는 그 때 승완 앞에 나타난 한 여인. 섹시하고도 거세게 승완에게 다가와 안기는가 싶었는데 다짜고짜 뺨을 때린다.

그녀는 바로 바뀐 세계의 바뀐 아내였다. 스타인 것까지는 좋은데, 이 세계의 강승완은 바로 천하의 둘도 없는 바람둥이로 설정돼 있었다.

그 상황은 대충 이러하다. 여배우와 바람난 남편 승완에게 그의 아내 한지영(하지원)은 점점 애정이 식어가고 그로 인해 둘은 헤어질 위기에 처했다. 경찰서에서 뺨까지 맞았건만 첫눈에 반한 승완은 상황이 이끄는 데로 몸을 맡긴다.

승완을 자신의 남편인 줄 알고 평상시처럼 차갑게 대하는 지영과는 달리 말끝마다 존대말과 불쌍한 표정을 짓는 승완. 남편이 바뀐 줄 모르고 침대에서 거칠 것 없는 잠버릇으로 승완을 자극(?)하는 그녀 앞에서 그는 뛰는 가슴을 주체할 길이 없다.

갑자기 착해져 버린 남편에게 지영의 마음이 흔들리고, 승완 역시 어여쁜 마누라에 으리으리한 대저택으로 뒤바뀐 새 세계에 적응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한다. 하지만 위기상황은 언제 어디서나 등장하는 법.

코 앞에 사활을 건 세계 챔피언 빌 잭슨과의 골프 대결이 떡 하니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골프채를 놓은 지 어~언 10년. 하지만 이제 막 자신에게 맘을 연 지영에게 자신의 진짜 정체를 들킨다면 모든 것은 끝이다. 죽도록 연습해서 꼭 우승을 해야 한다. 그의 역전 스토리가 보여주는 재미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조연들의 맛깔스런 연기가 재미 더해

예전에는 영화가 주인공의 열연으로 모든 라인을 이끌어가던 형식이었는데, 요즘에는 조연들의 맛깔 넘치고 기발한 활약으로 기반을 단단히 하면서 그 위에 구조를 세우는 새로운 형식을 취하고 있는 추세이다.

이 영화 역시 메인 재료보단 전체양념의 조화를 강조하는 형식으로 조연들의 활약이 볼만하다. 특히 임창정이 등장한다 하면 더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영화 ‘색즉시공’에서 호러 퀸의 이미지를 벗는데 성공한 하지원의 연기는 그 느낌이 예나 지금이나 그다지 코믹 하지는 않다. 그녀가 코믹 영화에 등장해도 어색하지 않는 것은 일단 섹시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 아닐까.

이 섹시한 느낌은 코믹영화가 가지는 내용에 활력을 주고 사실성을 배가시킨다. 그녀를 둘러싼 다른 인물들의 엉뚱한 언행들이 더욱 설득력 있게 비춰진다는 말이다. 이 영화에서도 그녀는 ‘색즉시공’과 마찬가지로 영화의 내용상 설득력을 갖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내용으로 볼 때 역전을 그린 대부분의 영화와 다를 것이 없는 전형적인 ‘그’ 영화다. 얼굴이나 외모가 똑같은 두 사람. 그러나 사는 세계는 다른 정도가 정반대라고 표현되는 극과 극의 처지.

이런 전형적인 ‘왕자와 거지’라는 구도를 그리고 있어 사실 새로운 감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똑같은 여행이라도 여행은 매번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가 아니겠는가.

윤지환 영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2 14:45


윤지환 영화평론가 tavaris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