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잡힌 정부 부각 위한 '전략'해석, 탈당 부담 최소화 효과도

盧 탈당 겨냥한 小與의 작전이었나
발목잡힌 정부 부각 위한 '전략'해석, 탈당 부담 최소화 효과도

9월25일 오전9시 청와대 기자실이 갑자기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통상 청와대 대변인이 실시하던 정례 브리핑을 갑자기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하겠다는 통보가 왔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기자실 방문은 사전에 예고되거나 국가적 주요 현안이 있을 때 외에는 좀체 없는 일이어서 보도진의 관심은 더욱 컸다.

오전 9시40분부터 시작된 노 대통령의 브리핑은 이튿날 국회에서 실시되는 윤성식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과 관련, 국회에 대한 당부 및 협조 요청에 대부분을 할애했다.

노 대통령은 “국회에서도 여러 관점에서 윤성식 지명자를 평가할 수 있겠지만 이번에 감사원장에 대해서는 정부 혁신을 위한 감사원장으로서의 관점에서 평가를 해줬으면 한다. 그래서 공직사회 효율성을 높이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게 도와주시면 고맙겠다. 그 말씀을 드리러 왔다”고 했다.

노 대통령의 국회 측에 대한 이런 ‘구애(求愛) 작전’은 고건 국무총리의 국회 동의 때에도 없던 이례적인 일이다. 소수여당으로 전락한 정국 상황을 감안한 노 대통령의 고육책인 셈. 당연히 언론에서는 노 대통령의 임명 동의안 처리 당부를 비중 있는 뉴스로 보도했고 이 문제는 국회는 물론 국민적 관심사로 대두됐다.

그러나 26일 국회 본회의에서 치러진 윤 지명자 임명동의안은 투표 의원 229명에 찬성 87표 반대 136표 기권과 무효 각 3표로 부결됐다. 당연히 청와대 측에서는 부결 소식에 충격적인 반응을 보였고 정신적 여당인 통합신당도 한나라당과 민주당을 통칭한 거야(巨野)에게 모든 책임을 돌렸다.

여기까지만 보면 분명 한나라당과 야당으로 돌아선 민주당의 묵시적 동조체제에 의한 무더기 반대표가 가부(可否)를 가른 결과가 됐고, 이에 따라 청와대와 통합신당 측에서는 대통령까지 나선 일에 반대표를 던진 야당 측을 비난할 만도 했다. 하지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고개가 조금 갸웃거려지는 구석이 있다.

정작 통합신당에서는 전원이 투표에 참여하지도 않았고, 비례대표를 포함한 민주당에 남아 있는 신당파 의원들도 100% 참석하지 않았다. 반대 표를 던진 상대 당에 대한 비난에는 앞다퉈 열을 올리면서도 정작 중요한 투표에는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런 이중적 행태 부분을 놓고 정치권 안팎에서는 구구한 해석이 나오고 있다.


투표에 불참한 신당파. 왜?

노 대통령은 부결소식을 듣고 “정말 안타깝다”고 서운한 감정을 드러냈다. 문희상 청와대 비서실장도 “대통령이 직접 협조를 구하고, 나도 처음으로 당 대표에게 일일이 전화했고 정무수석도 원내총무들에게 전화를 걸었다”며 “(부결은) 꿈에도 생각 못했다”고 그간의 절절한 노력 과정을 소개하면서 분노를 삭이지 못했다.

통합신당 측에서도 부결 책임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구태정치’로 규정하고 신당의 차별성 부각에 애쓰는 모습이었다. 김영춘 원내 대변인은 “국회의 수준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 참담하며, 이런 식의 국회라면 국정을 맡길 수 있을 지 회의가 든다”고 말했다. 이해찬 의원도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함께 대통령과 국기를 흔드는 중대한 사태를 야기했다”고 두 야당을 동시에 겨냥했다.

