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 군대 파괴만이 軍을 바로 세운다


■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 (표명렬 지음/동아시아 펴냄)

40, 50대는 물론이고, 30대만 되도 자주 이런 말을 한다. “요즘 군대, 참 좋아졌다.” TV나 신문을 통해 비춰지는 그 곳은 자신들이 청춘을 보냈던 그 곳과는 너무나 다르기 때문이다. 바깥 사회의 숙박시설 못지 않은 내무반 시설에, 인터넷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이 바뀌었다. 사회 모든 분야가 변하는 데 군이라고 해서 어찌 변하지 않을 수 있으랴.

그러나 과연 우리의 군은 변화하고 있는 것인가. 이 책의 지은이는 고개를 젓는다. 군인의 권리와 자율성이 보장되고 책임의식이 자랄 수 있는 역동적인 내무 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외형적인 변화는 껍데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지은이는 우리 군을 지배하는 절대 복종, 군기 만능, 인격 무시, 간부 특권주의 등 권위적 문화를 혁파하는 군대 파괴를 주창한다. 우리 군이 가진 문제의 본질은 기능과 효율성에 있는 게 아니라 정신과 문화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

지은이는 먼저 우리 군의 역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건군 사상과 군사 철학 없이는 군대를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군의 역사적인 정통성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가”라는 문제와 연결된다.

우리 헌법은 대한민국의 법통은 항일 민족독립전쟁의 주축이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당연히 한국군의 효시는 항일투쟁을 벌였던 상해 임시정부의 광복군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육사를 비롯한 군사교육기관에서는 한국군의 전신이 남조선국방경비대라고 가르친다.

식민지 시절 일본군 밑에서 독립군을 상대로 싸웠던 친일 세력이 주도한 남조선국방경비대가 군대를 접수했을 때 이미 한국군은 파행의 길을 걸을 수 밖에 없었다는 게 지은이의 주장이다.

지은이는 또 군과 관련된 역사적 사건에 대한 철저한 규명이야말로 군의 명예를 회복하는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한다. 5ㆍ18 광주민주화운동 뿐 아니라 제주 4ㆍ3 사건, 여순반란사건, 5ㆍ16 쿠데타 등 현대사에서 군대가 자행했던 불명예스러운 행위에 대해 군이 앞장서서 규명에 나서고, 또 반성해야만 미래지향적인 군대로 거듭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지은이는 1958년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해 월남전에도 참전한 엘리트 장교 출신이다. 그러나 육사교육과정과 전쟁의 경험을 통해 국군의 혼을 살리고 일본 군대식의 부정적 군대문화를 정화하는 게 긴급하다는 믿음에 따라 67년 월남에서 귀국하자마자 정훈 병과를 택했다.

이후 87년 육군본부 정훈감을 끝으로 전역할 때까지 우리 군의 의식과 문화를 개혁하는 데 온 정성을 쏟았다. 우리 군의 개혁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한 이 책은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아직도 그가 군인임을 말해 준다.

최성욱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5:15


최성욱 기자 feelchoi@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