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이 있는 집] 담양 갑을원 곰탕


여행을 하다 보면 낯선 곳이면서도 전혀 낯설지 않은 느낌으로 다가오는 곳이 있다. 필자에게는 담양이 그랬다. 특히 담양의 유명한 메타세콰이어 가로수 길을 달릴 때는 기시감(데자뷰)마저 느꼈는데…. 분명히 처음인데 마치 예전에도 이렇게 생긴 길을 지나갔던 것 같은 생생한 기분.

첫 만남은 신기한 기시감으로 시작됐고, 이후 몇 번 더 담양을 여행하면서 이제는 고향처럼 친근한 고장이 되었다. 손맛 좋기로 유명한 남도에서 이 집 저 집을 돌아다니며 미각여행을 하는 것도 즐겁고, 담양의 명물인 대밭이나 메타세콰이어 가로수길, 요즘 같은 여름철에는 가막골 계곡의 시원한 물소리를 듣는 것도 담양을 찾는 즐거움이다.

8월초 다시 담양을 찾았다. 몇 번의 여행으로 인연이 닿은 한 중학교 미술선생님이 새로운 곳을 보여준다며 이곳 저곳으로 안내를 하셨다. 백일홍이 한창인 명옥헌원림은 호젓한 멋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서울이나 수도권의 여행지를 다닐 때 보면 웬만한 문화재의 경우 올라가지 말라는 팻말이 붙지 않은 곳이 거의 없다. 정자의 멋을 제대로 느끼려면 옛 선비들이 그러했듯이 마루에 앉아 한없이 경치에 취해보기도 하고, 방안에 누워보기도 해야 하거늘, 그저 눈으로만 보고 상상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백일홍이 붉게 드리운 명옥헌원림에서는 하염없이 꽃과 고목, 해질 무렵의 아련한 분위기에 취할 수 있어 좋았다. 명옥헌원림을 나오니 어느덧 사방이 어둑해 온다. 저녁식사 시간이 가까운 것이다. 담양에서는 웬만한 것은 맛보았다고 했더니 새로운 곳으로 안내하겠다며 앞장을 선다.

가로등이 켜지고 집들도 불을 밝힐 즈음 도착한 곳은 갑을원. 안채와 너른 마당, 사랑채, 뒤뜰까지 갖춘 제대로 된 한옥집이다. 안채와 사랑채를 식당으로 꾸미고 뒷뜰에 정자를 지어 상을 펴놓았다. 마당에는 잔디를 깔아 놓았는데 밥을 먼저 먹은 아이들이 나와 뛰어다니며 장난을 친다. 담장 곁에 옹기종기 들어선 장독들도 정겹다.

정자 마루에 앉으니 선풍기를 틀 필요도 없이 들녘에서 불어오는 바람으로 등줄기가 시원해진다. 갑을원 앞은 온통 논이 펼쳐져 있고, 뒤편으로는 마을이다. 이 집의 대표 메뉴인 곰국을 시켜 놓고 마당을 서성거려본다. 캄캄해져 오는 밤하늘에 초승달이 보기 좋게 걸렸다.

곰국은 진하면서도 느글거리는 맛없이 국물이 깔끔하다. 전라도에서 곰국하면 나주를 쳐주는데 나주의 웬만한 곰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맛이다. 조물조물 무쳐낸 나물이며 여러 가지 반찬도 입맛을 돋군다. 양념장 종지에 담겨 나온 것은 겉보기에 쌈장처럼 생겼는데 토하젓이라고 한다.

이곳 사람들은 배가 아플 때 토하젓에 밥을 쓱쓱 비벼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배앓이가 없어진다고들 하는데. 배앓이에 효과가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뜨거운 밥에 비벼 먹는 맛이 별미는 별미다. 이밖에 부드럽게 삶아 낸 쇠고기 수육이나 유황오리 소금구이도 인기 메뉴.


▲ 메뉴 : 곰국6,000원, 수육(中) 20,000원, 유황오리 소금구이(4인분) 30,000원. 영업시간은 오전 11시30분부터 저녁 9시30분까지. 061-382-3669


▲ 찾아가기 : 호남고속도로 창평IC로 나간다. 첫 번째 삼거리에서 옥과 방면으로 좌회전, 주유소 앞 삼거리에서 직진해서 가다보면 갑을원 간판이 보인다. 간판에서 좌회전해서 들어가면 바로 식당 입구에 이른다.

김숙현 자유기고가


입력시간 : 2003-10-05 20:20


김숙현 자유기고가 pararang@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