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파 신세대들, 풍부한 자금력 앞세워 해외 브랜드 도입

재벌 2세들, 외식업계 태풍의 눈으로
유학파 신세대들, 풍부한 자금력 앞세워 해외 브랜드 도입

경인전자 김효조 회장의 장남 김성완(31)씨는 미 보스턴대에서 국제경영학을 공부하던 1990년대 중반, 우연히 ‘스무디 킹’이라는 음료 매장을 찾았다. 생과일에 단백질과 탄수화물 등 갖은 영양분을 함께 갈아 만든 과일 영양 음료 ‘스무디’를 파는 곳이었다. 우리나라에는 생과일 음료 조차 흔치 않던 시절이었으니 낯설게 느껴진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홀로 외국 생활을 하다 보면 끼니를 제 때 찾아 먹는다는 것이 쉽지 않기 마련. 과일을 썩 좋아하는 것도 아니었지만 음료 한 잔으로 모든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할 수 있다는 것이 매력적이었다.

샌디에이고에서 거주하던 2년 반 동안은 매일 아침을 ‘스무디’로 대신했을 정도였다. 30년 역사의 ‘스무디 킹’이 미국 전역에 400개 가량의 매장을 열고 과일 음료의 대명사로 폭발적 인기를 얻기 시작할 즈음이었다.

캘리포니아 대학에서 MBA 학위를 받고 귀국한 지 4년 가랑이 흐른 지난해. 그는 ‘스무디’를 국내에 들여 와야 겠다고 결심했다. “국내외 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부친이 일궈 온 제조업보다는 서비스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터였어요. 수년간 망설이다 신세계가 들여온 ‘스타 벅스’가 국내에서 성공한 것을 보고 확신이 섰죠.”

자본금 50억원으로 스무디즈코리아㈜를 세우고 서울 명동에 ‘스무디 킹’ 1호점을 개설한 것은 지난 5월. 아직 브랜드 인지도가 낮은 탓에 기대에는 못 미쳤지만 단골 고객이 차츰 늘어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인 신호다. 최근 서울 청담동과 경기 부천에 각각 2, 3호점을 개설한 김 사장은 내년 말까지 총 20개 가량의 매장 개설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스무디가 음료 시장에 태풍으로 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외식업 재계2세 사장의 시초 이선용
TGIF로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 평장

외식 업계가 ‘재계 2세 사장님’들의 각축으로 뜨겁게 불붙고 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부터 패스트 푸드, 음료 프랜차이즈까지 거의 모든 업종에 진출한 재계 2세들은 저마다 외식 업계를 평정하겠다고 나섰다.

이들 대부분의 공통점은 유학파 신세대들이라는 점. 유학 생활 중 자주 접했던 외식 브랜드에 매력을 느끼다 풍부한 자금력을 무기로 국내에 들여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아버지는 이들에게 든든한 후원자. 업계 한 관계자는 “외국 본사측이 사업권 계약을 맺을 때 자금력을 가장 중요한 고려 요인으로 꼽기 때문에 재계 2, 3세 들의 외식업 진출이 활발한 것”이라며 “특히 해외에서 브랜드를 들여오는 경우 밑천만 있다면 상대적으로 적은 노력으로도 성공적인 시장 진입이 가능하다는 점도 작용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외식 업계 재계 2세 사장님의 시초는 ㈜아시안스타 이선용(42) 사장이다. 혹시 그의 이름 석자에 낯설어 하는 이들도 ‘T.G.I.프라이데이스(이하 TGIF)’ 라고 얘기하면 “아, 그 사람”하고 떠올릴만한 인물. 지난해 9월 롯데에 TGIF를 매각하기까지 10년 이상 국내 패밀리 레스토랑 시장을 평정해왔다.

그가 TGIF를 국내에 들여온 것은 91년. 고려대 경영학과, 미 아메리칸대 MBA를 거쳐 국제정밀이라는 회사를 통해 주문자상표 부착 방식(OEM)으로 유선 전화기를 생산하고 있을 무렵이었다. 아버지인 이재연 당시 LG카드 사장(현 LG그룹 고문)이 가족회의를 소집해 외식 사업을 해보자고 제안한 것. 아버지 지인의 소개로 TGIF라는 브랜드를 알게 됐고, 곧바로 미국 칼슨 월드와이드그룹과 독점 계약을 체결했다.

