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계 의상디자이너 1호, 드라마 완성도에 절대적 역할

[직업의 세계-4] 방송 의상디자이너 봉현숙
방송계 의상디자이너 1호, 드라마 완성도에 절대적 역할

"1㎝의 아름다움이 날 20년동안 주저앉혔죠"

“굉장할 줄 알았어요.”

방송 의상 디자이너 봉현숙(47ㆍMBC미술센터)씨의 신기루는 입사 후 몇 달 만에 무너졌다. 치열한 경쟁 끝에 발탁된 디자이너의 이름도 민망하게, 그가 맨 처음 안아든 숙제는 6.25 특집극에 쓸 너절한 거지옷 만들기.

작업은 옷 제작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라 민망한 후속 손질로까지 계속 이어졌다. 진짜 넝마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방금 만든 옷에 망치질로 구멍을 내기도 하고, 닳은 느낌을 내려고 줄톱으로 마구 문질러대기도 했다. 찌든 때를 만드는 법도 실전파 선배들의 노하우가 아니었으면 더 고전을 면치못했을 것이다.

클린싱 크림과 흙을 손바닥에 비벼 묻혀 옷 여기저기에 바르고서야 한결 거지옷 다와졌다. 그다지 완벽한 작품은 아니었지만, 봉씨 나름대로는 많은 갈등과 어려움속에서 얻은 작품. 그 사이, 옷보다 그의 마음에 더 휑한 구멍이 나 있었다.


입사 1년내내 후회

“아, 이게 이런 일이었구나, 입사 전에 생각했던 멋진 모습은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는구나 그때 깨닫게 되었죠. 그때부터 1년 동안 몹시 방황을 했어요. 더 늦기 전에 그만둬야하나 말아야하나 하구요.”

시간이 지나면서 봉씨는 그대로 남기로 결국 마음을 돌렸다. 내내 흔들리던 마음을 붙잡은 건 다름아닌 TV의 화면이었다. 밤까지 새며 심란하게 만든 의상들이 마침내 출연자에게 입혀져 방송에 비치는 것을 볼 때면, 남들이 알아보든 아니든 혼자 가슴이 뛰곤 했다. 그 순간의 희열이 봉씨의 20년을 이끌어왔다. “그 하나로 모든 게 해소되는 거지요. 순전히 자기 만족으로요. 그런 것 때문에 힘들다고 투덜투덜대면서도 지금까지 오게 된거구요.(웃음)”

봉씨는 국내 방송계에서는 최초로 기용된 의상 디자이너 1호다. 1984년에 MBC 공채로 입사해 줄곧 한 우물을 파왔다. 입사 초기에 맡았던 대하사극 ‘조선왕조 5백년’부터 시작해 올 9월 방영을 앞두고 있는 ‘대장금’에 이르기까지 자사 프로그램 대부분에 직ㆍ간접적으로 그의 땀이 배어있다.

방송계에서 주는 의상상이 아예 없는 현실에서, 1999년에는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의 의상으로, 2000년에는 영화 ‘이재수의 난’으로 두 차례 대종상 의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예나 지금이나 방송 의상팀의 일상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방송의 장르를 막론하고 프로그램에 필요한 출연자들의 의상을 전문적으로 관리, 제작하는 이들은 특히 드라마에 있어서 절대적인 역할을 감당한다.


대본 나오는 순간 고달픈 일상 시작

시놉시스 또는 대본이 나오는 순간부터 의상팀의 고달픈 릴레이는 시작된다. 프로그램의 성격에 맞도록 의상 컨셉을 설정하고 나면 맨 먼저 의상창고로 내달린다. MBC의 경우 자체 보유한 기존 의상만 대략 10만점. 옷창고를 샅샅이 뒤져 적절한 옷을 골라낸 뒤, 그곳에서 해결할 수 없는 옷들은 다시 시장이나 백화점을 뒤져 사거나 직접 디자인해 만들어내게 된다.

재단과 봉제를 외부에서 해결해야 되는 직접 제작은 훨씬 더 일이 피곤해진다. 특히 1910년부터 1980년대까지를 배경으로 하는 ‘시대물’의 경우는 간단한 남자 양복 하나도 한번에 끝나는 것이 없다. 구식 스타일로 디자인해 그림을 보여줘도 가봉하러 가보면 최신 스타일 양복이 만들어져 있기 일쑤다.

