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좌승희 한국경제연구원 원장


"평등주의가 경제 목을 죈다"


산업경쟁력 붕괴위기, 성장 발목잡는 포퓰리즘적 정책에 문제

경제가 저 성장의 늪에 빠지면 빠질수록 ‘포퓰리즘(대중주의 또는 인기영합주의)’적 정책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춤을 춘다. 참여정부 출범이후 경제ㆍ사회ㆍ노동정책의 방향과 이념적 좌표는 혹시 포퓰리즘적 성향이 짙은 ‘평등주의 함정’에 빠져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성장보다는 분배에, 즉 ‘적더라도 나눠먹자’는 정책이 난무하면서 경제는 활력을 잃고 잘 나가는 기업들의 발목을 잡는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재계에서 일고 있다.

재계 싱크탱크로 꼽히는 한국경제연구원의 좌승희(56)원장은 6월 19일 현 시점을 ‘경제위기’라고 규정했다. 좌 원장은 “기업 및 산업 경쟁력이 붕괴단계에 접어드는 징후가 나타나는 등 우리 경제가 외환위기 이후 최악의 상황에 직면해 실질적 구조조정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사실 산업생산 증가율과 설비투자 급감 등 성장 잠재력이 급락하는 통계적 위기는 어제 오늘의 뉴스는 아니다. 그가 지적하는 위기는 경제수치 보다 시장경제의 펀더멘털(기초)이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 진단에서 출발한다.

기업들이 왜 주눅이 들어 설비 투자에 나서지 않아 기업ㆍ산업의 성장 잠재력이 떨어지고 경쟁력은 ‘붕괴 단계’에 직면하고 있는가 하는 근원적 위기 의식이다. 그가 지적하는 우리 경제의 ‘붕괴와 위기’의 실체에 대해 들어봤다.


시장경제 펀더멘털이 흔들린다


-현 경제상황을 ‘위기’로 까지 규정해야 하나.

“올 하반기 경기전망은 2ㆍ4분기 보다는 다소 나아질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내년에도 반짝 상승세를 타고 4~5%대 경제성장률을 유지할 수 있지만 문제는 바탕이 썩어가고 있다는 위기 의식이다. 개구리를 갑자기 뜨거운 물 속에 집어 넣으면 펄쩍 뛰어오르지만 미지근한 물속에서 온도를 서서히 가열하면 그 위기를 체감하지 못한 채 죽고 만다. 우리 경제도 마찬가지다.

경기는 하락과 상승을 반복하지만 기업ㆍ산업의 경쟁력과 생산성은 하루 아침에 바뀌지 않는다. 기업의 잠재력과 생산성, 기업가 정신이 바닥으로 떨어져 비관적이다. 우리 경제는 지금 위기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그렇다면 참여정부의 경제개혁 정책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는 뜻인데,어떻게 평가하나.

“지난 15년간 정권이 바뀔 때 마다 개혁이란 기치아래 추진돼온 이른바 경제개혁 조치들이 도대체 어떻게 진행돼 왔기에 과거 성장 동력은 약화되고 오히려 개혁의 목적에 반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는지 근본적인 문제부터 짚어가야 한다. 경제개혁이란 사람과 자본을 많이 쓰지 않아도 주어진 자원을 보다 효율적으로 활용함으로써 질적 성장을 높이는 것이다.

또 이는 자본과 노동의 생산성과 구분해 총요소생산성(TFP)이라는 개념으로 측정된다. 1964~70년 6.64%였던 TFP는 1981~87년 5.18%로 줄었고 경제개혁이 본격화된 1988~2000년 증가율은 오히려 3.42%로 반감됐다. 80년대 후반이후 상장기업의 수익성도 일관되게 하락 추세를 걷고 있다. 도대체 그간 무슨 개혁을 어떻게 해왔기에 성장동력이 약화되고 있는지 그 원인을 곰곰이 따져봐야 한다.”


- 기업ㆍ산업의 성장동력이 약화되는 가장 큰 문제점은 무엇인가.