국내에서는 낯선 음식 문화가 대중적인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 회의적이기도 했지만 예상외로 호응은 대단했다. 92년3월 양재 1호점을 개설한 이후 불과 2개월만에 하루 매출 2,880만원으로 단일 매장으로는 세계 최고 기록을 세우기까지 했을 정도. 롯데에 매각하기 전까지 전국 20여개 매장을 운영하며 국내 최고의 橘龜?레스토랑으로 확고히 자리매김했다.

현재 이 사장은 아시안스타를 통해 97년 제2브랜드로 도입한 이탈리아 전문 레스토랑 ‘이탈로니아’를 올 3월 국내 브랜드로 전환하며 또 한번의 돌풍을 준비중이다.


외식업계의 여걸 이화경 남수정
토니 로마스ㆍ베니건스, 업계 강자로 키워

‘외식 업계 여걸’로 통하는 립 전문 패밀리 레스토랑 토니 로마스를 운영하는 썬앳푸드 남수정(35) 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남충우 타워호텔 회장의 장녀인 남 사장은 유학 생활 중에 ‘토니 로마스’ 브랜드에 눈 도장을 찍었다. 미 보스턴 대학에서 재무ㆍ마케팅을 전공하던 90년대 초반, 학업을 마치면 외식 비즈니스 사업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던 터였다. 우연히 들렀던 토니 로마스 매장. “립으로 유명하다(Famous for Ribs)”는 컨셉 대로 독특한 향의 소스를 발라 구워낸 바비큐 립은 한국인의 입맛에도 꼭 맞을 거라는 확신이 섰다.

95년 서울 압구정동에 1호점을 개설한 이후 현재 7호점까지 문을 연 상태. 남 사장은 이후 순수 토종 브랜드인 이탈리아 음식점 ‘스파게띠아’와 국내 최초 마늘 전문 레스토랑 ‘메드포갈릭’까지 잇따라 런칭하며 외식 업계의 강자로 군림했다.

패밀리 레스토랑 ‘베니건스’를 운영하는 롸이즈온 이화경(47) 사장 역시 외식 업계의 잘 나가는 여성 사장 중 한 명. 담철곤 오리온그룹 회장의 부인이자 동양그룹 창업자인 고(故) 이양구 회장의 차녀다. 75년 동양제과에 입사해 2000년 사장직에 올랐고 지난해 9월부터 외식 및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총괄하고 있다.

200년 역사의 베니건스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온 것은 국내에 외식 산업 붐이 일던 95년. 그 해 11월 대학로점을 시작으로 지난 5월 수원점까지 모두 18개점을 운영하며 업계 최강 TGIF를 위협하고 있다.


호텔에서 외식업까지…최현식
신개념 테이크아웃 레스토랑 정착시켜

서울 명동 사보이호텔 최현식(35) 사장은 3대째 이어져온 호텔 경영에 안주하지 않고 최근 외식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경우다. “좀 더 역동적인 사업을 하고 싶어서”다. 미국 샌프란시코대학과 대학원에서 마케팅 등을 전공하면서 외식업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지난해 3월 자신의 영어 이름(하워드)와 미국 내 지인(마리오)의 이름을 따 국내 브랜드로 개설한 ‘하워드앤마리오’. 패스트푸드 레스토랑처럼 저렴하면서도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고급스러운 신개념 테이크아웃 레스토랑을 추구하고 있다. 호텔 1층에 1호점을 개설한 이후 6호점까지 문을 열었다.

불과 6개월 뒤인 같은 해 9월에는 ‘카후나빌’이라는 미국의 테마 레스토랑 브랜드를 국내에 들여왔다. 단지 음식 뿐 아니라 엔터테인먼트의 요소를 강화해 매장 내에 야자수나 폭포 등으로 열대의 분위기를 연출, 런칭 1년도 되지 않아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 등 젊은 층 고객을 사로잡고 있다.

이밖에도 유럽풍 패밀리 레스토랑 마르쉐를 운영하는 덕우산업 신희호(45) 사장은 재계 2세는 아니지만 아미가호텔 신철호 사장의 동생. 연세대 경영학과와 미시간 주립대 경영대학원을 졸업한 뒤 스위스 모벤픽사로부터 레스토랑 운영에 대한 시스템을 배워 96년 마르쉐 1호점을 서울 역삼동에 오픈했다.

업계 관계자는 “주5일 근무제가 확산되면서 외식업종에 대한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교차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재계 2세 사장들의 생존 경쟁이 이제부터 진짜 본격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2:21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