오죽하면 봉씨는 이따금 이런 잠꼬대도 한다. ‘어떻게 재단해야 이 라인이 나올 수 있는걸까?’ 큰 소리로 혼잣말을 중얼대다가 깨보면 꿈이다. 운 좋을땐, 내내 고민중이던 숙제의 답을 우연찮게 꿈속에서 얻을 때도 있다.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내 마음의 풍금’에서 선보였던 진짜같은 가짜 무명옷도 봉씨의 고민과 궁리가 만들어낸 히트작이었다. 제작 당시 출연자 전원에게 무명옷을 입혀야했지만, 예산의 벽에 부딪쳤다. 궁여지책으로 그가 찾아낸 것이 값싼 마직 원단이었다. 그것을 사서 몇번이고 세탁을 거듭하며 올이 촘촘해지게 한 뒤 무명같은 효과를 시도해 본 것이 멋지게 맞아떨어졌다. 이럴 땐 콜럼버스가 따로 없다.

그나마 준비기간이라도 충분하게 주어지는 영화 작업은 호사다. 방송에서는 아무리 길어야 10일 정도다. 최악의 경우는 단 몇 시간 만에 수십 벌의 출연 의상을 해결해야하는 숨가쁜 전쟁도 면치 못한다. 시대물이나 조금 등장인물이 많다 싶은 프로그램은 투입되는 의상만 1주일에 약 500벌. 최소한 하루에 6,70벌을 소화해야 한다는 소리다.

옷을 촬영현장까지 챙겨 나르는 일만해도 만만치 않다. 사전제작중인 사극 ‘다모’의 경우 한번 촬영에 의상을 실은 차만 3대가 출동한다.

5개의 황당무계한 이야기로 이뤄진 재연 프로그램 ‘서프라이즈’는 특히 이들 의상팀에게 악명높은 난코스다. 의상 자체부터가 시대와 국경을 정신없이 넘나든다. 촬영은 목요일 아침 7시부터 시작돼 사흘동안 이어지는데, 대본이 나오는 건 아무리 빨라야 촬영 전날 오후 1,2시 정도다.

대본을 받는 순간부터 의상팀은 거의 밤을 새다시피 수십벌의 옷을 준비해야 한다. 목요일 새벽에 시작된 촬영은 금요일 새벽에나 1차로 끝난다. 그때까지 거의 24시간동안 의상팀도 현장에 붙박혀 있게 된다. 촬영 몇 시간 전에 미리 나가 출연자들에게 일일이 의상을 갈아입히는 일에서부터 녹화 도중 일어나는 모든 돌발상황에 대처하는 것, 촬영 후 의상들을 회수하는 일까지 모두 담당자의 몫이다.

파김치가 되어 돌아온 뒤에도 그날 입혔던 의상들을 세탁을 맡기거나 정리한 뒤 두어시간 자는 둥 마는 둥 눈을 붙였다가 몇 시간 뒤 다시 다음 촬영 대본을 받아들고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렇게 해서 1주일에 사나흘 밤샘은 기본, 매주마다 의상팀에 닥치는 현실이다.


제작기간 3달중 2달 밤샘하기도

“그래도 미니시리즈에 비하면 나은 편이예요. 미니시리즈를 찍을 때는 제작기간 서너 달 중 두 달 정도는 꼬박 날밤을 샌다고 보면 되지요. 대본이 밀릴 땐 1주일 내리 밤을 새기도 합니다. 워낙 힘들기 때문에 가능하면 돌아가며 천천히 나눠 맡기려고 해도, 그래봐야 1인당 1년에 두 편은 최소한 돌아오지요.”

이 상황쯤 되면 ‘뷰티 메이커’의 우아한 자태는 애초에 달아나고 없다. 입사 후 몇 달만 지나도 남몰래 코피를 쏟고 다니거나 과로로 입술이 부르튼 채 뛰어다니는 코디들이 태반이다. 화장조차 포기한 여성들도 많다. 밤샘 사흘만 해보고 나면 세수할 시간에 차라리 잠을 더 자는게 낫다는 철학이 저절로 싹 튼다. 게다가 박수받는 일은 적어도 타박받는 일은 왜 그리 많은가.

“옛날에 어떤 사극을 맡았을 때인데, 나름대로 무척 공을 들였었어요. 메인 연기자급에만 본견으로 된 의상을 입히던 것을 어렵게 예산을 더 따내 부연기자급까지 본견 의상을 입히기도 했고, 원색으로만 돼 있던 전통한복의 색상도 조금씩 톤 다운(tone down)시켜서, 화면이 전체적으로 정리되는 효과도 얻었지요.

