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勞와 使는 공동운명체"창사 77주년, 투명경영이 만든 분규 무풍지대

[인터뷰] 차중근 유한양행 사장
"勞와 使는 공동운명체"
창사 77주년, 투명경영이 만든 분규 무풍지대


“기업은 공동운명체 입니다. 협력적인 노사(勞使) 문화가 정착되기 위해서는 양측이 현실적으로 대등한 입장을 견지하는 원칙아래 신뢰구축을 해야 합니다.”

노동계의 6월이 예사롭지 않다. 예년 같으면 노동계가 한창 쟁의조정 신청으로 몸살을 앓을 시기지만 올해는 산별교섭 요구로 단체협약이 늦어지면서 ‘하투’(夏鬪)를 예고하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그 심각성을 예견한 듯 6월3일 취임이후 처음으로 경기 군포의 산업현장을 방문했다.

노동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겠다는 취지였다. 그 현장은 지난해 노동부로부터 노사관련 우수기업으로 선정돼 신 노사문화 대상(국무총리 상)을 수상한 유한양행 군포공장이다.


노사가 기업경영 공동참여

올해로 창사 77주년 ‘희수’(喜壽)를 맞은 유한양행은 1926년 설립이래 단 한 차례도 노사분규를 경험한 적이 없다. 민주화의 물결을 타고 노동계 욕구가 분출하던 80년대 말에도 유한양행은 조용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차중근(57) 사장은 “노사가 공동운명체라는 인식을 가지고 대등한 관계를 유지한다면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소리도 들릴 것”이라며 “이 같은 인식이 기본바탕을 이루지 않고 노사가 서로 타도의 대상이거나 종속ㆍ우월 관계로 얽매여 있다면 신뢰구축은 물론 기업경영마저 투명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 회사 노동조합은 목소리 톤 자체가 다른 회사와는 다르다. 노조 간부들은 매 분기마다 이뤄지는 경영실적 보고와 사업계획 심의회에 참석해 회사의 경영 상황과 경영목표에 공감하고 회사경영에 직ㆍ간접참여한다. 단순히 경영진에 대항해 노동자들의 권익만을 보호하는 단체라는 시각은 오히려 달갑지 않다.

노조 간부들은 회사의 사정을 세밀히 파악하고 정보를 공유하며, 경영에 직접 참여하는 동반자인 셈이다. 이들은 회의석상에서 종업원들의 처우에 대해서만 언급하지 않는다. 충분한 발언기회를 통해 마케팅과 생산 등 회사 살림 자체에 대해 목소리를 높인다. 생산성 향상과 그들이 공들여 만든 제품의 판매가 노조의 주된 관심사다.

30여년간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유한양행에서는 노사관계 대신 ‘노노(勞勞) 관계’란 표현을 쓴다.

“임금협상 테이블에 나서면 ‘나도 월급쟁이 사장’이라는 점 때문에 노사협상이 아닌 ‘노노협상’이라고 말합니다. 임금을 많이 올릴수록 저(사장) 역시 좋으니 서로 많이 올려보자고 얘기하죠. 그 기본 잣대는 영업 실적이고 이에 따른 성과배분만이 주요 관심사가 됩니다. 그러니 우리(노사) 사이에 문제될 것이 뭐 있겠습니까.” 차 사장은 노조위원장과 서로 흉물 없는 관계라고 대뜸 말했다.

단체 협약이나 임금협상을 통해 합의서를 작성할 때 노조위원장이 사장에게 “도장을 갖다 드릴까요”라고 말할 만큼 노사 관계는 인간적인 끈끈한 신뢰가 근간을 이룬다. 1주일에 한 차례씩 노조위원장과 전화를 통해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는 차 사장은 “노사 관계는 전략적인 차원의 머리싸움이 아닌 가슴으로 대화하는 믿음과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가슴을 연 대화로 상호존중

믿음과 신뢰. 말하기는 쉽지만 상호 유기적인 조직체에서 그 문화를 정착시키기는 쉽지 않다. 유한양행은 과연 그런 문화를 어떻게 정착시켰을까? 차 사장은 “대화와 상호존중이 노사화합 문의 정착의 매개체”라고 지적했다.

