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딘 돌풍' 잠재우고 민주당 후보중 선두로, 부시와의 가상대결서 승리

미 대선, '장군' 클라크 돌풍
'딘 돌풍' 잠재우고 민주당 후보중 선두로, 부시와의 가상대결서 승리

13개월을 남겨둔 2004년 미국 대선이 웨슬리 클라크(58) 전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사령관의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 출마로 요동치고 있다.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의 지지도 하락이 가속화 하는 절묘한 시점에 나온 클라크의 출마 선언은 ‘아홉 난쟁이’들이 각축하는 기존 민주당 경선 판도 뿐만 아니라 대선 본선 구도에 심대한 영향을 끼칠 전망이다.

9월17일 경선 출마를 선언한 클라크의 파괴력은 불과 5일후 발표된 CNN과 USA투데이, 갤럽 공동 지지도 조사 결과에서 나타났다. 클라크가 부시와의 가상 대결에서 49%대 46%로 승리한 것. 물론 부시는 존 케리 상원의원과의 가상 대결에서도 1% 포인트차로 뒤졌고, 하워드 딘 전 버몬트 주지사, 리처드 케파트 하원의원 등을 상대로도 신승할 만큼 고전을 면치 못했다. 그간 한번도 열세를 보이지 않았던 ‘디펜딩 챔피언’ 부시로서는 경악할 노릇이다.

클라크는 또 민주당 후보간 지지도 조사에서도 14%의 지지율로, 그동안 돌풍을 일으켜온 하워드 딘 후보(12%) 등을 따돌리고 선두 주자로 나서는 기염을 토했다.

현 판세는 전쟁 지도자 부시의 이미지가 이라크 전쟁의 전후 처리 실패로 크게 훼손되는 가운데 그 반사이익을 베트남전과 보스니아 내전의 영웅인 클라크가 톡톡히 취하는 형국이다.


똑똑한 군 지도자

혜성처럼 등장한 클라크는 그야말로 ‘똑똑한 군인’이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처럼 아칸소 주 리틀록에서 자란 그는 1966년 웨스트포인트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로즈 장학생으로 옥스퍼드 대학에서 유학했다. 70년 베트남전에 참전, 4군데 부상을 입은 대가로 은성무공훈장을 받았고 91년 걸프전에는 준장으로 참전했다.

이후 합참 전략국장 시절인 95년, 보스니아 내전에 개입해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당시 세르비아 대통령을 설득해 민족간 영토 경계선을 확정했다. 지루한 보스니아 내전의 종식에 기여한 그는 여론의 집중 조명을 받기 시작했고, 4년 후엔 나토사령관으로서 코소보 공습을 지휘했다. 그를 만난 인사들은 클라크가 엄청난 재능을 지녔으며 전략적 사고를 하고, 대통령 후보에 걸 맞는 군 경력을 지녔다는데 동의한다.

하지만 ‘모난 돌이 정을 맞듯’ 그에 대해 적대적인 군 인사들도 상당하다. 그에게 부정적인 시선을 보내는 군 인사들은 클라크를 ‘클린턴의 장군’이라고 폄하한다.

또 나토사령관 당시 그가 백악관 및 펜타곤과 충돌하면서 보스니아전을 저돌적인 스타일로 밀어붙였던 상황도 흠집으로 자주 거론된다. 그래서 워싱턴 포스트는 그의 프로필 기사의 제목을 ‘적이 많은 고속 승진자’라고 붙였고 뉴욕타임스는 “그는 군 생활 중 지나친 경쟁심과 승부욕으로 상관을 무시하기도 하고 거만하다는 평을 받았다”고 전하고 있다.

특히 그가 보스니아 내전 당시 러시아군의 영향력 확대를 막기 위해 보스니아내 러시아 주둔 기지의 활주로 봉쇄를 명령했다가 영국군 장성으로부터 항명을 받은 경력은 그의 가장 큰 오점으로 기록된다.