보시는 분들 반응도 좋았구요. 그런데 이 드라마가 나중에 재미가 없어지면서 시청률이 바닥을 기게 되자 그 불똥이 제게 튀더니 갑자기 의상 색깔이 칙칙하다며 다시 옛날의 확 튀는 색깔로 되돌려놓으라는 거였어요. 그전에 시청률 이 높을 때는 아무 말이 없다가 시청률이 떨어지자 의상에 문제가 있다는 식이었지요. 그럴 때 참 허탈하고 씁쓸한거죠.”

고충은 출연자들과의 사이에서도 이어진다. 이들이 가장 중점적으로 관리하는 대상은 메인급 출연자들. 말할 것도 없이 다들 콧대가 높을대로 높은 톱클래스 연예인들이다.

그 중 한 오락프로그램에 출연한 아이돌 스타, 가수 A. 의상팀에서 애써 만들어간 트레이닝복을 입히자마자 발목의 고무줄 여밈이 거추장스럽다며 다짜고짜 그 자리에서 가위로 싹둑 바지를 잘라버렸다. 당돌함을 넘어 너무나 무례하고 몰상식한 행동이었다.

질겁을 한 봉씨가 담당 연출자에게 항의를 했지만 행여 질책을 했다가 다시 섭외가 안될까봐 PD는 PD대로 A에게 마음대로 야단 한번 크게 치지 못한 채 전전긍긍이었다.

습관적인 트집과 명품 타령으로 의상팀을 곤혹스럽게 하는 부류도 있다. 관록있는 중견연기자로 한 드라마에서 노인 역을 맡고 있는 B씨는 협찬사나 방송계의 현실은 아랑곳없이 여전히 전성기때와 같은 특급대우만 고집한다.

명품 의상이 아니면 성에 안 차는 것이다. 의상을 가져간 코디에게 ‘이것도 옷이라고 가져왔나, 너는 고작 이것밖에 안되냐’며 상처를 주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물론, 비슷한 관록과 지명도의 중견탤런트이면서도 오히려 다른 연기자들의 의상 투정에 대신 바람막이가 돼 주거나 드라마가 끝날 때면 ‘고생 많았다, 고마웠다’고 어깨를 두드려주는 따뜻한 이들도 없는 건 아니다. 다만 그런 이들은 극소수. 이런 어려움때문에라도 성鳧?원만하고 상대를 부드럽게 설득할 줄 아는 사람이 이 분야에 적합하다.


새롭고 멋진 의상으로 고민

MBC 미술센터의 경우, 2년제 전문대 졸업 이상의 학력을 가진 의상관련학과 출신들로 채용이 이뤄지고 있다. 디자이너와 코디네이터는 업무 성격상 다소 차이가 있지만, 요즘은 모집대상 대부분이 현장에 중점 투입되는 의상 코디네이터들이다. 정규직보다는 프리랜서 형식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고, 4년제 대학을 졸업한 공채출신 신입 코디의 경우 연봉은 대략 2000만원 수준이다.

최고참 봉씨에게는 지난 20년간 받은 월급보다도 더 값비싼 추억이 있다. 개인의 영광에 앞서 방송 의상 분야가 비로소 인정받고 있다는 감격을 심어주었던 대종상 의상상, 그리고 영화 ‘춘향전’의 의상을 맡아 영화계의 거장 임권택 감독으로 받았던 진심어린 찬사가 그것이다. 알아주는 사람이 단 하나라도 좋다.

또는 아무도 몰라줘도 좋다. 어차피 한참이나 먼 길, 방송 의상 디자이너 봉현숙씨의 시선은 오로지 TV 화면에 꽂혀있다.

“‘대장금’의 의상을 만들 때도 우리끼리 그런 얘기를 했어요. 어떻게하면 시청자들이 식상하지 않게 더 새롭고 멋진 의상을 보여줄까 다들 고민을 하면서, 이번엔 저고리 품을 1㎝ 줄여볼까, 길이를 1㎝ 늘여볼까 그러다가도 ‘야, 우리가 이렇게 해봐야 사람들이 알기나 하겠니? 그냥 이영애가 한복 입으니까 이쁘구나 하고 말겠지, 품이 1㎝ 좁아져서 더 예쁜지, 길이가 1㎝ 늘어서 더 예뻐보이는건지 어떤지, 그저 너나 나나 알지 누가 알겠니’하고는 웃었지요.”

글ㆍ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2 16:38


글ㆍ사진 정영주 자유기고가 pinplus@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