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과 사랑으로 다진 정통재즈의 길

[재즈 프레소] 유성희-뮤서 부부
꿈과 사랑으로 다진 정통재즈의 길

“최근의 한국 재즈는 크로스오버식의 재즈인데, 우리는 정통 재즈(straight jazz)를 추구하죠.” 당당한 음악적 자기 선언이다. 팝이나 가요 등 재즈 바깥 장르와의 퓨전이 아닌, 재즈 그 자체만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다짐이다. 젊은 재즈 뮤지션으로서의 기개가 느껴진다.

재즈 피아니스트 유성희(33)가 ‘우리’라 했을 때, 그 말이 단순한 음악적 수식일뿐일까? 물론, 음악적 지향점이 같은 동지를 뜻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우리’란 한 쌍이 된 부부를 가리키는 말이다. 남편인 호주 태생의 재즈 드러머 포레스트 뮤서(32)와 함께 이루는 ‘우리’이다. 인생의 동지이자, 음악적 동지인 두 사람은 최근 들어 한국 재즈계에서 이름을 확실히 새겨 가고 있다.

2001년 인천 재능대(전 대헌공전) 실용음악과에 초빙, 100여명의 학생들에게 재즈를 가르치고 있다. 유성희는 재즈 피아노ㆍ앙상블ㆍ화성학 등의 과목을, 뮤서는 드럼 전공 실기ㆍ 리듬의 이해 등의 과목을 기르치는 ‘교수 부부’다.

2002년 말 발표했던 앨범 ‘New Life’에는 갓 결혼한 두 사람의 꿈이 농축돼 있다. “모든 곡들이 우리 둘의 역사와 관련돼 있어요.” 그 해 10월 신혼 여행으로 갔던 호주에서 만든 앨범이다. 모두 뮤서의 곡이다. 남편의 고향인 호주에 가서 그 곳의 재즈 클럽을 둘러 본 뒤, 마음에 드는 주자에게 제안해 그 곳 스튜디오에서 연주ㆍ녹음했다. 밝은 분위기는 당시의 꿈같았을 시간들을 상징하고, 예사롭지 않은 테크닉은 한국 재즈계에 새로운 스타가 출현했음을 고지하는 것이었다.

10월 중 발표될 새 앨범 ‘Glimpse’를 보자. 모두 9곡이 수록돼 돼있는 이번 음반역시 정통 어쿠스틱 재즈다. 그런데 이번에는 별난 어쿠스틱 악기 하나가 추가됐다. 바로 장고다. 장고로 한국의 정통 가락을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아프로 큐바 음악 특유의 리듬을 들려준다. 부부와 함께 지난해 호주에서 소개 받은 베이시시트가 연주했다.

두 사람의 인연은 미국 보스턴 버클리(Berklee) 음대에서 맺어졌다. 졸업 연주회‘Chick From Korea(재즈 피아니스트인 칙 코리어의 이름에서 착안한 연주회 명칭)’를 준비중이던 유성희가 찾아 낸 드러머가 뮤서였다. 두 사람의 사랑이 깊어가던 미국 유학의 끝 무렵, 그녀는 또 하나의 앨범을 만들었다. ‘Lucky Dot’. 앨범을 자기소개서 삼아 서울의 재즈 클럽에서 연주하고 있던 그녀에게 뮤서가 온 것은 2002년 1월. 1년 9개월 뒤 결혼에 골인.

연세대 작곡과 88학번인 그녀는 원래 재즈와는 전혀 무관했다. 그러나 3학년때 재즈 작곡가 이판근을 만나면서 또 다른 음악의 세계에 빠졌다. 1주일에 한번꼴로 이어졌던 이씨와의 레슨은 미국에 가기 전인 1994년까지 이어졌다. 특히 1993년 일본의 ‘후지 재즈 페스티벌’에 가서 참관, 재즈뮤지션이 되기로 마음을 굳히게 됐다. 재즈가 좋았을뿐만 아니라, 스승 이판근이 보여준 기대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

유성희는 전설적인 재즈 피아니스트 재키 바이어드와의 해후를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셀로니어스 몽크, 찰스 밍거스, 마일스 데이비스 등 그야말로 역사적 거장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사람과 해후했던 유학길이었다.

거장 멀그루 밀러(피아노)와 만났던 것 역시 당시였다. 뉴욕서 고속버스를 타고 4시간 걸리는 필라델피아까지 찾아 온 동양 아가씨를 밀러는 3시간 반 동안 친철하게 레슨해 주었다. 당초 1시간 정도 하기로 했던 레슨이었다. “밀러는 나의 모델”이라고 유성희가 말하는 것은 그래서 당연해 보인다. 귀국후에도 그녀는 밀러와 이메일을 주고 받는 등 귀한 인연을 이어 오고 있다.

2집 ‘Lucky Dot’에 밀러는 그녀에게 이런 헌사를 남겼다. ‘탁월한 피아니스트이자 작곡자인 그녀는 편곡 실력 또한 인상적이다. 장래가 촉망되는 손꼽을 젊은 음악인이다.’ 밀러의 기대가 그르지 않았음이 머잖아 입증된다. 10월 3~4일 성균관대 600주년 기념관 새천년홀에서 열릴 공연 ‘Jass It Up’이 그 자리다. 한국 재즈 피아노를 대표하는 이영경도 무대에 서는 자리라, 개인적 의미도 크다.

장병욱 차장


입력시간 : 2003-10-07 14:22


장병욱 차장 aje@h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