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식의 문화 읽기] "나도 할수 있어" 효리신드롬


처음에는 저러다 말겠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공중파 방송과 스포츠신문에서는 연일 이효리에 관한 뉴스를 쏟아냈다. 이효리가 출연한 방송을 스포츠신문에서 기사화하고, 스포츠신문에서 들춰낸 신변잡기를 방송에서 심층(?) 취재하는 양상이 이어졌다.

방송리포터들이 이효리 따라하기 사이트에 관한 소식을 숨가쁘게 전해주었고, 가수 데뷔 이후 6년 만에 처음으로 라이브로 노래하려고 노력한다는 어처구니없는 기사가 감동 받은 문체 속에서 전달되었다. 가슴과 배꼽을 성형했다는 의혹을 전달하는 기사는 이효리의 매력포인트가 어디에 있는지를 다시 한번 강조해 주며, 10분이면 남자를 유혹할 관상이라는 역술인의 의견은 그녀의 매력에 그 어떤 신성성을 부여하려고 갖은 애를 쓴다. 먹고 살겠다고 하는 일이겠지만, 이쯤 되면 상당히 짜증스럽다.

사소한 일상까지도 뉴스로 만드는 방송과 대중언론을 반복적으로 대하다 보니, 왠지 그녀가 섹시해야 할 것 같기도 하고 그녀와 관련된 엄청난 신드롬이 현재진행중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놀랍게도 이효리 신드롬에는 뚜렷한 실체가 없다. 그녀의 매력에 몸살을 앓는 젊은이들도 찾아보기 어렵고, 화장과 스타일을 따라 한 여성들을 거리에서 만나는 일도 별로 없었던 기억이다. 적어도 방송과 대중언론에서 그렇게 크게 떠드는 신드롬이라면 경험적으로 실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일 텐데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최근의 이효리 현상은 대중의 폭발적인 호응을 얻어서 신드롬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신드롬에 목말라하는 매스미디어의 갈증이 역으로 신드롬을 만들어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른바 이효리 신드롬의 진정한 실체는 이효리도 아니고 팬덤도 아니고 매스미디어인 셈이다. 팬덤이 빠져 있는 신드롬, 그 자체가 놀라운 것이 아니겠는가.

신드롬의 실체가 불분명하다고 해서 이효리가 재능 없는 연예인이라는 의미는 결코 아니다. 이효리는 매력적이고 유능한 엔터테이너이다. 한국의 대중매체가 모두 그녀에게 주목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매스미디어를 사로잡았을 뿐만 아니라 대중의 거부감을 빗겨갈 수 있었던 이효리의 매력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상대적으로 편안한 성적 매력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효리의 경우 몸으로부터 배어나는 성적 매력이 말과 몸짓에서 드러나는 털털함과 결합되어 있다. 여성적인 매력과 쿨한 털털함이 매칭될 때 생겨나는 균형감각이 이효리의 매력인 셈이다.

하지만 이러한 매력이 사회적인 현상으로 이어질 수 있었던 것은 매스미디어의 코드와 절묘하게 맞아떨어졌기 때문이다. 대중의 욕망과 관련해서 선정성도 추구해야 하고 사회적인 금기와 관련된 가치관도 존중해야 하는 매스 미디어의 입장에서 보자면, 귀엽고 편안한 성적 매력을 구현하고 있는 이효리는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효리의 매력은 누드나 포르노그라피와 같은 노골적인 성적 표현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지점에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비유와 암시를 통해서 제시되는 이효리의 매력은, 성적인 매력과 사회적 건강함이 유머러스하게 결합된 양상이다.

엄정하게 보자면 이효리는 노래와 연기 그리고 MC의 영역에서 독보적인 역량을 펼쳐 보인 적이 없는 스타이다. 이효리 신드롬은 대중문화계에 스타가 없음을 반증하는 현상인 동시에, 스타와 관련된 새로운 패러다임이 자리를 잡아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문화적 사건이다.

애드가 모랭은 ‘스타는 반신(半神)이다’라는 고전적인 정의를 내린 적이 있지만, 이효리의 경우는 스타가 더 이상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를 두고 카리스마 없는 스타의 탄생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효리를 스타로 만든 것은 카리스마의 확대재생산이 아니라, 스타일의 모방과 공유라는 코드이다. 핵심은 노래 실력이 아니라 스타일(패션ㆍ화장ㆍ말하는 방식 등)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이효리를 특징지을 수 있는 스타일이 구체적으로 양식화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다. 노래 실력이 일반인과 별다른 차이가 없듯이, 그녀의 패션 역시 많은 여성들에 의해 이미 공유되어 있는 스타일들이다.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니고 유별난 스타일을 창출한 것도 아니라면, 이효리 신드롬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이효리라는 대중문화의 기호(記號)를 통해서 스타를 새롭게 정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스타는 특별하게 잘하는 것 없는 일반인의 모습과 상당히 닮았고, 조금만 노력하면 일반인도 도달할 수 있는 지점에 그 자리가 마련된다. 댄스그룹들과 함께 성장해온 젊은 세대들의 워너비(wannabe)적인 감수성이, 예쁘다는 것만 빼고는 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스타를 즐겁게 받아들인 것은 아닐까.

김동식 문화평론가


입력시간 : 2003-10-06 18:38


김동식 문화평론가 tympan@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