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극의 인물이 펼치는 심리 스릴러

[시네마 타운] 스위밍 풀
양극의 인물이 펼치는 심리 스릴러

개인 가정에 수영장이 있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한국에서 스위밍 풀을 언급하면 대다수의 사람들은 영화에서나 등장하는 부유함이나 화려함, 그리고 부가 제공하는 안락함을 떠올릴 것이다.

하지만 수영장이 부유함의 배경이 아니라 중요한 모티브로 등장했던 영화들에서 스위밍 풀은 꿈에 그리던 부와 안락함이 아니라 파멸, 살인, 위선 등의 상징으로 등장했었다.

빌리 와일더 감독의 <선셋대로>(1950)의 오프닝에서 수영장에 떠있던 이름없는 작가의 시체(윌리엄 홀든)와 <위대한 개츠비>(1974)의 마지막 장면에서 역시 수영장을 떠다니던 개츠비(로버트 레드포드)의 시체가 파멸을 의미했다면, <졸업>(19687)은 풀 근처에서 오고 가는 대사(“플라스틱 시대”)와 사운드 트랙(사이먼&가펑클의 “Hello, Darkness My Old Friend”) 등을 통해 경제적으로 안락한 시대의 심리적인 불안과 공황상태를 그리기 위해 수영장을 중요한 장소로 채택했다.

또한 작크 드레이의 <라 삐신느(불어로 수영장)>(1969)에서 여자 친구의 옛 애인이 익사하는걸 그냥 지켜 보던 작가 쟝-폴(알랭 드롱), 피터 그리너웨이의 <차례대로 익사 시키기>(1987)의 3대에 걸친 여성들의 남편 익사 살인 등은 모두 수영장이 사건의 중요한 모티브였다.


거침없는 줄리, 요조숙년 사라

물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여성성을 상징한다.

따라서 수영장은 여성성에 두려움에 느끼는 남성의 심리를 묘사하는데 적절한 장치로 쓰일 뿐만 아니라 모순적인 여성성(물처럼 순결하지만 동시에 목숨을 잠식할 수 있을 만큼 두려운)을 표현하기 위해서도 종종 사용된다. <스위밍 풀>에서 두 명의 주인공이 보여주는 이러한 모순적인 이중성은 수영장을 중심으로 묘한 긴장감과 불안감을 만들어낸다.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은 영국의 유명한 범죄 미스터리 작가이며 자신의 출판사(영국의 거대한 출판사 ‘랜덤 하우스’에서 촬영)의 편집장 존 보스로드와 내연의 관계다. 다음 작품의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아 고민하고 있는 사라에게 존은 프랑스 남부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 가기를 권유한다. 햇살이 따스하게 내리쬐는 조용한 별장은 사라에게 작업을 하기에 완벽한 장소처럼 보이지만 곧 존의 딸인 줄리(뤼드빈 사니에르)가 도착하면서 사라는 이래저래 방해를 받기 시작한다.

사라는 규칙적이고 정연한 삶에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려 하지만 20대 초반의 줄리는 밤마다 남자를 별장으로 끌어들이는 등 자유분방하고 무질서한 생활을 한다.

충동적이고 거침없이 행동하는 줄리와 깔끔하게 정리 정돈된 일과에 따라 움직이는 사라, 깡마른 몸에 무채색의 헐렁한 옷을 입은 중년의 사라와 관능적인 몸에 딱 달라 붙는 미니스커트나 원피스를 입은 줄리, 섹스를 밥 먹듯이 하는 줄리와 아침에 일어나 줄리가 하룻밤을 보낸 남자를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 옷깃을 여미는 사라, 요구르트를 비롯해 몇 가지의 정해진 품목만 사오는 사라와 냉장고가 가득차도록 다양한 음식을 채워놓는 줄리, 나무 잎과 가지들이 떨어져있는 지저분한 수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라와 아무때나 누구도 개의치 않고 훌훌 옷을 벗어던지고 수영을 하는 줄리.

줄리와의 예기치 못한 동거에 처음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던 사라는 줄리를 조금씩 훔쳐보면서 그녀에 대해 호기심을 갖기 시작한다. 그리고 사라가 줄리의 일기장을 훔쳐볼 때부터 영화는 사라의 시선이 중심이 되는 것이 아니라 사라와 줄리 모두를 관찰하는 시점으로 변화한다.