정부ㆍ여당의 말대로라면 그렇게 중요한 국정 현안을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특별한 이유없이 노 정권 흔들기에 나서 발목을 잡았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럼 미리 예견된 야당의 ‘부결합작’의 와중에서 정작 여당인 통합신당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먼저 투표 참가 수 면에서 당 소속의원 43명중 32명만 참가했다. 26%인 11명이나 불참했다. 노 대통령은 야당 협조에 앞서 마음속 여당인 자당 의원들 독려부터 했어야 했다.

신당 측도 자체 표 단속은커녕 야당에 대해서도 아예 손을 놓고 있었다. 과거 소수여당이 ‘거야’(巨野)에 대해 몸으로 막아내거나 ‘맨투맨’ 설득?나섰던 경우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다. 투표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지도, 그렇다고 설득이나 회유에도 적극적이지 않았던 것이다. 이 때문에 이번 부결사태에 대해 신당은 오히려 방기한 측면이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것이다.


노 대통령 민주당 탈당 수순이었나

그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와 신당의 이 같은 행태의 이면에는 거야의 횡포를 부각시키기 위한 고도의 정치 전략이란 해석이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에게 발목 잡히는 모습을 국민 전체에게 보여주고 이로 인한 여론의 응원 및 대(對)국회 압박을 기대한다는 것이다.

특히 노 대통령이 야당에 대한 별다른 설득작업이 없는 상태에서 느닷없이 기자회견을 연 것은 오히려 야당의 심기를 건드린 측면이 강하다. 투표 결과보다는 대국민 홍보에 중점을 뒀다는 얘기도 된다.

또 투표의 사전 움직임보다 사후 움직임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는 신당의 반응도 그렇다. 신당은 투표 전에는 숨죽이고 있다가 부결이후 한 목소리로 비판에 나서고 있다. 3야간 암묵적 공조가 계속될 경우 어차피 원활한 국정 운영이 어렵다고 보고 차제에 3야와의 차별성을 부각시켜 내년 총선을 ‘구태정치 연합 대 새정치세력연대’의 대립구도로 몰고 가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어쨌든 노 대통령 입장에서는 별반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다. 전 국민에게 거야의 반정부적 행태를 드러내는데 성공했으며, 또한 부결된 윤 지명자 이후 코드가 맞는 다른 후보를 내세울 경우 이번에는 거야가 부결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됐기 때문이다.

여기에 노 대통령은 대통령으로 당선시켜준 친정 정당에서의 탈당이란 부담감을 한결 가볍게 만들 수 있게 됐다. 어차피 민주당이 현 정권을 지지하지 않는 차에 더 이상 소속 정당에 애정을 가질 필요도, 당적을 남겨놓을 이유도 없다는 공감대가 나름대로 넓혀진 결과가 됐다.

이런 이유에서인지 노 대통령은 9월29일 전격적으로 민주당 탈당 선언을 했다. 윤태영 청와대 대변인은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는 무당적으로 갈 예정"이라면서 "통합신당 당적 보유 문제는 그 이후에 판단할 문제라고 본다"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탈당 배경에 대해 당적문제가 소모적인 정치 공세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판단, 더 이상 정치쟁점화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민주당 당적을 포기하기로 했다고 윤 대변인이 전했다. 사실상 윤 지명자의 임명동의안 부결로 인해 탈당한다는 말이다. 그러나 신당 입당 여부에 대해서는 아직 정해진 것이 없다고 덧붙였다.

김근태 신당 원내 대표는 “대통령이 (신당에) 참여해 권력이 작용했다는 평가를 받지 않는 시점에서 거취를 정하면 좋겠다”며 “신당 창당이 완료되거나 총선이후에 참여하는 방법을 모색했으면 좋겠다”고 말해 총선 전후가 입당 적기가 될 것이란 전망을 내놓았다. 윤 지명자의 부결 처리는 4당 체제의 윤곽을 법적으로는 대통령의 무당적을 통한 4야체제, 정치적으로는 1여 3야 체제의 경계선을 더욱 명확하게 그어 놓았다.

염영남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1:42


염영남기자 liberty@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