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더듬고… 노리개 취급해요"

[르포] 직장내 남성 성희롱
"자꾸 더듬고… 노리개 취급해요"


성희롱에 시달리는 남성들, 여자 상사와 원치 않는 성관계도

흔히들 '성희롱'하면 남성보다는 여성 피해자를 떠올리기 쉽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남성 직장인 중에서도 상당수가 성희롱에 시달리고 있다. 성희롱은 이제 더 이상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의 한 중견 기업 상담실에 근무하는 김모씨(25.) 김씨는 요즘 여직원들과 눈길을 마주치는 것이 두렵다. 김씨보다 나이가 많은 유부녀 직원들이 수시로 수작(?)을 걸어오기 때문이다. 음란한 농담을 던지거나 엉덩이를 더듬는 행동은 다반사다.

요즘 들어서는 여자 친구와의 애정 전선에도 적신호가 커졌다. 여자친구가 있는 줄 뻔히 알면서도 약속을 잡지 못하도록 방해를 놓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회사를 그만 둘 수는 없다. 요즘같이 취업이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이만한 회사를 잡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김씨가 다니는 회사의 경우 급여나 근무 여건이 비교적 괜찮은 편이다. 김씨는 할 수 없이 '남성의 전화'에 상담을 의뢰했다. 대저 방법에 대한 조언을 듣기 위해서다.

직장 5년차인 이모씨(32)도 40대 초반의 독신 여사장으로부 수시로 성희롱을 당한다. 여사장이 갖가지 핑계를 대며 자신이 가는 곳에 동행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동안 여러차례 업무와 상관없이 점심, 저녁을 같이했다. 물론 이 같은 자리에서는 자존심이 상할 정도로 성적으로 놀림을 받곤 했다. 그러다가 이씨는 얼마 전 여사장의 압박에 못이겨 원치않는 성관계까지 맺었다.

이후에도 여사장의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몇번이나 거부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막무가내로 관계를 종용해왔다. 이씨는 '남성의 전화'에서 "여사장의 요구가 점점 노골적으로 변해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는 내용을 토로했다.


비뚤어진 남녀동등 의식

이렇듯 '남성의 전화'등에는 성희롱의 '가해자'로만 알려져 있던 남성들이 피해를 호소하는 경우가 심심찮게 접수되고 있다. 여성들의 사회진출이 늘면서 덩달아 여성 상급자들도 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부 여성들에게는 '여자만(성희롱을)당할 수 없지 않느냐'는 비뚤어진 남녀동등 의식이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남성의 전화' 이옥소장은 "최근 들어 성희롱 문제로 상담실 문을 두드리는 건수가 부쩍 늘었다"며 "특히 여성 근무자가 많은 블루칼라 계열의 업종에서 관련 사실을 토로하는 전화가 자주 접수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노총이 발표한 직장인 성희롱 실태조사는 상황이 어느 정도인가를 알 수 있는 좋은 예다. 한국노총은 얼마전 금융, 관광, 공공부문에 종사하는 조합원 1,027명을 대상으로 직장 내 성희롱 실태를 조사했다.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다. 조사에 응한 남성 근로자 세 명중 한 명이(36.8%) 직장에서 성희롱을 당한 경험을 토호했기 때문이다.

성희롱 유형을 보면 기존 여성들의 사례와 별 차이가 없다. 우선 회식자리에서 옆에 앉힌 후 술을 따르도록 강요하거나 춤을 추자고 요구하는 경우가 14.7%로 가장 많았다.

이 과정에서 자신의 가슴이나 엉덩이등 신체 부위를 만지거나(7.6%) 입맞춤, 포옹, 뒤에서 껴안는 등의 신체적 성희롱(7.5%)도 빈번하게 발생한다. 상사로부터 성관계를 요구받는 남성도 3%나 되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과 같은 선진국의 경우 이미 성희롱을 당한 남성 직장인들의 소송이 끊이지 않는 등 사회적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미 행정부 소속 기구인 고용기회평등위원회(EEOC)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2000년 한해 동안 성희롱으로 법원에 소송을 제기한 남성은 전체 성희롱 건수의 13.6%에 달한다. 기업체들의 적극적인 성희롱 교육으로 소송은 점차 줄고 있다고는 하지만 상담건수는 오히려 늘고 있는 추세다.


드러내지 못하고 전전긍긍

국내의 경우 아직까지 이 정도는 아니지만 성희롱을 상담하는 남성들이 늘어나는 속도가 예사롭지 않다. 그렇다고 해서 성희롱을 당하는 남자가 이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도 만만치 않다. "남자가 오죽 못났으면…" 등의 뒷말에 시달려야 하기 때문이다.

직장내 성희롱 문제가 여러차례 여론의 도마에 오르면서 ㈋볕湧?인식은 많이 개선된 편이다. 관련 상담소를 찾아 해결책을 모색하는 등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실제 한국여성민우회 여성노동센터 박정옥 가사는 "예전에는 '성희롱을 당했는데 어?F게 하면 좋겠냐'는 문의전화가 많았지만 요즘은 상황이 변했다"며 "성희롱에 대한 문제의식이 강화되면서 피해사실을 토로하기 보다는 회사측의 미온적인 대책을 지적하는 경우가 많다"고 귀뜸했다.

이에 반해 남성들은 혼자서 전전긍긍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유자인 책임상담원은 "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있어서 남성들은 드러내놓고 성희롱 사실을 토로하지 못하고 있는게 현실이다"고 지적했다. 성희롱을 토로할 수 있는 루도 변변치 않은 게 사실이다.

유 책임상담원은 "여성들의 경우 직장이나 상담소를 통해 성폭행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다양한 루트가 마련돼 있지만 남성들은 그렇지 않다"며 "덕분에 대다수의 남성들은 혼자서 삭이는게 대부분이다"고 덧붙였다.

어쩌다 회사에 신고를 해도 망신을 당하기 십상이다. 회사측이 나서서 문제를 덮어버리는가 하면, 오히려 피해자에게 사직서를 강요하느 등 '2차 성폭행'에 시달여야 하기 때문이다.

'국내 1호'의 남성 성희롱 피해자인 장모씨(29)의 경우가 대표적인 예. 서울의 유명의류업체 근무하던 장씨는 지난해 5월 성희롱 사실을 회사에 토로했다가 도리어 해고를 당했다. 그러나 장씨는 이후 노동부와 법원에 적극적으로 관련 사실을 알려 결국 법원으로부터 성희롱 피해자임을 인정 받았다.

유 책임상담원은 "장씨의 경우 적극적으로 피해 사실을 알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지만 대부분의 직장 남성이 그렇지 못하다"며 "사회적 편견 등을 의색해서인지 관련 사실을 숨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고 지적했다.


성관계는 분쟁 발생시 불리

전문가들은 남성들도 성희롱 문제에 대한 적극적으로 대처할 필요가 있다고 한 목소리로 말한다. 남성의 전화 이옥 소장은 "지난 99년 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따르면 직장내 성희롱 문제를 은폐하거나 해결책에 대한 책임을 소홀히 대할 경우 차벌받도록 규정돼 있다"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이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어떠한 경우라고 성관계를 가지지 말기를 조언하다. 이 소장은 "아무리 여성의 강요에 의해 성관계를 가졌다 해도 분쟁이 발생했을 경우 남성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는 만큼 응해서는 안된다"고 덧붙였다.

이석 르포라이터


입력시간 : 2003-10-06 10:05


이석 르포라이터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