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리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

"떼돈을 번다구요? 천만에"
변리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


'士' 최고 수입 소문, 변리사 시험 열풍으로 이어져

1인당 평균 수입 5억5,000만원. 벌써 수년째 전문직 중 가장 수입이 많은 직종에 올랐다. 산업 재산권의 출원에서 등록까지 모든 절차를 대리하는 전문 자격사라는 변리사. 개인을 상대할 일이 거의 없으니 일반인들에게는 이름 조차 낯설지만 지난해 한 해 동안 국세청에 수입 금액을 신고한 변리사 376명이 벌어들인 돈이 무려 2,068억원에 달한단다.

관세사(1인 평균 3억6,330만원)는 물론 변호사(3억4,007만원) 개업 의사(2억9,426만원) 회계사(2억4,711만원) 등 내로라 하는 ‘사(士)’들을 모두 앞섰다.

변호사나 의사보다도 소득이 많은 직종이라는 환상은 변리사 시험 열풍으로도 이어지고 있다. 올해 200명을 선발하는 시험에 몰린 인원은 8,391명. 경쟁률로 따지자면 42대 1이다. 지난해에는 이보다 더 많은 9,940명이 몰렸다.

최근 산업은행 신입 행원 모집에 1만22명이 몰려 경쟁률이 무려 143대 1에 달했다는데 무슨 대수냐고 할 수도 있다. 사상 최고의 청년 실업난을 감안하면 맞는 얘기다.

헌데 그저 원서와 토익 성적표를 제출하고, 떨어지면 다시 다른 회사에 지원하는 일반 기업의 입사 시험과는 분명 다르다. 특허법, 실용신안법, 민법 개론, 자연과학개론, 의장법, 상표법, 민사소송법…. 1, 2차 시험의 필수 과목 목록부터가 사람을 주눅들게 한다. 준비 기간이 2~3년은 족히 필요하다. 오죽하면 ‘이공계의 사법시험’이라는 별칭이 붙었을까.

그렇다면, 정말 변리사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일까. 아니면 ‘빛 좋은 개살구’일까. 변리사에 대한 진실 혹은 거짓말을 살펴 보자.


변리사 실제 수입은 연 5,000만원?

“국세청이나 국회의원, 아니면 언론 중 하나는 분명 거짓말쟁이입니다.” 합동사무소에서 일하고 있는 한 변리사는 덜컥 화부터 냈다. 변리사가 전문 직종 소득 1위라는 것은 터무니 없는 조사라는 것. 그래서 국세청이 잘못된 자료를 냈거나 아니면 국감장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국회의원, 혹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이 의도적으로 실상을 왜곡했을 거란 얘기였다.

굳이 거짓말까지는 아니더라도 ‘변리사 1인당 평균 수입 5억5,000만원’이라는 국세청의 자료에는 분명 함정이 있다. 여러 명의 변리사가 합동 사무소를 만들어 운영하는 것이 보통인 현실에서 국세청에 수입을 신고하는 것은 대표 변리사 한 명 뿐. 5명이 사무실을 함께 운영할 경우 실제 변리사 1인당 수입은 연 1억원 안팎에 불과하다.

이 뿐 아니다. 수입 금액은 기업으로 치자면 일종의 매출액과 비슷한 개념. 수십명 직원들의 봉급과 각종 경비를 차감한 뒤에야 실제로 변리사들이 집으로 가져갈 수 있는 돈이 된다. 국세청 조사와 달리 한국산업인력공단이 올해 초 펴낸 ‘2003 한국직업전망서’ 에서는 변리사의 월 평균 수입이 418만원으로 조사됐다. 연봉으로 따지자면 5,000만원 가량에 불과한 셈이다.

게다가 변호사, 의사 등과는 달리 변리사의 소득은 고스란히 노출된다. 주고객이 개인인 변호사와 의사는 소득을 누락 신고할 수 있지만, 기업만을 상대하는 변리사는 소득이 유리 지갑처럼 투명하게 드러날 수밖에 없다. 한 변리사는 “함께 일하는 주변 변호사는 실제 소득의 20% 정도만 신고하더라”며 “변리사가 변호사보다 돈을 많이 번다는 조사가 나오는 것은 국세청이 그만큼 전문 직종의 세원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것” 이라고 했다.