노사간의 대화를 위해서는 확실한 내부 채널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유한양행은 노사 합동 연수회와 사원운영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올해 11년째를 맞는 노사합동 연수회는 경영자들과 노조 간부들이 참여하는 캠프로, 매년 1박2일간 회사 경영에 대한 프로그램을 상의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행사다.

사원운영 위원회는 비교적 하위 직급자들의 불만 사항을 듣는 일종의 신문고 역할을 한다. 3급에서 7급 직원들 중에서 임의로 선발된 사람들이 경영자에게 직접 기업 전반과 개인 신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자신의 견해를 피력하게 한다.

이때 참여 인원에 대한 보안은 철저히 이뤄진다. 건의내용으로 인해 불이익을 주려는 상사가 있을 경우 회사는 엄중한 경고장을 揷曠構?심하면 면직도 불사한다. 이 같은 원칙아래서 내부 채널은 노사간 신뢰성을 구축하는 발판이 됐다.

차 사장은 노사간 상호신뢰가 결실을 맺은 성공사례를 들려줬다. 1997년 말 외환위기 당시 노조를 중심으로 한 유한양행 사원들은 회사의 어려움을 나누기 위해 매년 600%씩 지급되던 상여금을 자발적으로 받지 않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노조는 위기에 처한 회사를 위해 자체적으로 ‘30분 일 더 하기 운동’을 벌였다. 15분 먼저 출근하고 15분 늦게 퇴근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이 운동은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 회사는 이에 보답하기 위해 IMF이후 매년 800%가 넘는 상여금을 직원들에게 지급하고 있다.

차 사장은 또 지난해 회사의 경쟁력 제고를 위해 직원 퇴직금 정산제도를 개정하는 작업을 주도했다. 막강한 다국적 제약업체들과의 경쟁에서 원가구조와 변동비, 기업가치 제고 등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서는 인건비로 분류되는 퇴직금 누진율을 1.5%에서 0.3%p 하향조정이 불가피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1년 여의 설득작업 끝에 종업원 투표를 통해 이 안은 통과했다.

차 사장은 “과연 어느 기업 조직원들이 이 같은 결정을 쉽게 내릴 수 있었겠느냐”며 “전 직원들이 이해할 만큼 공동의 경영목표 의식과 투명한 사업계획이 전제되지 않고, 또 노사가 신뢰감을 갖고 있지 않으면 이런 성과는 이루기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절차보다는 원칙이 우선되는 경영

차 사장은 임기가 만료되는 2005년 12월까지 연 매출목표를 5,000억원으로 설정했다. 올해 목표 3,600억원. 매년 1,000억원씩을 쌓아야 도달할 수 있는 목표치다. 사원들 사이에 ‘너무 높이 잡은 것은 아니냐’는 볼멘 목소리가 터져 나올 만 하다.

그러나 차 사장은 “신약개발을 비롯해 향후 3년간의 신제품 포트폴리오를 짜 놓은 만큼 전체 매출의 신제품 출시 비율을 높이고 해외사업의 빠른 성장세 등을 고려하면 결코 무리는 아닐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 비췄다.

그는 또 4월 초 대표이사 취임이래 조직과 사람, 제도를 바꾸는 ‘100일 작전’을 선창하고 성과급 차등 지급제를 도입하는 등 조직체계에 혁신적인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 차사장은 “절차보다는 원칙이 우선 설 때 신뢰할 수 있는 노사문화가 정착될 수 있고 기업 역시 사회적으로 존경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유한양행은

전문경영인 체제 확립과 내실경영, 사회에 대한 기업 책임 등으로 주주와 소비자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듬뿍 받아온 장수 기업. 71년 타계한 고 유일한 박사가 모든 주식을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에 기부, 사회에 환원함으로써 확고한 노사간 신뢰를 쌓았다.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나 한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는 우량기업이다. 탄탄한 재무구조와 실적으로 매년 주주들에게 10∼20% 고배당과 무상증자를 해오고 있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5:19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