질투심에서 우정, 신뢰로의 흐름

줄리의 일기장과 자신이 몰래 보고 있는 줄리의 모습을 바탕으로 소설을 쓰기 시작한 사라는 자신이 작가로서 갖고 있었던 작품에 대한 통제를 잃어간다. 즉, 작가 자신만이 볼 수 있는 일종의 허구의 세계가 아니라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고 있는 실체에 대해 작가는 더 이상 전지전능한 입장이 아니다.

더구나 줄리는 사라가 쓰고 있는 자신의 이야기를 훔쳐 보게 되면서 사라를 교묘하게 조작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질투심이 감돌았던 둘의 서먹함은 시간이 지나면서 친구 혹은 엄마와 딸의 관계에서 형성될 수 있는 우정, 신뢰, 의존을 오가면서 미스터리는 풀리는 듯하다.

영화에 등장하는 주요인물은 5명뿐이고 대부분 사라와 줄리에게 포커스가 맞추어져 있다. 주 이야기가 별장에서 일어나기 때문에 사라가 줄리와 사라진 카페 종업원 프랭크를 찾으러 마을을 돌아다닐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장면이 별장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스릴러가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까지 영화는 반복적인 일상에 대한 묘사이고 마지막에 스쳐가는 결정적인 장면은 반전이면서 동시에 영화에 대한 다양한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시작으로 보여진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심리에 대한 치밀한 묘사이고, 그 묘사는 언어가 아니라 표정, 의상을 비롯한 시각적인 장치들로 이루어진다.

특히 사라와 줄리라는 전혀 다른 인물로 시작하지만 그 둘은 점차 그렇게 다른 인물이 아니라는 점은 작가의 현실과 작품의 허구의 구분이 모호하다는 것과 겹쳐진다. 달리 말하면 주체와 대상, 현실과 환상, 진실과 허구, 질서와 혼돈은 서로 대립적인 양극에 위치한 게 아니라 원을 그리며 술래잡기를 하듯 끊임없이 서로의 위치를 애매하게 만든다.

시험문제 정답처럼 영화 스토리에도 확실한 결말과 해답을 요구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의 관객에게 좀 따분한 것 같기도 하고 뭔가 스릴러가 되는 것 같다가 혼란을 가중시키는 결말을 가진 <스위밍 풀>이 어떻게 받아 들여질지 궁금하다. 위험한듯하면서 애매모호한 심리 드라마 자체를 얼마나 많은 관객이 흥미롭다고 생각할 지가 관건이다.

시네마 단신
   
제4회 서울 넷 & 필름 페스티벌

첨단의 디지털ㆍ인터넷 영화들을 선도적으로 소개해온 서울 넷 & 필름 페스티벌(세네프)이 4회째를 맞아 20~27일 서울 강남의 씨어터 2.0과 시네마 오즈, 남산의 서울애니메이션센터 3곳에서 오프라인 세네프를 연다. 지난 1일부터 시작된 온라인 세네프( www.senef.net)도 27일까지 계속된다.

'영화의 미래'를 전체 슬로건으로, '근본으로의 귀환'을 부제로 내건 영화제에서 모두 25개국 220여편의 장·단편이 소개된다. 아서 밀러의 딸 레베카 밀러의 선댄스영화제 대상 수상작 <각자의 속도>, 마이클 훌붐 감독의 <삶의 모방>, 세르게이 파라자노프의 회고전 등이 기대를 모으고 있다. 또 테마기획전엔 1920년대 무성영화 걸작 4편- <탐욕>(에리히 폰 스트로하임), <선라이즈>(F.W. 무르나우) 등이 상영될 예정이다.


곽재용 감독 <클래식> 중국 전역서 개봉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이 다음달 28일 중국 전역의 120개 극장에서 개봉된다. 중국에서 외국 영화가 개봉될 때는 중국전영공사 내 수출입공사를 거쳐야 하고 , 이중 '수익금 분배방식'(Revenue Sharing System)으로 수입되는 영화 20편만이 대규모로 개봉될 수 있다. 지금까지 중국에서 개봉된 한국영화로는 <비천무>와 <무사>가 있지만 전국 100개 이상의 극장에서 대규모로 동시 개봉되는 것은 <클래식>이 처음이다.


입력시간 : 2003-10-06 09:40


주간한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