빈부격차가 가장 심한 직종

업계는 전문 직종 중 변리사가 가장 빈부 격차가 심한 직종이라고 한 목소리를 낸다. 외국계 대기업과 계약을 맺는다면 1인당 5억원은 물론 10억원도 보장될 수 있지만, 보수가 낮은 정부 기관 등에만 매달려야 하는 변리사들은 박봉에 시달릴 수밖에 없는 탓이다.

최근 실무수습(11개월)을 갓 마치고 변리사 등록을 뗑?한 변리사는 “당초 생각했던 것과는 현실이 너무 달라서 놀랐다”며 “변리사가 고소득 직종이라는 것을 도저히 실감할 수 없다”고 했다.

사건 별로도 수입 금액은 천양지차다. 비즈니스 모델 출원의 경우 수백만원까지 벌어들일 수 있는 반면, 중소기업의 특허 출원은 덤핑 수주까지 겹치면서 최근 30만원 수준까지 떨어졌다.

대형 법무법인에서 일하다 개업 6년차가 된 한 변리사는 “변호사들은 아무리 부지런히 뛰어도 맡을 수 있는 사건에 제한이 있을 수밖에 없지만 변리사들은 대량으로 사건을 처리할 수 있다”며 “그래서 변호사들은 대체적으로 일정 수준의 높은 수입을 올리지만, 변리사들은 빈익빈 부익부가 심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말하자면 가수들이 돈 많이 버는 직업인 것으로 인식되고 있지만 조용필 같은 국민 가수가 엄청난 돈을 버는 반면 무명 가수들은 생계 유지도 힘든 것이나 다름 없다”고 했다.


안팎의 시련

변리사 업계가 직면한 주변 환경도 그리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우선 업계는 극심한 경기 불황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업들의 연구ㆍ개발(R&D) 기반이 붕괴되면서 1990년대 후반 이후 국내 특허 등 지적재산권 출원 건수의 증가세에 제동이 걸렸다.

99년 20만건을 돌파(23만1,028건)한 출원 건수는 2000년 28만3,087건으로 급증했으나 2001년 28만9,420건, 2002년 29만86건으로 주춤한 데 이어 올해 상반기에도 14만5,670건에 그쳤다. 서울 역삼동에서 만난 특허법률사무소의 한 사무장은 “2년 전에 비해 사건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하소연했다.

‘먹이감’은 늘지 않고 있는데 변리사 수는 갈수록 늘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요인. 90년대까지 70~80명이었던 선발 인원이 2000년 이후 200명 안팎으로 늘어나면서 8월말 현재 특허청에 등록한 변리사 수는 2,442명에 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변리사 한 명의 1년 동안 출원 평균 건수는 99년 247건에서 2000년 222건, 2001년 162건, 지난해 132건으로 매년 큰 폭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특히 업계의 불만은 변호사들의 변리사 자동 등록제. 등록비 20만원만 내면 언제든 변리사로 등록할 수 있어 최근 변호사들의 변리사 등록은 봇물을 이루면서 변리사 과잉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98년 124명에 불과했던 ‘변호사 변리사’는 8월말 현재 1,236명에 달해 전체 변리사의 50%를 넘어서고 있다.

올 4월부터 우리나라가 가입한 ‘마드리드 협정’이나 곧 닥쳐올 법률 서비스 시장 개방이라는 외부 환경도 녹록치 않다. ‘마드리드 협정’이란 출원인이 상표 등록 희망 국가를 지정해 출원서를 자국 특허청에 제출하면 등록을 원하는 모든 국가에 자동으로 출원되도록 한 것.

기업 입장에서는 각 국에 상표 등록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불편함을 덜어냈지만, 변리사 입장에서는 수입이 대폭 줄어들 수밖에 없는 처지다. 게다가 법률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면 해외의 유수 로펌 등에서 국내 변리사의 영역을 급속히 잠식할 것이란 긴장감도 업계에 서서히 몰아치고 있다.

이영태 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3:20


이영태 기자 yt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