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미의 우리풀 우리나무] 뚝깔


뚝깔. 참 평범하다고 생각했었다. 우리나라의 이 산 저 산 혹은 이 섬 저 섬, 깊은 산이나 뒷동산, 중부 지방이건 남부 지방이건 불쑥 불쑥 만나게 되는 뚝깔을 보며 그리 생각했었다. 그리 흔하지도 않고 그리 귀하지도 않게 문득문득 발견되는 뚝깔을 그동안 크게 대수롭게 여긴 적이 없었다.

문득 흰 꽃들이 모여 여름과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이 들면서도 자잘한 꽃들이 모여 꽃차례를 만들고 무릎 높이나 더러 허벅지 높이까지 자라는 모습이 심드렁하게 보여, 뚝깔은 잎도 꽃도 마치 흙이나 바위처럼 그저 풍경의 일부려니 싶었다.

남해의 외진 섬에 바다를 배경으로 포기를 만들어 피어난 뚝깔의 모습을 보았을 때에는 참 슬픈 모습이라는 생각이 잠시 미쳤던 기억도 있지만, 그마저 스쳐가는 바람처럼 흩어져버리고 언제나 뚝깔은 특별히 기억되지 않는 그저 배경과도 같은 존재처럼 가슴 깊숙한 곳에 묻혀 있었다.

그런 뚝깔이 새로이 보이는 계기가 있었다. 심지어 향신료까지도 우리 식물만을 가지고 음식을 만든다고 하는 한 음식점에서 였다. 샐러드에도, 생선을 싸서 먹는 재료로도 등장하는 어딘가 낯익은 잎이 있어 유심히 보았더니 뚝깔의 잎이었다.

깻잎처럼 자극적이지도, 상추처럼 심심하지도 않은 뚝깔의 잎새는 풋풋하니 참 좋았다. 무성하리만치 흔한 잎이 맛깔스런 음식에 적절히 귀한 음식으로 등장하니 아주 새롭고 근사하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러던 뚝깔을 또 한번 새롭게 볼 일이 있었는데 바로 산불 현장에서였다. 산불이 크게 나고 그 자리에 나무를 심어야 할지 혹은 자연적으로 복구할 지를 결정해야 하는 기초 조사에서, 특정한 식물이 살아 있는 지 조사하느라 여러 날을 보낸 일이 있었다.

생명이란 참 모진 것이어서 흙이 녹아 내리고 돌까지 모양을 바꿀 만큼 그렇게 처참하게 타버린 현장에도 몇 달이 지나지 않아 한쪽에 들어와 파릇파릇 고개를 내밀고 살고 있는 풀들이 보였다. 종류도 많지 않고 겨우 잎새만 올라 온 상태였지만 그 끈질긴 생명력에 감탄을 금치 못했던 기억이 새롭다. 이때 주로 만난 식물들이 진달래, 삽주, 고사리, 참취 같은 종류였는데 그 중에서 뚝깔도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잿빛 땅에서 올라온 그 힘의 원천이라니.

새롭게 만난 뚝깔, 새로 보기 시작하니 포기를 이루며 자라는 모습이 수수하면서도 깨끗하고 강인하여 보기 좋아지기 시작했다. 이 식물은 마타리과에 속하는 여러 해 살이 풀이다. 산방화서, 즉 길이가 다른 꽃자루들이 가지 끝에서 가지런히 꽃을 매어 다는 독특한 꽃차례를 하고 여름 내내 그리고 가을이 오도록 피어난다.

쓰임새로는 약용으로 사용되고 있었는데 생약명을 패장이라고 하여 진통이나 간을 보호하고 독을 풀어 주는 등의 효능이 있어 위장 통증이나 산후 복통, 자궁 내 염증 등에 치료하는 약재라고 한다. 그 모습이나 생명력으로 볼 때 적절한 곳에 관상용으로 심어도 좋을 듯 싶다.

흔히 이름 모를 들풀로, 하찮은 잡초로 여겼던 식물들이 알고 보면 소중한 자산이라는 말들을 새롭게 일게 일깨워준 마지막 여름날의 전령처럼 뚝깔이 보인다.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입력시간 : 2003-10-06 10:35


이유미 국립수목원 연구관 ymlee99@foa.g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