준비되지 않은 후보

화려한 군 경력을 가진 그도 대통령 선거를 면밀히 준비한 것은 아닌 듯 하다. 그는 미 육사수석 졸업, 베트남전 영웅, 중도적 정치성향, 남부출신 라는 매력적인 조건을 갖추고 민주당의 취약점인 안보문제에서도 부시와 어깨를 겨눌 수 있다. 여기에 유대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나, 침례교인이었다가 아내를 따라 가톨릭으로 개종한 인종적, 종교적 배경도 그의 든든한 자산이다. 하지만 정치적 현안에 관해 그는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갈 지 자 행보를 보여 왔다.

프린스턴대의 대통령학 전문가 프렛 그린스타인은 “클라크가 일관된 화법을 구사하지 못하며, 아이젠하워나 파월 같은 잠재력을 지녔지만 이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 매체 드러지 리포트에 따르면 그는 2001년 5월 리틀록에서 열린 공화당 행사에서 “부시 행정부가 파월 등 훌륭한 진용을 갖추고 있어 기쁘다”며 부시 행정부를 한껏 치켜세웠다. 이때 그는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을 찬양하면서 부시 대통령을 ‘용기와 비전을 가진 지도자’로 칭했다.

클라크가 합참 전략국장 시절 이슬람교도를 상대로 인종청소 범죄를 저지른 라트코 믈라지치로부터 권총 등을 선물로 받은 일화도 그의 경력관리가 허술함을 웅변해 준다.

최근까지도 이런 행태는 고쳐지지 않았다. 경선 출마 선언 다음날 그는 “내가 의원이었다면 이라크 전쟁을 지지했을 것”이라고 말했다가 하룻만에 이를 번복하기도 했다.


돌풍의 원인은 부시의 하락

그래서 클라크의 돌풍은 부시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에서 비롯됐다는 게 미 언론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돌풍이 클라크에 대한 신뢰보다는 부시의 실망에 기대고 있다는 얘기다. 민주당 주자들의 지지도가 전국적으로 10% 대에서 머물며 저조한 것도 주자들 중 어느 누구도 유권자들로부터 확고한 믿음을 얻지 못하고 있음을 반영하고 있다.

그래서 하워드 딘 전 주지사의 선전이 이번 클라크의 돌풍에 가려졌듯이 또 다른 후보가 각광을 받는다면 그의 신선함도 금세 빛이 잃을 수 있다는 ‘거품론’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민주당 중도파들이 클라크를 밀고 있다는 점을 근거로 그의 인기가 좀처럼 꺼지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미 언론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 부부 등이 클라크를 지원하고 있는데 주목하고 있다.

클라크 자신도 경선 출마를 클린턴 전 대통령과 상의했다고 밝혔고 최근 민주당 유권자들로부터 신뢰를 회복한 클린턴은 “민주당에는 아내 힐러리 상원의원과 클라크라는 걸출한 스타가 있다”며 공공연히 그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클린턴의 과거 측근들도 속속 클라크의 캠프로 합류하고 있다.

관측통들은 클린턴 전 대통령이 자신이 구축한 민주당내 중도 노선을 하워드 딘과 같은 급진주의자 무너뜨리고 있다고 판단, 클라크 후보를 밀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심지어 공화당계 보수주의자들은 “클라크 합류로 시계 제로의 형국이 된 민주당 경선 구도는 힐러리의 등장을 예비하는 수순”이라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경선 판도가 극도로 혼미해지고 혼탁해질 경우 자연스럽게 힐러리 출마 여론이 부상할 것이고, 이 때 힐러리는 클라크에게 부통령 후보를 맡길 것이라는 게 음모론의 골자이다.

정치적으로 거의 다듬어지지 않은 클라크는 향후 첩첩산중을 지나야 한다. 그는 늦게 경선에 뛰어든 만큼 자금과 조직력에서 타 후보에 비해 절대적인 열세에 놓여 있다. 또 하워드 딘이 타 주자들로부터 집중적인 견제를 받았던 것처럼 향후 흠집내기에도 맞서야 한다. 현재까지 미 언론들은 클라크가 이러한 견제와 도전을 슬기롭게 극복할 지에 대해 후한 점수를 주지 않는 분위기이다.

이영섭기자


입력시간 : 2003-10-07 13:26


이영섭기자 youngle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