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 알력다툼 희생, 수사무마 청탁설 의혹 증폭

일파만파 양길승 '몰카'파문
개인 알력다툼 희생, 수사무마 청탁설 의혹 증폭

향응, 함정, 그리고 비디오 테이프

양길승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향응 파문이 확산일로에 있다.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 청와대 인사가 윤리규정을 어기고 향응과 숙박 등을 대접받고 ‘수사무마 의혹’에 연루됐다는 것이 파문의 요체다.

특히 양 실장의 향응 장면을 담은 ‘몰카’까지 공개돼 각종 의혹과 함께 정치적 공방도 가열되고 있다. 양길승 파문에 대한 정치권과 법조계, 청주 현지 사이에 존재하는 시각 차는 진실 규명에 따라 실체가 드러날 전망이다.

청주 현지와 청와대 민정수석실 조사팀에 따르면 양길승 향응파문은 6월28일 양 실장의 청주행이 빌미가 됐다. 양 실장의 청주 방문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를 지지했던 ‘경선동지회’를 격려해 달라는 오원배 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의 간곡한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관용차를 타고 서울을 떠난 양 실장은 오후 3시쯤 청주IC에서 오 부지부장을 만나 그와 동행한 골재업자 김정길(민주당 충북도지부 부지부장)의 승용차로 갈아타고 청주 시내로 들어갔다. 양 실장은 청주시 최대 규모의 K나이트 클럽 대표 이모씨가 소유한 R호텔에 잠시 머물다 오후 6시10분쯤 충북 청원군 오창면 C식당에 도착했다.


노대통령 친구로 동석

식당에는 경선동지회 회원과 민주당 관계자 등 20여명이 나와 있었고 양 실장은 이들과 함께 민물매운탕으로 저녁식사를 했다. 식사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오 부지부장이 경선과 대선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는데도 지금까지 이렇다 할 자리를 얻지 못하고 있다”며 오씨를 추켜세우고 은근히 자리 마련도 요청하는 분위기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40여만원에 이르는 식대는 오 부지부장의 만류로 양 실장 대신 다른 당직자가 계산했다.

양 실장과 오 부지부장, 김 부지부장 등은 오후 8시30분쯤 다시 R호텔로 돌아왔다. 호텔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며 잠깐 담소를 나눈 뒤 오후 9시쯤 부근 K나이트클럽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들을 맞이한 나이트클럽 사장 이씨는 일행을 3층 룸으로 안내하고 마담과 룸 웨이터(여)에게 술시중을 들게 했다. 룸에는 양 실장을 비롯해 오 부지부장, 김 지부장, 사장 이씨 등 4명이 있었다.

오 부지부장은 양 실장에게 이씨를 대선 때 노무현 후보를 크게 도운 인물로 소개했다. 양 실장은 이씨의 지원을 치하했고, 이에 고무된 이씨는 청주지역 소규모 건설업체사장이자 K나이트클럽 공동소유주인 한모씨와 K나이트클럽 인근에서 사우나 시설을 짓고 있는 조모씨를 잇따라 불렀다.

밤 11시쯤엔 오 부지부장이 청주에서 사업을 하는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동기 정화삼씨에게 연락해 합석해줄 것을 요청했다. 오씨는 대선 때 충북지역 팀장을 맡아 활동하면서 정씨를 알게 된 것으로 전해진다.

서울에서 친구들과 골프모임을 하고 있던 정씨는 “양 실장이 왔으니 와서 인사나 하라”는 오 부지부장의 요청에 서둘러 내려왔다. 정씨는 사장 이씨와도 90년대 초 충북대 경영대학원 최고경영자과정을 함께 다닌 인연으로 평소부터 알고 지낸 사이. 그로 인해 K나이트클럽 술자리에는 양 실장, 오 부지부장, 김 부지부장, 사장 이씨, 한씨, 조씨, 정씨 등 7명이 합석했다.

이들은 자정 넘게까지 술을 마신 뒤 나이트클럽을 나와 술자리를 함께 했던 여성들과 근처 포장마차에서 국수를 먹고 29일 오전 2시쯤 호텔 501호 스위트룸에 투숙했다. 정씨는 포장마차로 향하기 전 택시를 타고 빠져나갔다.


5억 뒷거래설 등 의혹 제기

양 실장의 스캔들은 표면상 청와대 직원의 도덕불감叢?따른 단순한 술자리로 비쳐진다. 그럼에도 최근 파문이 확산된 것은 나이트클럽 사장 이씨와 관련한 ‘수사무마 의혹’과 한나라당이 제기한 ‘5억 뒷거래설’, 몰카가 불러온 ‘음모설’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핫 이슈로 떠오른 ‘향응 대가’ 여부 즉, ‘수사(조세포탈과 윤락행위 방지법 위반 혐의)무마 의혹’과 관련해서는 상반된 견해가 대립하고 있다. 양 실장을 비롯해 술 자리에 참석한 이들과 민주당 관계자들은 한결같이 향응 대가를 부인한다. 양 실장과 나중에 술자리에 합석한 정씨는 “수사무마 얘기는 나오지 않았고,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관계자들은 “이씨가 그런(수사무마) 제의를 했는지 몰라도 양 실장은 그런 부탁을 받아들일 사람이 아니다”며 의혹을 반박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제보와 자체 조사를 근거로 수사무마 의혹과 5억 뒷거래설을 강력히 제기했다. 한 당직자는 “그날(6월28일) 술자리와 잠자리 비용이 400여만원 나온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당일 지불하지 않고 나중에 문제가 터지자 일행 중 한 사람이 대신 갚은 것은 ‘대가성’의 반증”이라고 주장했다. 즉 이씨가 당일 접대 비용을 받지 않은 것은 양 실장에게 수사 무마를 요청했고, 그것이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는 것.

몰카와 관련해서 정치권에서 ‘음모론’ 공방이 치열한 반면, 청주 현지와 민주당 관계자들 사이에선 K나이트클럽 사장 이씨의 ‘전력’과 오 부지부장의 ‘허세’가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이씨를 선친대부터 잘 알고 있다는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이씨 집안은 대대로 정육점을 해 돈을 번 뒤 부동산ㆍ건설ㆍ사채ㆍ오락실ㆍ유흥업소 등으로 부를 쌓았다”며 “그 과정에서 많은 ‘적’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양 실장의 청주 방문 이전부터 이씨가 양 실장을 청주 출신의 장학로 전 청와대 부속실장에 빗대 그와의 친분을 과시하고 다녔다”며 “결국 적들에게 공격거리를 노출시킨 결과를 자초했다”고 말했다.

그는 오 부지부장에 대해서도 “대선 때의 역할을 과대 평가하고 지역에서 권력 측근인 것처럼 행세해 이씨가 접근한 것으로 안다”며 “양 실장 방문 사실이 사전에 흘러나간 것도 그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했다.

일각에선 이씨가 오 부지부장을 통해 양 실장의 청주 방문 사실을 사전에 알고 치밀한 계획 아래 로비를 시도했고, 압박용으로 비디오 테이프를 제작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박종진 기자


입력시간 : 2003-10-05 15:54


박종진 기자 jipark@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