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 읽기] 고양이 전성시대


최근 몇 년 동안에 고양이가 젊은 세대의 취향과 감수성을 대변하는 아이콘으로 급속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성년과 미성년의 경계에 있는 20세 젊은 여성들의 내밀한 심리를 포착한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 인터넷 홈페이지에 연재되고 있는 황윤주의 그림일기 ‘스노우캣’, 거미줄로 그물 쳐서 물고기를 낚겠다는 ‘낭만 고양이’(체리필터), 옥탑방을 낭만적인 공간으로 바꾸어놓은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 지브리 스튜디오가 내놓은 애니메이션 ‘고양이의 보은’등에 이르기까지 대중문화의 거의 모든 영역에 고양이의 발자국이 선명하다.(‘고양이 신드롬-낭만과 개성의 상징으로’, 주간한국 1986호, 2003.8.28.) 고양이 전성시대를 맞이하여 고양이와 관련된 문학 작품들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고대 이집트의 벽화에 그려진 고양이 그림과 현재까지 남아있는 고양이 미라로 미루어볼 때, 야생고양이가 가축화해 인간과 함께 생활하게 된 것은 대략 5,000년 전의 일이다.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불교의 전래과정에서 고양이도 함께 수입되었다고 한다.

인류학이나 민속학의 연구에 의하면, 세계 여러 곳에서 고양이와 관련된 금기와 풍속이 발견된다. 고양이를 죽이거나 소중히 다루지 않으면 불행을 당하게 된다는 설화나, 고양이를 일반 가축과는 달리 신비하고 주술적인 능력을 가진 영물(靈物)로 보는 관습 등은 여러 대륙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다. 금기와 관련이 많기 때문일까. 고양이는 띠를 나타내는 12신장에도 끼지를 못했다. 고양이의 입장에서는 자존심이 상하는 일일 것 같다.

한국에서 전래되는 ‘견묘보주탈환설화’(犬猫寶珠奪還說話)는 고양이가 인간의 방에서 살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있다. 한 어부가 잉어로 변신한 용왕의 아들을 구해주고 그 보답으로 여의주를 얻었다. 방물장수 할미의 속임수에 넘어가 여의주를 빼앗기고, 이에 격분한 어부의 개와 고양이가 여의주를 되찾으러 길을 나선다.

여의주를 찾아서 돌아오는 길에 개가 실수로 여의주를 물에 빠트리는 일이 생기는데, 고양이가 기지를 발휘해서 곤란한 상황을 벗어난다. 그때부터 고양이를 방안에서 키우게 되었다는 것이다. 개와 고양이를 묘한 대립적인 관계 속에서 대비하는 사고방식이 전래설화에 이미 나타난다는 점이 무척 흥미롭다.

에드거 앨런 포의 ‘검은 고양이’(1843)는 고양이와 관련된 환상과 공포를 절묘하게 결합한 소설이다. 플루토라는 고양이를 키우며 사는 부부가 있다. 생활이 어려워지자 남편은 난폭한 술주정뱅이가 되고, 플루토의 한쪽 눈을 파고 목을 졸라 죽이는 일을 벌인다.

죄책감에 시달리던 남자는 어느 술집에서 플루토를 닮은 고양이를 데려온다. 죽은 플루토처럼 그 고양이도 한쪽 눈이 없다. 알 수 없는 공포감에 시달리던 남자는 고양이를 죽이려 하는데, 그 과정에서 말리던 아내를 살해하고 사체를 지하실에 유기한다. 아내가 보이지 않자 경찰들이 집을 수색하지만 별다른 진전이 없다.

그때 갑자기 벽 속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경찰들이 벽을 허물자 고양이가 부패된 아내의 시체 위에서 남자를 노려보고 있다. 섬뜩하지 않은가. 고양이의 눈은 인간의 환상과 공포를 대변하는 마술적인 시선이다.

고양이의 시선으로 인간을 바라보는 또 다른 작품으로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있다. 일본 근대문학의 아버지 나쓰메 소세키가 1905년부터 1907년까지 3권으로 묶어낸 장편소설이다. 중학교 교사인 치노 쿠샤미는 집에서 고양이를 키운다. 그의 집에는 근대적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드는데, 고양이는 그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세밀하게 관찰하고 보고하는 탐정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양이의 눈을 통해서 인간사회의 희비극적인 모순과 추악한 실상이 통렬하게 제시되는 우화이다.

T. S. 엘리엇의 ‘노련한 고양이에 관한 늙은 주머니쥐의 책’(1939)은 고양이와 관련된 풍자적인 우화이다. 이 작품은 앤드류 로이드 웨버의 뮤지컬 ‘캣츠’(1981)의 원작으로도 유명하다. 선지자 고양이 듀터라노미가 하늘나라에 올라갈 고양이를 뽑기 위해 무도회를 연다.

도둑고양이, 망나니 고양이, 상류층 고양이, 건달 고양이, 반항아 고양이, 극장 고양이, 마법사 고양이, 철도원 고양이 등 개성있는 고양이들이 등장해서 경연을 벌인다. 여기에 유흥가 출신의 늙은 고양이 그리자벨라가 다른 고양이들의 무관심 속에 등장한다. 그녀는 제대로 춤도 추지 못하지만, 인간의 영혼을 울리는 노래를 들려준다. 그 노래가 다름 아닌 ‘메모리’이다.

입력시간 : 2003-10-06 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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