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수 훤하게 삽시다] 당뇨병과 비만


40세의 잘 나가는 성악 강사 P씨가 살이 저절로 빠지고 매사에 피곤하고 힘이 없다고 하여 병원을 찾았다. 172㎝의 여성치고는 훤칠한 키에 75kg을 육박하던 몸무게가 조금씩 빠지기 시작한 것은 올 봄부터였다. 남들로부터 어디 아픈 것은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 시작하면서 열심히 챙겨서 먹었지만 살이 찌기는커녕 점점 더 피곤해지고 힘들어졌다.

검사결과는 짐작했던 대로 당뇨병이었다. 공복 혈당은 240mg/dl, 식후 혈당은 421mg/dl. 미국당뇨병학회의 당뇨병 진단 기준인 공복혈당 125mg/dl를 훨씬 넘는 수치였다. 자세히 물어보니 당뇨병의 3대 증상인 다음(물을 많이 먹음), 다식(음식을 많이 먹음), 다뇨(소변을 자주 봄)가 다 있었다.

당뇨병의 가족력이 있는데다가 결혼과 연이은 출산 후 조금씩 늘기 시작한 체중이 마흔이라는 젊은 나이에 당뇨병을 부른 것이다. P씨에 대해서는 혈당조절과 함께 체중조절을 같이 시작하기로 했다. 체중이 줄어들면 혈당이 좋아지기 때문이다. 우선 혈당강하제를 복용하기 시작하자 혈당이 정상화되면서 피곤감이 줄어들었다.

컨디션이 어느 정도 회복된 후, 일을 줄이도록 하고 매일 하루에 한 시간씩 운동을 시켰다. 비만치료제도 같이 처방하였다. 매일 주치의가 따라다니면서 P씨가 먹을 음식을 결정해 줄 수는 없기에 P씨 스스로가 비만과 당뇨병의 식이요법에 대해서 잘 알고 있어야 했다.

병원을 방문하는 날마다 영양사에게 영양교육을 받도록 했는데, 의외로 P씨는 대학에서 배운 것보다 요긴한 생지식을 배웠다며 좋아했다. 튀긴 닭요리와 고기를 좋아하던 P씨가 야채와 생선으로 식단을 바꾸자 집안에 놓여 있는 음식의 종류가 달라졌고, 비만해서 걱정했던 초등학생 아들까지 날씬해지기 시작하였다. 6개월 후 P씨의 체중은 65kg이 되었고 약을 먹지 않아도 공복혈당이 110mg/dl으로 유지되었다. P씨는 더 이상 당뇨약을 먹을 필요가 없었고, 향후 6개월 더 비만치료제만 복용할 예정이다.

체중이 줄어들면서 당뇨가 좋아지거나 당뇨가 치료되는 것은 드물지 않게 보이는 일이다. 이렇게 체중과 혈당이 서로 긴밀하게 관련되어 있는 이유는 체지방, 특히 복부지방이 여러 가지 신체대사를 교란하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체지방의 교란 작용 중 대표적인 것이 혈당을 조절하는 호르몬인 인슐린의 역할을 방해하는 일이다.

인슐린이 정상적으로 만들어져도 과도한 지방세포가 인슐린의 작용을 막기 때문에 인슐린이 상대적으로 부족해진다. 췌장은 체지방세포의 교란을 보상하기 위해 더 많은 인슐린을 만들어 내지만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에는 한계가 있어서 결국은 혈당이 높아지고 당뇨병이 생긴다.

어른과 아이들 모두 체지방이 많아질수록 당뇨병이 많이 생긴다. 특히 비만한 어린이는 정상체중 어린이보다 당뇨병 발생위험이 수 십 배 높아진다. 반대로 체중과 체지방이 줄어들면 당뇨병의 발생 위험이 낮아지는데 이러한 효과는 당뇨병이 이미 생기고 난 후보다는 생기기 전이 더욱 효과적이여서 당뇨병이 생길 위험이 높은 분들은 어릴 때부터 몸매를 날씬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당뇨병이 생긴 후에도 가능한 조기에 체중을 정상으로 줄이는 것이 좋은데 같은 양을 감량해도 당뇨병 유병기간이 긴 환자보다는 처음 진단받은 환자에서 혈당을 감소시키는 효과가 더 크기 때문이다.

당뇨환자의 적정체중은 어느 정도일까? 대한 당뇨병학회는 남성의 경우는 몸무게를 키의 제곱으로 나눈 체질량지수를 남성의 경우는 최대 22kg/m2, 여성의 경우는 최대 21kg/m2으로 유지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P씨의 경우를 예로 든다면 조금 더 감량하여 62kg 이하로 유지하는 것이 좋다. 눈으로 보았을 때 날씬한 느낌이 들지만 말랐다는 느낌은 들지는 않는 정도이다.

체중이 정상인데도 당뇨병이 생기는 분들도 있다. 당뇨병은 유전성이 강한 질환으로 부모 중 한 분이 당뇨병이 있으면 자식이 당뇨병이 생길 확률이 40%, 두 분 다 당뇨병이 있는 경우는 80%까지 증가한다. 아무리 날씬해도 유전자에 당뇨병이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면 나이가 들어가면서 당뇨병이 생기게 되는 것이다.

또 다른 경우는 겉으로는 날씬해보여도 숨은 지방이 많은 경우이다. 신체는 크게 근육과 지방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지방이 많아도 근육이 적어서 몸무게가 정상으로 나가면 비만인 사람과 마찬가지로 당뇨의 위험도는 높다. 그러므로 다른 곳은 다 날씬해도 배가 나온 분들은 과체중이 아니어도 당뇨병 위험이 높아진다.

체지방 중에서는 내장 사이에 끼어 있는 복부지방이 가장 나쁘다. 복부 지방의 양을 간단하게 측정하는 방법이 허리둘레를 재는 것인데 남성의 경우는 35인치, 여성의 경우는 32인치를 넘게 되면 복부비만이다. 정상체중에서도 당뇨 위험이 높은 다른 부류로는 만성 음주자가 있다.

주당 2-3회 이상, 한번에 소주 1-2병 이상 폭음을 하는 분들이다. 술을 매우 좋아 하시는 분들은 대부분 간식을 잘 안하시기 때문에 체중이 많이 나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드믈게 인슐린이 생성공장인 췌장의 전체 또는 일부를 제거한 경우도 당뇨병의 위험이 높아진다.

당뇨병은 평생 스스로 조절하면서 살아야 하는 환자가 주인인 병이다. 그 첫걸음이 허리띠를 줄이는 일이다.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


입력시간 : 2003-10-09 18:57


박현아 가정의학 전문의