“원인을 찾으려면 오히려 과거로 돌아가 관치경제에도 불구하고 60~70년대에 이룬 연평균 8% 이상의 고속성장 동인을 찾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8년 집권 중 15년간 지속된 수출진흥 확대회의 실시와 70년대 새마을 운동을 통해 제조업과 농업 부문에 있어 끝없는 차별화 정책을 펼쳐 잘하는 기업과 농촌을 가려내고, 모든 지원을 잘하는 기업과 농촌에만 집중하는 철저한 관치 차별화 정책을 펼쳤다. 이 과정이 우리나라의 모든 기업과 농촌 마을을 너도나도 앞서가려는 동태적 경쟁에 몰입 시켰다. 박정희 패러다임에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은 차별화가 역동성을 가져왔다는 점이다.”


경제의 역동성이 사라진다


-하지만 성장 일변도의 관치 차별화 정책이 가져온 폐해도 많지 않았나.

“그렇다. 1987년 헌법 193조2항에 ‘경제 민주화’라는 개념이 첨가됐다. 그러나 ‘경제 민주화의 기치’아래 시행돼온 각종 개혁 조치들은 관치 차별화의 산물인 재벌의 경제집중 현상에 대한 우려 등으로 관치 평등화 정책으로 변질됐다. 80년대 후반이후 한국경제는 물론 사회 여러 부문이 ‘평등주의 함정’에 빠진 것이 아닌가 판단된다.

대기업에 대립되는 중소기업정책, 성공만 하면 무조건 자동적으로 역차별 당하게 되는 30대 그룹에 대한 특별규제, 소위 개념도 불분명한 ‘경영 민주화’와 노사현장의 불법행위 확산, 교육현장에서의 평등지향 정책의 고착화, 시장에 의한 차별화 없이 이뤄지는 벤처기업 지정 및 지원 정책, 획일적인 200% 부채비율 규제, 잘하는 기업부터 먼저 매 맞게 하는 획일적 글로벌 스탠더드의 강요 등은 모두가 차별화를 부정하는 전형ㆍ획일적인 평등주의 사고의 산물이다.

관치 평등화 정책 속에서는 경제주체가 잘 하고자 하는 유인이 생길 수 없고 경쟁이 꽃 필 수도 없으며, 경제의 질적 성장을 기대하는 역동성이 살아날 수 없다. 질적 성장의 정체는 버려야 할 관치는 못 버리고 버려서는 안될 차별화는 버리는 잘못된 개혁의 결과를 초래했다.”


-위기를 초래한‘평등주의 함정’이란 무엇인가.

“독일과 일본 등 집단주의적 경제정책을 펼쳐온 국가들을 보면 포퓰리즘적, 평등주의적 경향이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왔는지 역사적인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독일도 반성하고 있는 ‘사회적 시장주의’를 지금 하자는 것은 시대착오적 발상이다. 관치 차별화도, 평등화도 아닌 시장에 의한 차별화가 필요하다. 시장제도의 개혁을 통해 소비자, 주주, 채권자 등 시장 참여자들이 정부 대신 시장이 잘하는 기업을 차별화하게 해야 한다.

모든 기업과 금융기관을 다 떠안고 가려 하지 말고, 시장에서 판별된 잘 하는 기업과 금융기관하고만 같이 가겠다는 분명한 철학을 가져야 한다. 기업, 금융, 노동, 교육현장 등 사회 곳곳에 만연된 ‘평등주의 함정’에서 탈피해 열심히 잘하는 사람이 더 대접 받는 사회를 만들어야 1인당 GDP 2만 달러 고지를 넘을 수 있다. 정부의 진정한 역할은 잘하는 사람의 발목을 잡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사회 안전망을 충실히 확충하는데 있다.”


법치경제 필요한 시점


-최근 격화하고 있는 노사 갈등은 어떻게 풀어야 하나.

“노사 문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와 타협이다. 그러나 무엇이 바탕이 돼야 하나. 법과 규칙이다. 법치 경제가 필요한 시점이다. 정부가 법을 자의적으로 해석하거나 법 위에 행정력이 있다면 곤란하다. 질서가 무너지면 목소리 큰 사람이 이기는 법이다.”

장학만 기자


입력시간 : 2003-10-02 15:54


장학만 기자 local@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